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거실로 내려가 커피를 내렸다. 오이, 토마토, 블랙베리 등을 조금씩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음식통을 꺼내어 가방에 담았다. 지난주 교회 바자회에서 산 땅콩도 샌드위치 백에 담아 넣고, 물도 몇 병 챙겼다.
한국에서 벌써 한 달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라 버지니아 덜레스 공항으로 마중을 가기 위해서였다. 한 주 한 주가 참 빨리도 간다.
한국에 있는 두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온다.
“언니, 보청기는 엄마가 잊어버릴까 봐 계약서는 내가 갖고 있어. 미국 코스트코에 가서 마지막 세팅 작업을 하다가 계약서가 필요하면 연락해.”
“누나, 지난 3주간 콜레스테롤 100미리로 복용했고 피검사 결과에 정상으로 나오면 100으로 복용하던가 더 낮춰 달라고 해. 혈압약도 50으로 낮춰서 처방해도 될 듯. 치매진행이 빠른듯하니 약 복용하면서 패치도 사용 가능한지 물어보고.”
미국 의사들이 과연 동생들이 지시한 대로 응해줄지 몰라 큰 과제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집 떠난 지 거의 두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창밖은 어두컴컴했다. 이른 아침에 내린 너무 진하지 않은 내 취향의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톡방에 올라와 있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며칠 전 구매한 오디오북을 들으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노스캐롤라이나를 벗어나면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북쪽을 향해 올라갈수록 달리는 고속도로의 양쪽에 줄지어 있는 나무들의 색깔이 바뀌었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마침내 공항에 도착하여 파킹을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덜레스 공항의 구조에 익숙지 않은 나는 좀 헤매었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출구가 어디인지 물어보고 느긋하게 엄마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게시판에 비행기가 도착했다고 뜨자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해 늘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다른 승객들보다 먼저 나오는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줄을 이어 휠체어를 탄 다른 어르신들만 연이어 나왔다. 공항에서 어제 만큼 많은 휠체어 서비스를 받는 승객들은 본 적이 없다. 걷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혹시 치매로 가방을 잘 구별을 못해 짐을 못 찾고 있어서 못 나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아니면 공항직원의 실수로?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 사람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점점 더 머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 모자를 푹 뒤집어쓴 할머니 한 사람이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핼쑥하게 보이는 엄마였다. 한국에서 동생이 보내온 사진과는 달리 몹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시스턴트 한 명이 한 손으로는 휠체어를, 다른 한 손으로는 짐을 밀고 나오는데 엄마는 두 명의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다른 한 사람은 딸랑 가방 한 개를 밀고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다행히 승객들이 너무 많아 지연되었다고만 대답했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10불씩을 주었다. 그러나 친절하게 웃고 있던 그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20불을 달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이니 40불을 말이다. 순간 몹시 불쾌해졌다. 팁은 팁 아닌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최소한 15%는 주어야 하는 식당도 아니고말이다. 내가 요즘 시세를 모르는 것인가 하여, 내가 너무 인색한 사람인가 하여 놀란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2023년 자료로 5불 정도면 적당하다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각각 10불이면 충분하다는 나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더 주어야 한다고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손에 힘이 없는 엄마는 지갑에서 꺼낸 돈을 바닥에 떨어 트렸다. 기가 막히게도 바로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돈까지 다 가져가려고 했다. 자기들이 엄마를 많이 도와줬다고 말하면서! 참다못해 너무들 하는 것 같아 엄마의 지갑을 챙겨 들고 20불씩만 주어 보냈다.
별로 마음이 안 좋은 상태로 점심은 먹고 출발해야 하겠기에 공항으로부터 15분쯤 떨어진 한인 식당으로 갔다. 비지찌개와 갈치구이를 시켰다.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여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고 있는데, 웨이트리스들끼리 하는 말이 들려왔다.
“청국장이야, 된장찌개야?”
“아 생각나지 않는데..”
“괜찮아, 청국장이나 된장찌개나 어차피 같은데 그냥 싸.”
순간 누군지 모르겠지만 청국장과 된장찌개도 구별 못하고 먹겠구나 싶었다.
아뿔싸!
차에 앉아서 생각하니 그 얼간이 손님은 나였다. 갈치구이를 시키면 청국장, 된장찌개, 미역국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내가 주문한 내용에 대한 그들의 대화였던 것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배도 불렀겠다 차에 가스를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렀다. 떠나기 전에 식당 화장실에 들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괜찮다고 우기더니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주유소 안의 화장실로 들어가니 고장 났다고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만만한 맥도널드를 찾아 달려갔다.
운전하는 7시간 내내 반복되는 같은 말과 같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물론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한국 참 좋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 불쌍해.”
“여기 어디야? 아! 나 미국으로 왔지."
"이제 다 왔어?"
"얼마큼 더 가야 돼?"
“미셀은 뉴욕에서 공부 잘하고 있지?”
“데이비드도 일하느라 바쁘지?”
“고서방은?”...
무사히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 덕분에 포장해 온 갈치구이로 저녁을 해결하면서 오늘 밤에 있는 낭독수업은 거르는 쪽으로 마음이 흘렀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오자 들어갈까 말까 심히 고민하던 낭독수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