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귀어인인 그가 흰다리새우 양식을 택한 건 필요한 초기 자본이 다른 물고기 양식보다 적어서였다. 미생물을 활용하는 기술을 도입한 이유도 면적 대비 효율이 높은 양식법이었기 때문이다. 가진 땅과 자본이 많지 않았던 청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천재민 새우궁전 대표에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자본 없이는 진입할 꿈도 꾸지 말라는 양식업계에서 빠르게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국내 새우양식업계 최초로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을 획득했다. 차근차근 성장해나가고 있는 귀어인 천재민 대표를 만나러 여수를 찾았다.
전남 여수 화양면 용주리.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해안가에 작지 않은 규모의 시설이 보였다. 실외 양식장 4개와 하우스 양식장 1개. 천재민 대표가 운영하는 '새우궁전'의 사업장이다. 눈으로만 봐서는 흰다리새우 양식장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실외 양식장은 3월 입식을 위해 겨울엔 비워져 있다. 새우는 수온이 높아야 자라기 때문이다. 새우 양식의 적정 수온은 28~30도다. 봄부터 키우기 시작해 8~10월에 출하하는 게 보통이다. 겨울엔 실외 양식장 대신 실내 하우스에서 새우를 키운다.
300평 규모의 실내 양식장 시설에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쏟아졌다. 새우가 잘 자랄 수 있게 온도를 맞춰줬기 때문이다. 하우스 안에 설치돼있는 건 10평짜리 탱크 10개. 각 탱크마다 짙은 황토색 물이 가득차있었다.
탱크 안을 들여다봤지만 새우가 눈에 보이진 않았다. 천 대표가 그물로 물을 훑어낸 후에야 팔딱이는 작은 새우가 딸려 올라왔다. 이제 입식한지 45일 되는 새우들이다. 탱크 1개 당 1만~1만5000마리 정도의 새우를 키우고 있다. 계산해보면 평당 1000~1500마리를 넣은 것이다. 보통 새우 양식장이 평당 200마리 정도를 키우는 것과 비교할 때 면적 대비 효율이 높다. 천 대표는 "좁은 땅에서 밀도 높게 키우는 게 가능한 양식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오플락(미생물을 활용한 수산물 양식법)이라는 기술로 새우를 키운다. 미생물을 통해 사료 찌꺼기나 배설물에서 발생되는 오염물을 분해하는 게 바이오플락 기술의 핵심이다. 천 대표는 "물갈이가 필요없는 게 장점 중 하나다. 한번 물을 넣어주면 새우가 다 자랄 때까지 물을 바꿔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미생물이 알아서 오염물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미생물 덕에 사료 양이 줄어들고 배설물이 쌓이지 않는다. 성장이 빨라 생산량이 늘고 연중 출하가 가능하다.
10개의 양식탱크엔 부글부글한 거품이 떠 있었다. 얼핏 보기엔 물이 오염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이 나는 것 또한 미생물을 통한 수질 관리 과정이라고 천 대표는 설명했다. 각 탱크 옆에는 산소 양을 조절하는 기계가 설치돼 있었다. 미생물이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산소를 제때 잘 공급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게 천 대표의 설명이다.
직원들이 탱크에 들어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질관리 전문 인력들이라고 천 대표는 설명했다. 양식에 필요한 미생물을 적정 농도로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잉여 미생물을 사람이 직접 처리해주는 것이다.
천 대표는 젊은 나이에 귀어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양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양식업 하면 돈 많이 버는 시대였어요. 수산 쪽에 가능성이 있다는 삼촌의 권유를 받았죠." 경상대 해양과학대학교에 진학해 양식을 전공했다. 새우 양식이 아닌 물고기 양식을 전문으로 배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물고기 양식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시설비가 많이 들었다. 물려받을 양식장도, 여유 자금도 따로 없었던 천 대표가 물고기 양식을 바로 시작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저희 집이 (돈이) 있는 집도 아니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양식을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양식이 뭔지 말이에요. 그러다 흰다리새우에 관심을 가졌죠."
