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연애 회고록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연애는 한겨울의 눈처럼 계절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존재의 부재는 이미 온도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다. 친구나 가족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가벼운 안부조차 묻기 어려운 사이로 전환되는 건 마치 계절이 바뀌는 느낌과 비슷했다. 지난여름 온 동네에 울려 퍼지던 매미소리가 지금까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연애를 하며 배운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 번의 연애를 끝내면서 피드백을 받거나 개선 포인트를 체크하며 다음 연애를 조금 더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관계와 환경, 상대방에 따라 연애는 각각 다른 길을 걷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깨달았던 것은 길고 짧고, 깊고 얕은 연애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져 바보 같은 일을 벌이거나 태어나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용기를 내고, 반대로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취약하고 부끄러운 점을 알아버리기도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공감하려 애를 쓰고 그에 맞춰 나를 바꿔보려 시도하면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와 마주할 일이 잦아진 것이다.
지나간 연애가 이렇게 가볍게 느껴질 때면 아픈 기억들은 다 잘려나가고 희미해져 가는 추억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러곤 바보처럼 다시 연애를 꿈꾼다.
오늘은 옷장에서 얇은 셔츠를 꺼냈다. 구겨진 셔츠를 전부 꺼내자 옷장 구석에 고이 접힌 반소매가 눈에 띄었다. 아이보리색 반소매에는 희미하게 먼지가 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지난여름의 내가 함께 깔려있었다. 그 계절 나는 반소매를 입고 뜨거운 태양과 습기를 느끼고 있었다. 계속 이어질 것 같았던 한 해가 끝났고 눈이 그쳤다. 다시 더워질 테고 또 한 번 빗줄기와 태양이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