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자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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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시절에 각종 운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운전을 글로 배워보고자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라서 다른 사람의 질문이나 대답들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대체로 초보운전자의 질문은 어쩐지 쑥스러운듯 “저는 일단 도로에서 가는 건 잘 하는데요”로 시작한다. 그러면 당연히 베테랑 운전자는 “가는 건 다 잘 해요 ㅎㅎ”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렇다 가는 건 다 잘 한다. 어려운 건 서는 것이다. 차를 세우고 내리는 것이 운전에서 가장 어렵다. 그래서 운전면허 기능시험에서도 T코스니 평행주차니 해서 어떻게든 주차를 연습시키고야 마는 것이고, 주차를 돕는 후방 센서와 카메라를 거쳐 이제 자동 주차 기술까지도 현실로 다가와 있다.
운전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얘기를 나는 믿지 않지만, 주차가 인격을 말해주는 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한다. 조수석의 사람이 편하게 내릴 수 있게 배려하는지, 옆의 차 운전자가 탈 때를 생각하는지, 경차 주차 구역과 여성 주차 구역을 존중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주차장 뒤의 나무를 생각해서 좀 불편해도 전면주차를 하는 사람은, 장애인 주차구역 두 칸을 가로질러 주차하는 사람보다 괜찮은 사람일 것 같으니까. 운전은 예측할 수 없는 문제 상황에 즉시 대처해나가는 임기응변의 연속이지만, 주차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정해진 장소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지의 문제다. 간단히 말해, 운전과 달리 주차는 의지만 있다면 기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좀 과장해서 말하면, 주차로 벌어지는 문제는 결국 의지의 문제가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덜 끼치려는 의지.
주차장이 모자라다. 아파트에서는 임시 주차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임시 주차 공간은 통행량이 적은 시간에 한해서, 원래 주차하면 안 되는 공간을 한시적으로 주차 가능하도록 만든 공간이다. 대개는 주차장의 기둥 틈이나, 양쪽 통행이 가능한 넓은 공간 중 한쪽 벽을 일정 시간에 한해 임시 주차 공간으로 지정한다. 문제는 그 허용 시간이다. 임시 주차 공간에 차가 있으면 아무래도 시야가 가려져 좁아지고, 한 번 회전해서 갈 수 있는 곳도 여러 번 핸들을 돌려야 겨우 나갈 수 있게 되는 등 주차장에서의 운전이 몹시 위험해진다. 그래서 보통 퇴근 시간 이후부터 출근 시간 전까지만 운영하는데, 이른 시간부터 임시 주차 공간에 주차를 허용하면 임시 주차 공간은 현관에서 훨씬 가까운 곳이 많으니까 거기부터 자리가 채워질 것이고, 결국 ‘임시’라는 말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에서는 오후 7시부터 오전 9시 반까지를 임시 주차 허용 시간으로 공지했다. 사실상 출퇴근시간 내내 임시 주차를 허용한다는 얘기가 된다.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대표 중에 누가 임시 주차 자리를 항상 쓰고 있다더라, 오전에 차 일찍 빼기 싫어서 그렇게 정한 것 같더라, 사실 단속도 안 하는 것 같더라 등등. 단속을 안 한다는 얘기를 읽고 생각해보니 단속을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임시 주차 구역에 주차한 차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시간(주차장이 복잡한 시간)은 허용 시간이니 단속할 수가 없고, 다들 출근하고 주차장이 텅 빈 시간에는 문제가 없으니 굳이 단속할 필요가 없다. 임시 주차 구역도 명확히 정해진 게 아니라 적당히 방해 안 되는 곳이면 OK라고 하니 이제 정말로 그냥 아무 데나 공간 있으면 주차하고 집에 가도 되는 것이다. 임시 주차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으나, 모두가 똑같이 받는 피해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의 주차장은 출근하는 차들로 아비규환인데 임시 주차된 차들이 많으면 회전할 때 교차할 때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지만 그랬다간 뒤에 차들이 줄을 서게 되고, 원래 양쪽으로 오가야 하는 길을 임시주차된 차들이 막고 있으면 또 번갈아 가야 하고 차들이 이중 삼중으로 교차하는 곳에선 주차장 안에 정체까지 생긴다. 모두 알고 있다 이러다 사고는 언젠가 난다. 사람들은 관리사무소에 얘기하고 아파트 홈페이지에 글을 쓰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항의를 해서, 결국 임시 주차 허용 시간을 출퇴근 시간을 뺀 시간으로 바꾸고야 말았다. 잘 된 것일까? 아직 모르겠다.
