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주차 구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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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주차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사람들은 꾸준히 화가 나 있다. 주차 질서를 가지고 이 단지에 강림했어야 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주차금지강력스티커”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일부터 주차 질서를 위반한 모든 차량에는 강력 스티커가 붙어야 했으나… 이건 할 얘기가 많고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가 있으니 좀 미뤄두고, 공연히 주차 분쟁의 불똥이 튄 경차에 대해 생각한다. 아파트에는 경차 주차 구역(정확히는 친환경차 주차 구역)을 별도로 10% 이상 설정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경차 주차 구역은 경차만 주차하는 곳이니까 주차면의 크기가 작고, 그래서 일반 차량보다 더 많은 주차면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부족한 주차 공간을 한탄하던 사람들의 눈에 ‘경차 주차 구역’과, 일반 주차 구역에 주차한 경차들이 보인 것 같다.
부족한 주차장에 지친 사람들은 ‘내가 주차할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에서 모든 사고를 시작하고 진행한다. 이를테면, 왜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이 따로 있는데, 일반 주차 구역에 차를 대는가?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에 먼저 착착착 들어가주면, 일반차인 내 차가 주차할 자리가 생겨날 것이 아닌가? 와 같은 사고가 그러하다. 시작은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에 대는 게 예의 아닌가요?”라는 글이었다. 좋은 수식어를 덧대어 씌어 있긴 했으나,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에 주차하는 것이 “일반 차량에 대한 예의”라는 구절이 좀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다. 예의란 무엇인가. ‘에티켓’과 ‘매너’와 ‘컬티지’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는 애매한 의미의 단어. 서로 지킬 수도 있지만 한국어에서는 종종 아래에서 위를 향해 지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누가 누구에게 지키는지가 일종의 서열을 결정짓는다고도 보이는 단어. ‘경차는 경차 자리에 먼저 주차해주시면 좋겠다’와 ‘경차는 경차 자리에 주차하는 것이 일반 차량에 대한 예의다’는 말은 아주 다른 대화의 맥락을 구성한다. 서로 닉네임에 내가 어느 동에 사는지 적어 놓고 있는 커뮤니티라 가능하면 싫은 소리도 둥글게 둥글게 돌리고 돌려서 이야기하는 곳이지만 당연히 좋은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차량 두 대 중 한 대를 경차로 갖고 있는 사람이 꽤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각설하고,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과 일반 주차 구역에 모두 주차를 할 수 있는데, 일반 차량은 일반 주차 구역에만 주차를 할 수 있는 것이 불평등하다는 주장에 대해 좀 생각해본다. 뭐 생각할 것이 있나 싶긴 하지만 일단 첫 번째로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경차 주차 구역은 경차 사이즈에 맞추어져 있어서 좁다. 그러니까 애초에 일반 소형차부터는 주차를 못 하게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얘기다. 이론적으로는 주차를 해도 되네 안 되네를 떠나서 일반 차량은 주차할 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을 찾고야 마는데, 경차 두 대 자리에 큰 차 한 대를 주차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실제로 보면 너무 당당해서 뭐라 말이 안 나온다.
