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분쟁관찰기 1

돌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by 고기왕

입주한 아파트가 주차 문제로 시끄럽다. 차는 많은데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입주 안내에는 세대당 1.4대의 주차 공간이 제공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게 많은지 적은지는 사실 살아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 생활 패턴도 각양각색이고, 주변 대중교통 상황에 따라 갖고 있는 차의 수도 바뀔 것이고, 주차 규제를 얼마나 엄격하게 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거니까 그렇다. 일단 나는 세대 당 0.6대인 아파트에서 10년을 살아봤는데, 1.4대면 그때보다 두 배가 넘게 주차장이 넓어졌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그렇다면 혹시 내가 주차의 천국으로 이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0.6대를 주는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아침마다 서로의 이중 주차된 차를 밀며 테트리스를 해야 했고, 그래도 주차할 자리가 없으면 단지 진입로 끝까지 꽉 채워 갓길 주차를 해놓아야 했다. 한밤중에 집에 왔을 때 갓길 주차할 자리마저 없어서 결국 연구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km 정도의 가로등도 인적도 없는 밤길을 혼자 터덜터덜 걸어서 온 일도 있다.


아무튼 새 아파트는 사람들로 천천히 채워져갔고, 기대했던 주차 천국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디엔가 ‘빈 자리’는 항상 있었다. 단체 채팅방이나 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보니 이제 입주할 사람은 다 했다고 한다. 동대표들이 뽑히고 관리사무소도 새로 들어오고, 대표자협의회(?) 같은 것도 생겨서 공동주택의 규칙들을 협의하고 정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입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주차장은 점점 빽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카페에 이래도 되는 건가요? 같은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진과 함께 어떤 차의 주차가 엉망이라는 걸 지적하는 글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댓글을 단다. 어떤 차는 이중 주차를 당연하게 하더라, 어떤 차는 경차 두 자리를 차지하고 대더라. 저 차는 허구헌날 현관 앞을 막고 주차한다… 모두 화가 나 있었고 그 분노는 ‘주차장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관리사무소’와 ‘주차 규칙을 빨리 정하지 않는 입주자 대표들’에게로 향했다. 물론 전자는 관리를 위해서는 합의된 규칙이 필요한 데 그게 없었고, 후자는 천 세대가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며칠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모두 억울해했다.


주차 규칙은 다른 아파트의 규칙을 토대로 만든다. 기존 아파트 주차 규칙들도 규모가 비슷하면 대동소이한데, 그 ‘소이’를 아파트 사정에 맞게 결정하는 과정이 예민한 지점들을 건드리게 된다. 금전 문제에서부터 분쟁이 생겼다. “몇 대부터 주차관리비를 추가로 부과할 것인가?” 주차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소모된다. 바닥이 닳고, 물이 새고, 도색이 벗겨진다. 이걸 수리하는 데는 몇 년에 한 번씩 꽤 큰 비용이 들어가고 그때를 위해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별도의 주차 비용을 징수해서 모아둔다고 한다. 와 내가 이런 것도 알게 되다니… 하여간 그래서 아파트마다 2대나 3대부터 적게는 몇천 원, 많게는 몇십만 원까지 내야 하는데, 이걸 2대까지는 무료로 하느냐, 2대부터 징수하느냐를 가지고 격론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입주민이 전부 가입한 것도 아니라 대표성을 인정받기도 어려운 인터넷 게시판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하기는 불가능하고, 투표 말고는 답이 없는 문제다. 그리고 투표 결과도 사실상 결정난 거나 다름없었다. 2대를 가진 세대가 가장 많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으니까. 입주민 투표를 통해 2대까지는 무료로 주차하고 + 3대째는 매달 30만 원을 걷고 + 4대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차 불가라는 규칙이 정해졌지만, 그 규칙이 발표된 날 차 한 대가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이 게시판을 통해 선언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데 두 대까지 무료가 된다면 차가 한 대 있는 집은 손해다. 따라서 우리 집은 회사 차도 여기에 등록해서 주차를 해놓겠다. 또는 아는 사람 차를 등록해서 여기에 주차하라고 하겠다. 즉 일종의 사보타주였다.


사실 한 대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두 대 세 대를 주차해놓고 있는데 밤늦게 퇴근했더니 한 대 있는 내 차를 주차할 자리가 없다면, 공동체에서 부족한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 맞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 한 대씩 모두 지정 주차 구역을 주고 두 대부터는 비지정 주차 구역을 알아서 잘 나누는 방식은 어떨까? 누군가 이 얘기를 꺼내자 이제 아파트 현관과의 거리가 또 문제가 된다고 한다. 501호 사는 김씨의 지정 주차 구역은 현관 바로 앞인데 502호 사는 박씨는 주차하고 매일 200미터를 걸어와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에겐 불만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달에 한 번 지정 주차 구역을 한 칸씩 옮겨 순환시키면 어떨까? 대략 천 면쯤 있다고 가정하면 한 바퀴 도는데 80년쯤 걸릴 텐데 그걸 마냥 기다리며 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아예 한 달에 한 번씩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섞는다면? 계속 운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지하주차장을 산책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중간에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오고 차를 사고 팔고 하다보면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정 주차 구역을 바꾸면 모두 그 바꾼 구역을 정확히 인지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하여간 사람들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고, 입주민 카페 게시판과 채팅방은 갈수록 목불인견이 되어갔다. 두 대까지 주차가 무료면 차가 한 대인 집은 관리비를 깎아달라는 주장이 나왔고, 그 주장을 우리집은 애가 없으니 물놀이장과 놀이터 관리에 들어가는 관리비는 빼달라는 주장이 되받았다. 우리 집은 운동을 싫어하니 헬스장 관리비를 빼달라고 해도 되냐는 얘기와 더불어 모두들 각자 자기가 안 쓰는 공용 공간과 자신과 관계 없을 것 같은 관리비 항목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기억나는 글이 나 있어서 요약해두면 이렇다.