바뀐 임시 주차 허용 시간이 엘리베이터에 나붙었고 또 그 시간에 맞추어 단속을 한다고는 하지만 주차장에 큰 변화는 없다. 강력스티커를 붙이고는 있지만 정말 “흔적 안 남기고 떼기 좋게” 살짝 붙여놓기 때문에 그 강력이 무슨 소용인지도 의문스럽고, 다 큰 어른들끼리 운전하고 사는데 초등학교 때 칠판에 떠든사람 이름 적는 것처럼 스티커를 붙여놔야 질서가 유지될 거라는 것도 좀 웃기고 자괴감도 든다. 여전히 주차 스티커 좀 세게 떼기 어렵게 붙이라는 글이 단체 채팅방과 카페에는 올라온다. 관리사무소에서 살짝 붙여놓은 게 싫어서 지나가다가 스티커를 꾹꾹 눌러 세게 붙여놓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보는 것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문제는 ‘질서’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절대로 경차 구역에 차를 대지 않지만 ‘너무 큰 차 아니면 경차 구역에 대도 괜찮지 않나?’하는 사람도 많고, 경차가 일반 주차 구역에 주차하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나는 주차장이 부족한 아파트에 오래 살아서 이중 주차를 보면 그러려니 하는 편이지만,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출퇴근 시간의 이중 주차를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각자에게 각자의 원칙이 있고, 참을 수 있는 질서와 그렇지 않은 혼란이 있다. 틀림없이 어떤 사람은 기둥 사이에 주차를 계속하면서 왜 이걸 못하게 하는지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어떻게든 통행에 방해를 덜 주려고 최대한 선 가까이에 붙여 주차하고 몇 번이고 줄을 맞추는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미묘한 의지의 차이를 운전을 해본 사람은 안다. 이 사람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불편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는지, 아니면 뭐 어쩌겠냐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해놓은 주차인지.
결국 공동주택의 주차 규칙이라는 것은 모든 각각의 질서들이 적당히 합의할 수 있는 선을 찾아가는 작업이 된다. 그 경계는 필연적으로 모호하게 그어지고, 많은 오해를 겪어가며 조금씩 분명해져 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공동체 의식과 그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한 숙의의 과정이겠지만 그걸 2025년에 바라고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는 생각이고. 어쨌든 스티커든 페인트든 바리케이드든 동원해서 사고라도 나지 않게 막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크다.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면, 타인을 배려하는 의지로 가득찬 주차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면, 최악의 결과를 막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어쨌든 이 두서없는 주차 얘기를 맺어야겠다. 사실 나는 요즘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전제를 의심하고 있다. 당연히 등록된 전체 차량의 수보다 주차장 면수는 적다. 그런데 아파트 모든 차량이 동시에 주차장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 것 같고, 차량을 2대 등록한 사람 중엔 어차피 무료니까 회사 차나 가족 차를 더 등록해놨다는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아파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주차 구역에는 항상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 의심을 부추긴다. 9시가 다 되어 퇴근했을 때도, 여행을 갔다 자정을 넘어서 도착했을 때도 빈 자리는 늘 있었다. 1년 동안 일주일에 6~7일은 차를 몰고 나갔다 들어왔지만 단 한 번도 임시 주차 자리가 필요했던 적이 없다. 역시 선량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에서 주차 자리를 점지해 주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아파트의 주차 자리가 부족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그 수많은 주차 불만 속에서도 “자리가 없어서 밖에다가 댔어요”라는 글은 못 봤는데… 하여간 곧 주차장 실사용 조사라는 것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그 실사용 조사라는 것은 임시 주차 구역 정하기 전에, 아니 주차 규약을 정하기 전에 미리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뭐 역시 사정이 있었겠지. 사실 주차장은 모자라지 않고, 이 모든 분쟁이 “더 좋은 자리에 대고 덜 걷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벌어진 거라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긴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