두 번째로 제도적인 지원을 얘기할 수 있다. 경차 주차 구역은 ‘친환경’ 차에 주어지는 혜택이다. 경차가 정말로 얼마나 친환경차냐는 문제가 남긴 하지만 그건 따로 따질 문제고, 어쨌든 배기가스 덜 나오는 차에게 혜택을 주기로 사회가 합의했고 경차 주차 구역은 그 합의의 여러 결과물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경차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하고 싶으시면 그 페라리는 파시고 모닝을 사면 됩니다. 라는 이야기. 세 번째는 수학적인 문제다. 경차 주차 구역에 경차가 모두 주차되어 있을 경우를 가정하자. 이때 경차가 한 대 더 주차장에 들어온다면 그 경차(A)는 일반 차량 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밖에 없다. 이후 원래 경차 주차 구역에 주차해둔 차(B)가 출차하게 되면 경차 주차 구역 하나가 비게 되는데 이 경우 A는 B의 자리로 이동해야 하는가? 대체 무슨 수로 그걸 가능하게 할 생각인지? 일반 차량 구역에 주차된 경차가 A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애초에 “경차는 경차 주차 구역에만”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얘기를 어떻게든 현실로 만든 아파트가 있긴 한 모양이다. 이게 어떻게 운영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정해진 시간에 주차 단속을 해서 경차 주차 구역에 주차하지 않은 경차를 파악하고, 이 경차가 주차할 때 다른 경차 주차 구역이 비어 있었는지를 CCTV를 통해 검토하여 만약 빈 경차 주차 구역이 있었을 경우 “강력스티커”를 붙인다고 한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민원과 항의로 매일같이 관리사무소가 뒤집힐 것 같은데 어떻게 저걸 실행하지? 관리사무소의 모든 인원이 주차 단속과 경차 증오에 진심이라서 저 단속을 성실하게 진행한다고 해도 공정성의 문제가 남는다. 경차 주차 구역을 가장 문에서 가깝고 좋은 자리에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원래는 한 대를 주차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을 활용하려고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차는 이른바 “좋은 자리”에 영원히 주차할 수 없다.
‘경차 구역에만 경차가 주차하기’가 불가능한 이유로는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역시 경차 운전자들이 화가 난 건 일반 차량들이 경차 자리에 주차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건 법적 단속 대상이 아니라 괜찮아요.”라는 얘기를 당연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 사회가 공공질서에 대해 하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처벌이 없으면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함’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은 대체로 비어 있지만 아무도 그 비어 있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저기에 주차했다간 과태료의 철퇴를 맞게 되니까. 반대로 여성 전용 주차 구역이나 경차 전용 구역에 대해서는 비어 있으면 아까워한다. 아까워하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스스로 그 자리를 채운다. “진짜로 하면 안 되는 거면 뭔가 처벌이 있을 텐데 없잖아? 그럼 해도 되는 거지!” 즉 사회에서 하지 말라는 것 중에서는 사실 해도 되는 것과 정말로 하면 안 되는 게 있으며, 그 기준은 처벌의 유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토록 강력 스티커를 갈구한다. 적어도 30분 이상의 귀찮음과 시간 소모를 부여할 수 있는 징벌을 내리고, 해선 안 되는 일을 한 사람이 바쁜 와중에 스티커를 떼느라 삶이 꼬이고 후회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해도 별일 없으면 해도 된다”라는 생각은 결국 비용을 발생시킨다. ‘경차 주차 구역’이라는 걸 설정해두면 시민들은 그 구역을 정한 취지를 존중하고, 별다른 규제 없이 질서를 유지하여 경차만 경차 주차 구역을 이용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해도 별일 없으니까” 하고, 제도를 정한 취지는 손상되고, 그러나 그 취지에는 명분이 있으므로 지켜야 하고, 결국은 별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단속 규칙 마련과 인원 고용, 장비 구입이 필요해짐과 함께 향후에도 지속적인 관리의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단속을 엄격하게 하는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도 처음에는 자율이었고, 그러다 지키질 않으니 장애인 주차 구역 주차 가능 차량이라는 표지가 생겼고, 그러다 장애인 명의로만 되어 있는 차량을 비장애인이 몰고 다니면서 주차를 해대니 “장애인 자동차 표지가 부착된 자동차에 보행상 장애가 있는 자가 탑승한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안내가 주차장마다 다시 붙어야 했다. 친환경 주차 정책이 그대로 간다면 나는 경차 주차 구역도 비슷한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한다. 소형차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내문에 경차 규격이 기입될 것이고, 일단 네모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차 칸 안에 경차 크기에 맞는 주차방지턱이 추가로 설치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 단속 규정을 정하기 위한 전문가 협의회와 자문회의가 열리며 자문료와 회의비가 수백만 원 쯤 나간 다음 규정이 만들어지겠지만 그게 꼭 주차장의 평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끝)
※ 하여간 경차 주차 분쟁은 더 큰 문제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는데, 그것은 강력스티커가 유명무실해진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건 나중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