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타는 나의 읽기 쓰기를 구원할 것인가
ADHD, 그러니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의심한 것은 재작년 여름의 일이다. 학회 발표랑 회사 중요한 일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기였는데, 바쁘니까 당연히 틈틈이 딴짓을 하다가 ADHD 환자의 수기를 하나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증상이, 아니 그냥 삶이…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나도 이런데, 어 나도 이런데?, 어 나도 이런데!! 그래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퇴근하고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정신과에 갔는데 내 얘기를 듣더니 의사가 말했다. “일단 ADHD는 절대 아니에요. ADHD는 모범생일 수가 없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는 의학박사랑 의학에 대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학회가 얼마 안 남아서 불안한 것 같다고(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있냐 처음도 아니고…) 항불안제를 처방받았고, 항불안제는 정말이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해서 마음을 “하하 될 대로 되라지”의 상태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좀 못 쓰면 어때 괜찮아”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 시기를 넘기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집중력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집중이 어려운가. 그러다 이 문제가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ADHD 환자의 수기와 관련 논문을 몇 편 더 찾아 읽고, 내 현재의 증상과 과거의 증상 중에 유사한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는 문제가 없었나? 물론 성적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게 집중력이 좋아서였나? 몇 가지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리고 쓰다보니 몇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집중력 문제를 겪고 있고 초진입니다. 어 지금 오셔서 좀 기다리시면 상담 가능한데요 예약은 4월 말에나 가능하세요. 기다려도 괜찮으니 지금 가겠습니다.
내가 정리한 걸 보여주니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심리 검사랑 뇌파 측정을 해보자고 한다. CAT검사라는 길고 지루한 검사를 먼저 받았다. 화면을 보고 있다가 동그라미가 나올 때만 스페이스를 누르는 검사부터, 네모가 반짝거린 순서대로 기억했다가 그걸 반대로 누르는 검사 같은 건데 한 40분쯤 하고 있으면 결과는 둘째치고 졸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피검자의 주의력을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니 물론 이 지루함은 의도된 것이다. 끝나고 나서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는데 이건 집에 가서 두통약을 먹고서야 좋아졌다.
다음엔 뇌파 검사를 했다. 머리에 두건 같은 걸 쓰고, 젤을 부어넣은 다음 전극을 꽂았다. 벽에 붙어있는 풍경사진만 바라보면 된다고 하면서 의사는 나를 가장 혼란에 빠뜨리는 말을 했다. “그냥 멍때리시면 돼요” 나는 멍을 때린다는 게 뭔지 모른다. 당연히 의미는 알지. “멍하게 -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 있으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머리에서 생각이 멈출 수가 있단 말인가? 뇌파가 측정이 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대충 알 수 있는 건가? 저 사진은 어디지? 저 사진의 정보를 내가 생각해야 하나? 아무 생각도 안 들면 잠이 드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자기 직전까지도 생각을 하는데? 대체 김경문은 언제까지 노시환을 4번에 박을 거지?
그렇게 아무 생각이나 하고 있는 와중에 검사가 끝났다. 머리는 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자칫하면 머리에 신경쓰는 영포티 아저씨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물티슈로 벅벅 닦아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는 뇌파 검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이른바 ‘조용한 ADHD’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CAT검사에서도 특히 청각주의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고, 어쨌든 성적이 잘 나오고 시키는 걸 잘 하니까 발견이 어려웠을 거라고. 내가 수업시간에 늘 (조용히) 딴짓을 하던 이유가 있던 것이죠…
그리하여 메틸페니데이트. 더 알려진 말로는 ‘콘서타’를 처방받았다. 오늘이 사흘째 복용인데 별다른 부작용은 없고 확실히 텍스트를 읽을 때 내용이 또렷해진 느낌이다. 읽기는 곧 저자의 말을 듣기인데, 지금까지의 독서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월남전 무전기 정도로 들렸다면 지금은 저자랑 만나서 얘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삶에서 잔실수도 줄었고, 무엇보다 잔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던 불안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도 약효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이 긴 글을 쓰는 동안 단 한 번도 딴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쓰는군요. 글을 쓸 때 글쓰기만 할 수 있군요. 그런데 이제 나도 할 수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