새우 양식은 다른 물고기 양식보다 초기 자본이 덜 들었다. 거기다 천 대표가 귀어했던 2010년은 한창 새우 요리 붐이 일어났을 때였다. 새우 양식을 배워보자고 결심했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새우 양식장을 찾아다녔다. 현장 직원으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 충남 태안의 종묘 부화장에서 근무하고, 전남 신안과 해남의 새우 양식장에서도 일했다. 새우 양식 현장에서 직원으로 2년 반을 보냈다. "계속 양식장을 옮겨다니며 일하다보니 이젠 내 양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하며 번 돈에 더해 해양수산부의 어업인후계자 지원금을 신청했다. 대학에서 양식 전공을 한 데다 2년 반의 현장 경험 덕에 어업인 후계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 작업은 사업장을 세울 곳을 찾는 일이었다. 자금이 넉넉치 않아 땅을 바로 살 수는 없었다. 빌릴 수 있는 땅을 알아봤다. "쉽지 않았어요. 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찾았어요. 오래 걸렸습니다. 땅 주인은 하라고 하는데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마을 주민들이 환영하는 곳은 땅 주인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현재 부지를 마지막으로 보러 왔는데 여기다 싶었죠."
새우 양식장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동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위해 주민들을 모아 동의를 구했다. "배출수가 바다로 흘러간다거나 바닷물 튀겨서 논밭에 피해를 줄 거란 걱정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었습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습니다." 천 대표는 이제는 화양면 어업인연합회 총무까지 맡으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어렵게 양식장을 세웠지만 직원으로서의 현장 경험과 경영주로서 직접 양식장을 운영하는 일은 달랐다. 생각도 못했던 난관들이 계속 닥쳤다. 처음엔 남들처럼 일반 실외양식을 했다. 하지만 수심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생산량이 기대한 것만큼 나오지 못했다. "젊은 패기로 버텼죠. 실패에서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그 고민 속에서 나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적용하고 있는 바이오플락 양식법이었다. 일반 실외양식은 기온 때문에 1년에 한 번밖에 새우를 생산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이오플락을 활용한 하우스 양식은 1년 내내 날씨와 상관없이 출하할 수 있다. 새우가 흔하지 않은 계절에 출하해 높은 가격을 받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거기에 바이오플락은 양식 면적 대비 생산량이 많았다. 일반 양식법에 비해 3~4배 많은 새우를 키울 수 있었다. "저는 사정 상 땅을 많이 빌리지 못했어요. 면적 대비 효율성이 높은 양식법을 찾다가 바이오플락을 도입한 겁니다."
국내에 도입된지 얼마 안 된 기술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온에 민감한 미생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천 대표는 회상했다. "기술문제가 생겨 해결하기 위해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술 업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같이 고민하면서 해결할 방안을 찾았고요. 실패도 있었지만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이 언젠간 제 무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더 건강한 새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새우 양식장에서는 물에 살균제를 뿌리거나 새우에 항생제를 먹여 생산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활용하는 바이오플락 양식법은 무항생제‧친환경 양식법으로 알려져있다. 미생물이 오염물을 분해하기 때문에 항생제를 따로 쓰지 않아서다.
최근엔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항산화 성분 개발 기업과 협업해 기능성 특화 새우를 키우고 있는 것. 해당 성분이 들어간 전문 사료를 주면서 항산화 성분 함유량이 월등히 높은 새우를 키우는 게 목표다. 기능성 새우는 오는 3월에 첫 출하된다. 이 또한 다른 새우와 차별화하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도전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혼자 고민만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천 대표는 말했다. 바이오플락 양식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기업 수질관리팀과 협업했고, 기능성 새우 생산을 위해서도 항산화 성분 추출 기술을 보유한 전문 기업과 힘을 모았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협력하는 능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 대표는 "주변의 제안을 주의깊게 듣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게 빠른 시간 내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민들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지금도 귀어를 꿈꾸는 사람들 중에 천 대표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땅이 없거나 자금이 없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초기 자본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상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새우 협동조합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고요." 천 대표는 "앞으로 어업에 관한 인식은 더 좋아질 것"이라며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나누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