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몸집
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어린 시절, 앞바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공원을 한 바퀴 크게 돌았던 기억이 난다. 동네 강아지들의 산책을 구경하던 작은 키의 나는 그 공원을 좋아했다. 네잎클로버를 찾으려 짧은 허리를 잔뜩 말아 잔디밭을 천천히 걷거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잿빛 나무에서 하얀 꽃이 만개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그게 목련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매년 봄에 하얀 꽃을 든 나무에게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공원은 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지만 수년 동안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반면에 나는 커다란 자전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고 허리가 길어져 오랫동안 땅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일이 없어졌다. 목련이 만개하는 과정을 놓치기 일쑤였고 빈손이었던 나무는 어느새 갈색이 섞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 몸집은 두 배로 커졌지만 공원의 몸집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공원은 봄이 되면 부지런히 옷을 챙겨 입고 여름이면 화사해졌다가 가을이면 가진 것을 전부 내려놓기 시작했다. 공원은 여전히 집 근처에 머물러 있고 나는 출퇴근길에 공원 옆을 지난다. 여전히 내 생활권에 있지만 내가 공원을 인지하는 순간은 매 계절이 시작되는 순간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버스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었다. 정류장에 서있을까 하다가 시간이 넉넉해 공원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 공원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잠에 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다 말고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눈덩이는 발자국이 한데 엉켜 거뭇하고 지저분했다. 그러나 공원은 개의치 않은 듯했다. 나는 조용히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길이 살짝 얼어붙어 미끄러웠기에 빠르게 걸을 수 없었다. 좁은 산책로를 어린아이의 보폭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미끄러질 때마다 삐뚤빼뚤 서툴게 걸었다. 멀리서 보면 꽤나 우스꽝스럽고,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의 모습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한 바퀴를 걷고 나자 두꺼운 외투 때문인지 빙판길 때문인지 등줄기 땀이 났다.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공원 벤치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를 옆에 두고 앉아 서툴게 걷는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얇은 외투였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러 벌의 옷을 껴입으시고는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셨다. 가진 것을 전부 내려놓은 한겨울 공원과 닮은 할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시더니 조용히 일어나 걸음을 옮기셨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공원의 부지런한 변화를 묵묵히 바라보셨을 것이다.
얼마 전 공원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보건소를 만든다는 안내판과 함께 철옹성 같은 공사장 펜스가 들어섰고 그곳을 지키던 나무가 뿌리째 뽑혀 굉음을 내는 트럭에 실렸다. 공원 옆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의 친구였던 공원이, 소중한 자연이 파괴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의료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공원을 가로지르다가 가로로 누운 나무를 보고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졌다. 타의에 의해 추방되는 나무들의 보금자리에 대한 안내문은 그곳에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보건소가 주민을 위해 찾아온다는 것, 주민들은 그것이 끔찍하다는 것 두 가지였다.
공원은 내가 다 커버려서 더 이상 네잎클로버를 찾으러 오지 않을 때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제 몸집이 줄었다. 펜스가 세워져 툭 끊겨버린 산책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이 들어 융기된 보도블록을 밟고 서서 회색 펜스 너머 있었던 예전의 산책로를 떠올려 봤다. 거짓말처럼 끊어진 이 길에서 펜스를 조용히 목도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추위가 가시고 봄이 오면 상처 입은 공원은 또다시 꽃을 피우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