“우리 아파트는 작은 면적, 중간 면적, 큰 면적의 동이 있는데, 큰 면적의 동에는 사람이 많이 살 것이고 차도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큰 면적의 동에 사는 사람은 3대까지 무료로 하고, 작은 동에 사는 사람은 1대만 무료로 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 의견은 십자포화를 받고 내려갔지만… 그 사람의 글에는 자기가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큰 평수에 살면서 3대 이상의 차를 갖고 있을 그에게는 집의 평수에 따라 무료 주차장도 나누어 할당하는 방법이 타당하고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주차 규칙은 애초부터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주차 비용으로 누구한테 얼마를 걷든 간에 이미 쓰고 있는 차를 줄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주차장의 면수는 영원히 차량보다 적을 거라는 거였다. 당장 이 동네는 아파트랑 치킨집 몇 개 말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동네니까. 20대부터 시골 동네에서 쭉 살아와서 늘 우리 동네엔 뭐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게 일상이었지만 스타벅스가 없는 것과 버스정류장이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기저기서 애써주어서 길 한편에 임시 버스 정류장 현수막이 걸리고, 거기에 근처 읍내까지 가는 버스가 n대 선다고는 하는데 그걸로 충분할 리가 없다. 여기서는 차를 소유하지 않으면 어딜 갈 수가 없는데 예를 들어 병원이 그렇고, 약국이 그렇고, 은행과 미용실과 서점이 그렇다. 물론 언젠가 여기에 KTX가 서고 지하철이 뚫리며 롯데마트와 현대백화점과 교보문고가 앞다투어 생기는 그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고…. 어쨌든 차를 줄일 사람은 없었고 줄일 수도 없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문제를 입주자 대표들도 인식은 하고 있어서, 우선 입주민이 아닌데 주차를 하고 있거나(근처 공장 사장님이라든지…), 캠핑 트레일러같이 차가 아닌 것들부터 다 내보내고, 그 다음에 상황을 봐서 야간에만 주차가 가능한 임시 주차 구역을 만든다고 한다. 약간 여유 있는 곳이 있다면 주차 칸을 더 그어서 면수를 늘리는 방법도 찾아본다고 하고, 하여간 이래저래 방법을 강구하고는 있는데 여전히 게시판은 주차로 시끄럽다.


그러다 이게 주차장 부족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시판을 자세히 보면 “내가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불편해요”라는 글은 거의 없지만, “이 차 이렇게 엉망으로 주차했어요”라는 글은 자주 올라온다. “주차 면수를 늘려 달라”라는 요청보다는 “민폐 주차 차량에게 어떻게든 벌칙을 주라”라는 요청이 훨씬 많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주차장이 모자란 게 아니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주차 구역에 차를 대고 걸어오는 것은 괜찮지만, 걸어왔을 때 주차 구역도 아닌 현관 앞을 차가 막고 있으면 거기서 화가 난다. 다음날 터덜터덜 멀리 걸어가 다시 차를 타는 것도 괜찮지만, 가는 길에 아무 데나 대놓은 차들이 가득하면 그때부터 억울해진다. “내가 이렇게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닌데!”


하여 나는 주차장을 조금 늘리는 방식이라든지, 일부 넓은 구역에 이중 주차를 밤에만 허용하는 방식으로는 이 혼란과 분노가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주차 구획이 늘어나든 줄어들든 그냥 현관문 입구를 막고 차를 대는 사람은 그냥 계속 거기에 주차할 것이다. 집에서 제일 가까우니까. 이중 주차 시간을 정하든 말든 지금 이중 주차를 아무데나 하는 사람도 계속 거기에 할 것이다. 거기가 주차하기 제일 편하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도 비슷할 것이고 그래서 무질서한 주차 차량 앞유리에 강력 스티커를 붙여놓으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그냥 스티커를 와이퍼와 앞유리 사이에 끼워만 두는 모양인데, 얼마 전에 다른 차에 끼워져 있던 스티커를 누가 자기 차 위에 올려두었다는 사람의 사자후가 게시판에 올라왔고, 댓글에는 “그 스티커 다른 차 타이어에 붙여놓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세요.”가 달렸다. 생각보다 근처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9월) 드디어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10월부터 ‘강력 스티커’를 붙여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틀림없이 지난 8월에는 9월부터 강력 스티커를 붙여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 같지만 뭐 사정이 있었겠지. ‘계도기간’이라지만 누가 어떻게 계도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이끌어야[導]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주차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니 몰랐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강력 스티커가 주차 문화 발전을 선도할 수 있을까? 증오와 분열을 넘어 주민 화합의 장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인가? 보름 뒤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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