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한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써서 제출해야 했던 ‘학생환경조사’에 취미를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빈칸과 씨름했던 순간들을. 내가 어른이 되면서 취미에 대한 질문은 더욱 자주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자기소개'에, 꼭 '취미'가 들어가야만 할까?
취미가 없는 게 이리도 이상한 ‘상태’인지 몰랐다. 오히려 자꾸 내게 취미를 묻는 세상이 가끔 싫었다. 남들은 독서, 영화감상, 요리, 운동, 그림 등 너무 쉽게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것처럼 보여 부럽기도 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그들만의 방식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가끔은 나도 뭐라도 하나 말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늘 골치가 아팠지만 나는 나의 취미를 여전히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나에게는 취미를 즐길 시간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딱 한 가지, 좋아하는 게 있기는 했다. 바로 피아노 연주였다. 어릴 때부터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것이 '피아노'다. 그러나 이 피아노는 나에겐 취미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다.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나에게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픈 나의 꿈을 향해 나의 온 마음과 시간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5살 때부터 시작한 피아노로 유학을 떠나 학위를 받기까지, 나의 삶은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쳇바퀴와 같은 일상이었다. 결국 그 피아노로 지금까지 30년 이상 리사이틀 반주자로서, 찬양대 반주자와 지휘자로서, 또 음악 선생님으로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나의 삶에 이제껏 상상해 보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코로나 19 팬데믹’이다. 모든 일상이 정지되었다.
처음 두 달은 생애 휴가처럼 느껴져 맘껏 즐겼다. 늘 내가 만든 바쁜 일정에 쫓겨 사느라 잘 돌보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점점 나의 가슴은 허전해지고 텅 비어있는 껍데기 같았다.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지 지루하고 막막했다. 학생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반주는 물론 교회예배조차 없어졌다. 마치 사막에서 길을 읽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낭독 클럽'이라는 채팅방에서 낭독 기초반 수강생 모집을 하는 공고를 보았다. 평소 묵독과 속독만을 선호하던 나는 늘 시간낭비라고만 여기던 낭독을 해보고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낭독 클래스에는 나를 포함하여 12명의 수강생들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 앞에서 그날처럼 심장이 쿵쿵,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린 적은 없는 것 같다. 낯선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는 부담감, 평생 해 온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분야의 '기초'를 배우고자 새벽 5시부터 앉아있는 나의 모습 또한 너무나 낯설었다.
'그냥' 즐겨보고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등록한 낭독은 갈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힘들기도 했지만, 나의 첫 녹음 목소리! 때문이었다. 완전한 충격이었다. 갈등의 연속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계속 같은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거칠다고! 지쳐있다고! 힘들어 보인다고!...
나의 목소리도 나의 몸인데 아껴주지 않고 살아왔다고 꾸짖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낭독으로 나 자신을 만나기 시작했다.
낭독을 하면서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좋았다. 나의 목소리에 오롯이 귀 기울여 주는 그 낭독이 참 좋았다. 결국 기초반, 심화반을 거쳐 전문가반까지 수료했다. 나에게 낭독은 이제야 말할 수 있는, 뜸 들이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의 생애 첫 취미이다. 남들이 보기엔 ‘덕업 일치’ 같았지만 나에게는 ‘일’ 일뿐이었던 피아노 외에, 이제야 나에게도 ‘진짜 취미’ 하나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