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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피디 Oct 01. 2019

이토록 사랑스러운  곰돌이 인형이라니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그 나이먹고 사준다는 선물이 고작 곰돌이 인형이냐는 말이야."


친구는 붉어진 얼굴로 내 앞에 앉아 분한 감정을 쉴 세 없이 쏟아냈다. 그녀의 말인 즉슨, 내일모레 나이 서른인 애인이 자기의 생일 선물로 곰돌이 인형을 사줬더라는 것. 그 마음이 성의없고 유치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상했더라는 것. 흥분한 그녀 앞에서 나에게 선택의 여지 따윈 없었으므로 일단은 그녀의 말에 동의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생일날 자기 몸집만한 곰인형을 선물했던 첫사랑을 생각했다. 내가 친구의 말에 함께 열을 내며 흥분할 수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그때 우리는 이제 갓 세상밖으로 나온 순수한 영혼이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학교 앞의 한 일식집에서 자주 함께 밥을 먹었다. 그 밥집에서 멀리 떨어있지 않은 곳에 종종 매대에 인형을 내놓고 파는 아저씨가 나와계시곤 했었다. 매대 위에 눈이 동그랗고 털이 하얀 곰돌이 인형이 선두주자로 내세워지는 날이면 그는 가던길을 멈추고 인형을 덥썩집어 나에게 주던 사람이었다. 나를 닮은 인형이라서 좋다는 말과 함께. 가지런한 치아가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웃는 그 얼굴을 나는 좋아했다. 


 그의 인형선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오는 토요일이면 12시간 이상씩 자버리는 나에게 하루는 잠만보 인형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나를 닮았다는 이유로. 인형의 팔엔 종종 꽃 한송이가 함께 들려 있었는데 그 깜찍한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는 모자람 없이 웃었던 것 같다. 너는 그런 나를 보며 몇배는 더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때 너의 두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나와 닮은 것과 아닌 것으로 나뉘었던 모양이다. 그 촌스러운 인형선물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인형을 사주는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평가할수가 없는것이다 나는. 촌스러운 인형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이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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