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 대소동

소통과 화합과 이웃 간의 따스한 뭐 그런 얘기는 없는

by 고기왕

아파트 단지에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라는 게 있다. 아파트 한 동마다 한 명씩 대표를 뽑아서 이루어진 기구인데, 쉽게 말해 아파트의 대표다. 그런데 사실 대표라는 것이 할 일만 많고 잘 해봐야 욕 안 먹는 정도에서 그치는 법이라 인기는 없는데, 좀 귀를 기울여보니 욕 먹는 것에 신경 안 쓰고 잘 할 생각도 별로 없으면 금전적인 이득을 꽤 취할 수도 있는 자리라고 한다. 사람들도 대개는 하나하나 문제삼는 것도 귀찮고, 불법적인 이득을 증빙하기도 어려우며,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다보니 얼추 ‘적당히 해먹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 같은데, 들리는 얘기로는 우리 입대의가 그 적당히를 꽤 넘어선 것 같다. 하여간 불신이 커지고 있던 와중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보낸 설문조사 안내가 문자로 도착했다. “아파트에 야시장을 열려고 하니, 의견을 수렴하고자 찬반 투표를 진행합니다.”


아파트에 야시장이 선다는 건 온갖 음식을 파는 천막들과 소형 어트랙션들이 단지 안에 자리를 잡고 손님을 끈다는 얘기다. 그렇잖아도 새로 생긴 동네라 심심하다. 모두 아침에 지친 얼굴로 각자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저녁에 돌아와 주차장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는 나날들만 이어지고 있는데, 이참에 배달비 7천 원을 내야 와주시는 전기구이 치킨도 따끈할 때 집앞에서 먹어보고, 낯선 이웃들과 얼굴도 트고, 굳이 말까지는 트지 않더라도 아 우리 동네에 저런 사람이 혹은 저런 강아지가 살고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면 주차 층간소음 등등의 갈등도 줄어들지 모른다. 물론 모두 이벤트에 목이 말라 있어서 아마 문법론 강좌나 칸트 학술대회를 열어도 몰려갔을 것이다.


당연히 설문 결과는 “합시다”로 되었는데, 주최측에 대한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가 가득한 시기다보니 찬성이 60%가 조금 넘는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이거 또 얼마 해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찬성이 ‘과반’이니 어쨌든 하기로 진행이 되었고 날짜와 이벤트 업체와의 계약 사항이 알려졌다. 그러니까 ‘알린’ 게 아니라 ‘알려졌다’. 옆 단지 사람이 동네 전체 채팅방에 “그 단지 다음주에 야시장 한다면서요?”라고 물어봤는데 모두 금시초문이라, 누군가가 동대표에게 “우리 야시장 해요?”라고 물어보고, 그러다 “네 어제 (동대표 회의에서) 결정됐어요”라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다음 주 행사가 이번 주 ‘어제’ 결정이 되었는데 그걸 옆 단지 사람은 알고 정작 여기 사람들이 모른다니? 그걸 입주민에겐 알릴 생각도 안 했다니? 사람들이 따져묻기 시작하자 ‘소통이 입대의의 의무는 아니지요’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필연적으로 뒷이야기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돈이 걸린 일을 할 때마다 제대로 알려주질 않고 자기들끼리 처리한다는 인상을 계속 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야시장은 대표들이 일을 못한다는 원성이 자자하니 가라앉히려고 한 거라더라, 이벤트 업체 대표랑 몇동 대표랑 아는 사이라더라, 우리 아파트만 돈을 적게 내고 업체가 온다는데 갑자기 해서 그렇다더라와 같은 소문들이 대화방에 돌았고, 일정을 자세히 본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 이틀 동안 밤 11시까지 단지 한가운데에서 술을 팔아도 되나? 큰 단지가 아니라서 건물들 사이에 작은 놀이터랑 정원이랑 산책로 정도가 있고 넓은 공간이 없으니, 그 산책로와 정원의 일부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산책로가 1층 베란다와 맞닿아 있으니 소음과 악취와 사생활 침해는 그대로 저층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밤 10시 정도에 파하는 것으로 조정해달라는 의견이 여럿 올라왔지만 주최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저층 세대는 화가 났다.


행사 하루 전, 마침내 천막과 테이블과 조리 도구들을 실은 트럭들이 차례차례 지상으로 들어왔다. 주민들이 줄지어 입주하는 기간에도 보도블럭 깨진다며 사다리차나 이삿짐 트럭을 포함한 그 어떤 차량도 지상 공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관리사무소의 결의는 어디로 갔나 궁금하지만, 어쨌든 ‘과반 동의를 얻어서 하는 행사’라는 말로 넘어가기로 한 것 같았다. 안전 관련 법률은 지켰겠지만 큰 가스통이 늘어서자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전 관련 법률을 지키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방차 전용 구역에도 트럭과 천막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곳곳의 보도블럭과 잔디가 깨지고 훼손되었다. 사람들은 계속 항의를 했지만 역시 주최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고층 세대도 화가 난 것 같았으나, 야시장은 개장하고야 만다.


