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까지 저의 50년 인생은 한 마디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 외엔 다른 것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만난 후 음악에 관계된 일상은 완전히 정지되면서 낭독이란 친구가 저를 찾아와 주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저를 깨운 낭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 낭독을 다른 이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좀 더 잘하기 위해 계속 배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음과는 달리, 저의 낭독은 낭독에 쏟아부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낭독 역사과 실제 저의 모습 사이에는 갭이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년 초부터 나이가 들어가는지 몸도 안 좋아 낭독하기가 더 힘든 상황에 처해져 낭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싶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불면증에도 시달려 생활이 불규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4년 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낭독 수업을 덜커덕 신청했듯이, 사실 강사양성반도 지도자의 길로 갈 수 있는 사람인지 테스트해보자는 마음으로 합류 헸습니다. 그런데 첫 시간부터 신세계였습니다. 요 근래 최고로 잘 한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 시간 매 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한 순간도 성우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 동안 저에게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잘 표현해야지, 잘 전달해야지’의 마음으로 활자를 만나려는 낭독가의 마음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는 강사의 시선으로 체인지됩니다. ‘나’에게로만 쏠려있던 시선이 ‘교육생’에게로 향합니다.
어느 날 말씀하셨습니다. 교육생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고요. 저야말로 매주 아낌없이 주시는 가르침을 날름 날름 맛있게 받아먹는 교육생이었습니다. 매 시간 성우님의 뜨겁고 따듯한 가르침으로, 그동안 강의 현장에서 겪은 시간들의 흔적을 아낌없이 나누심으로 강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물론 가끔은(아니, 솔직히 매 시간?ㅋㅋ) 수업시간 중 저보다 앞서 진행하는 선생님들의 낭독과 코칭이 너무 좋아 보통 때보다 더 버벅거리기도 하고 급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이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나?, 좀 더 교육생을 위한 강사가 되려면 낭독도 코칭도 엄청 많이 노력해야겠구나.” 등등 생각하며 쪼그라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요 한 주 한 주 흘러가면서 “그래도 가보자. 천천히 가도 되잖아."라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느려도 나는 나만의 스토리와 나만의 코칭으로, 나답게 교육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갈 수 있어. 예전에 넌 좋은 선생이었잖아” 라며 저자신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부족하다고 여기고 보는 저의 만성병인 ‘부족병’에서도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특히 가장 큰 변화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의 흙바닥에 마구 뿌려본 ‘독서모임과 낭독 클래스’ 홍보글에 아주 작은 새싹이 돋았습니다. <나에게, 낭독>으로 진행되는 낭독클래스와 두 개의 낭독독서모임, 낭독모꼬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성대한 시작은 아니지만, 성우님과 추진한 해외거주 한인들을 위한 K낭독 무료특강도 잘 마쳤습니다. 낭독으로 제2의 인생을 이 땅에 낭독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