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4월이 왔다
4월은 내게 어떤 달일까 가만히 앉아 생각해 봤다. 작년과 재작년 사월에 일어난 사건을 떠올려봤는데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봄이라는 큰 범주 하에 회상하면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4월 하면 떠오르는 것. 그건 아마 반복적으로 학습된 파편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숫자 4는 왠지 녹색일 것 같고, 엘리베이터 층계 버튼에서 소외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 신분으로 지내온 십수 년 동안 새 학급의 첫 번째 중간고사를 봤기에 4월은 시험 기간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더불어 애매한 기온, 그리고 친해지고 있지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새 학기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 4월을 바라보는 나의 첫 번째 시선은 오랜 기간을 거쳐 학습된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건 새 학기의 불안정감을 이야기한다. 교복 재킷을 입고도 추워서 어깨를 잔뜩 말아움크린 채 등교해서 그늘진 교실에 앉아 허벅다리를 떨다 보면 이게 봄이라면서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새로운 학급과 반 분위기에 긴장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가끔은 쉬는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편하기도 한 이 시기에는 학생들 간의 적응력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원래 모든 관계의 맺고 끊음에선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분위기 파악을 잘하고 사람을 잘 알아보는 지금의 성향은 조용히 눈치만 보던 학창 시절의 성격이 맺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외향적인 친구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각자 자신의 꾸러미를 펼쳐놓고 조금이라도 겹치는 소재를 과장해 가며 떠들어댈 때, 난 꾸러미를 끌어안고 책상에 엎어져 눈을 꼭 감고 있거나 옆반으로 배정받은 친구를 보러 차가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보통 그 친구는 내 꾸러미 속을 꿰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학생들은 소소한 보상을 누리는데, 보통 친구들과 PC방이나 노래방에 가거나 선생님이 교실에서 영화를 틀어주면 과자를 나눠 먹으며 추억을 쌓기 시작한다. 사월의 중간고사는 새 학급 새 진도의 학습량을 판단하는 기회이자 동시에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적응을 잘해나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즌임에 분명하다.
학습된 불안정감 때문일까 사월이 되면 오락가락하는 날씨와 급격히 솟아오르는 풀, 거침없이 색을 드러내는 꽃과 더불어 가슴속 중심축이 휘청이는 기분이 든다. 사월의 어떤 날, 호기롭게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나섰지만 온종일 팔에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예측 가능하거나 익숙한 일이 도통 없는 달이다.
더 이상 새 학급에 적응하거나 중간고사를 볼 일은 없다. 하지만 매년 사월이 되면 알 수 없는 불안정감을 느낀다. 따뜻한 아침 햇살과 그에 비해 코끝이 쌀쌀해지는 공기를 헤치고 걷다 보면서 괜히 한번 꾸러미를 열어본다. 꾸러미를 여닫는 일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