염려했던 혼란이 모두 벌어지기 시작했다. 단지 안은 천막과 어트랙션들의 불빛으로 번쩍거렸고, 다른 동네 사람들도 많이 놀러와서 산책로는 인파로 미어 터질 지경이 되었다. 포장마차의 취객들 소음이 높아지고 잔디밭에는 음식물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를 담았던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사람이 조금 드물다 싶은 곳은 모두 흡연 구역이 되었고, 그곳엔 꽁초가 쌓였으며, 쌓인 꽁초는 흡연 구역 표지가 되었다. 채팅방에서는 무질서에 대한 염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취객의 행패나 충돌 같은 게 있으면 어떡하죠?”, “담배 좀 심한데요 창문 닫아도 들어와요.”, “그래도 주최자가 뭔가 관리를 하지 않을까요?”


“입주자 대표님 지금 포장마차에서 술 드시고 계세요 ㅋㅋㅋ”

이제 모두 화가 났다.


다음날 청소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걸 본 사람들은 앞다투어 군청에 신고를 넣기 시작했다. 음식물 위생 상태부터 소방차 전용 구역 침범까지 하여튼 그날 담당자는 꽤 많은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여기는 원한을 품고 죽어 귀신이 된 장화와 홍련도 직접 피의 복수를 하지 않고 사또에게 가서 민원을 넣는 나라요, 천 년 묵은 산신이 산다는 고목을 벨 때도 ‘관청에서 허가했다’는 증명서만 붙여놓으면 굿이고 제사고 나발이고 산신이 당연히 알아서 다른 산 찾아 가야 한다고 믿는 나라다. 그렇다 관(官)의 권위가 해결한다. 공무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즉각 단속이 시작되었고, 알아보니 음식물을 팔기 위해서는 위생 교육과 사전 신고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포장마차 단 한 곳 말고는 아무도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았었고… 그 결과 야시장 둘째 날엔 음식 파는 천막이 싹 빠졌다. 그러자 이제 야시장을 즐기던 사람들, 대개는 사정을 잘 모르는 옆 단지 사람들이 화가 났다. “대체 누가 왜 신고를 하는 거지요?”


여섯 살 우리 아이가 우리 아파트에서는 왜 야시장을 열 수가 없냐며 창문을 보고 펑펑 울부짖는다는 얘기부터, 야시장 연다는 소식 듣고 저 멀리서 장모님 장인어른까지 모셔왔는데 이럴 수가 있냐는 한탄이 채팅방에 쏟아졌다. 이윽고 그 분노는 우리 단지 사람들에게 향했다. “야시장 열어놓고 뒤에서는 신고한 배은망덕한 놈들!” 무슨 은을 배신하고 무슨 덕을 저버렸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가 먹었어야 할 타코야키 훈제치킨 화덕피자를 상실한 것에 대한 분노가 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단톡방 대화명에 옆 단지 이름을 달고 계신 어떤 분께서는 우리 단지 사람들에게 준엄한 꾸짖음을 내리셨는데, “그 단지에서는 그럼 불법주차도 신고하겠네요! 이거 알려지면 그 단지 집값 떨어질 걸요?”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 단지에서도 성격이 덜 원만한 분들이 여럿 계셔서 이후 매우 볼만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신고당한 상인들이 치를 떨면서 이 동네 다시는 안 온다고 선언하셨고, 그 덕에 다음 주 개최 예정이던 옆 단지 야시장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옆 단지 이름 달고 계시던 그분 집값은 괜찮기를 바란다.


단지 안에서도 갈등이 심해졌다. 누군가 “아니 아무리 대표들이 미워도 그걸 신고하는 식으로 잔치를 망쳐도 되나요?”로 포문을 열자 “이게 무슨 잔치냐 너 대표들 프락치냐?”로 이어졌고, “일단 찬성했으면 행사를 밀어줘야지!”에 대해서는 “설문을 할 때 무허가 음식점도 괜찮냐고 물어봤으면 찬성했겠냐?”가 되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소방자동차 전용구역에 천막 설치에 대한 과태료가 행사 주최측에 부과되었고, 사람들은 혹시 그 과태료가 아파트에 부여된다면 관리비가 아니라 입주자대표들 사비로 해결하게 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 오해를 불식하고 화합을 모색하며 그 사이에 이웃 간의 정도 넘쳐야 했을 야시장은 그렇게 끝났고,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서 사람들은 동대표들에 대한 모종의 실력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장이 열리던 밤에 마침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고, 시끌벅적한 게 궁금하기도 해서 한 바퀴 돌며 적당히 먹을거리 한 접시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장의 안내문을 보았다. 하나는 ‘내일까지’ 관리비를 잔뜩 들여 조경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니 아파트 정원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였고, 다른 한 장은 역시 ‘내일까지’ 야시장 행사가 아파트 정원과 산책로에서 진행된다는 안내였다. 이 행사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알 것 같아 쓰게 웃으며 저녁을 먹었다. 맛은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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