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나 잠이 들었나 보다. 게슴츠레 눈을 떠 시간을 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일어나 거실로 나가 데크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젖혔다. 하늘을 바라보니 깊은 가을냄새가 물씬 난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일터로 향하였다. 시간이 좀 남아 하이웨이 대신 여유로운 로컬 길을 택했다. 양쪽 길가를 따라 뻗어있는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빨강 노랑 주황색이 조화롭게 뒤섞어 있었다. 길바닥에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단풍잎들이 곳곳에 수북했다. 알록달록 늦가을의 정취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생과 나는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동생은 파킹을 하자마자 내게 급히 걸어와 엄마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발음이 평소보다 어눌하고 제대로 잘 서지 못한다고 했다. 두어 시간 정도 엄마를 지켜보았다. 늘 뭔가를 하며 움직이는 엄마는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우리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늘 쓸고 닦고 정리를 하는 깔끔한 사람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엄마 자신도 이상한지 자꾸 더 걸어보려고 했다. 더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엄마를 데리고 급히 가까운 거리의 응급의료센터로 달려갔다.
엄마를 보자마자 병원 직원은 휠체어를 앉으라고 했다. 신분증만 재빨리 확인하고 나머지 서류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했다. 엄마는 급히 침대로 옮겨졌다. 두 명의 의사가 오더니 내게 질문공세를 펼쳤다. 몇 시부터 이런 증상이 나타났는지부터 시작하여 예전에 머리를 다친 적이 있는지, 넘어진 적이 있는지, 발견했을 당시와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물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좌우 감각이 같은지 다른지를 검사했다. 바로 이어서 MRI 촬영이 진행되고 응급병동으로 옮겨졌다. 혈압과 체온, 맥박측정기는 자동적으로 매 시간 작동했다.
마치 응급 병동이 등장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응급실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곳과 전혀 달랐다. 간단한 검사 후 바로 퇴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오더니 1000ml 수액주사를 투여하며 말했다. 아주 천천히 주입되기 때문에 10시간은 익히 걸릴 거라고. 순간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병원을 찾았기 때문에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확인했다.
엄마가 머무르는 방은 환자 침대 하나와 딱딱한 의자 하나밖에 없는 아담한 독방이었다. 다행히 담당 간호사가 완전히 뒤로 젖혀지지는 않지만 앞으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 하나를 챙겨 주어 잠깐이라도 몸을 기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치매환자이기 때문에 본인이 왜 병원에 왔는지 몰랐다. 그저 보이는 것만 보고 느끼는 불편함만 호소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잠결에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이름표 팔찌를 몇 번이고 뜯어내려고 했다. 왜 이런 것을 손목에 차고 있어야 하는지 거추장스럽다며 화를 냈다. 또 검지에 껴놓은 맥박측정기가 거슬리는지 자꾸 뽑아서 귀에 거슬리는 경보음이 삡삡 울려댔다. 하다못해 수액주사 바늘까지 뽑아버려 피가 나 간호원을 급히 부르기도 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기는커녕 엄마의 팔을 지키며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엄마가 잠든 사이 답답해서 복도로 나갔다. 입이 딱 벌려졌다. 복도에는 수 십 명의 환자들이 누워있는 간이침대들이 빈틈없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부상을 당하고 여기저기에 누워 아프다고 신음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듯했다. 피곤에 찌들어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다.
방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하룻밤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햇빛이 반가웠다. 엄마의 발음도 조금은 호전되었다. 혼자 천천히 화장실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이야기를 두서없게 말하는 고집 센 치매할머니이지만 아직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더 남아있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음 날 하루 종일 많은 의사와 간호원들이 병실을 들락날락한다.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똑같이 통역을 했고, 엄마는 똑같이 틀린 대답을 했다.
"엄마 몇 살?"
"80살! (눈치를 살핀 후) 아니야?"
"80살 아니야. 엄만 85살이야."
"아냐. 난 80살이야. 내가 그렇게 오래 살았을 리 없어. 내가 85살이라고?"
"엄마, 여기 어디야?"
"몰라. 병원인가?"
"병원엔 왜 왔어?"
"몰라. 나 집에 갈래."
"엄마, 지금 몇 월달이야?"
"10월. 몰라. 네가 말해."
"11월이잖아."
"11월? 벌써? 추워?"
한 달 같이 느껴진 3일 밤을 엄마와 함께 보냈다.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에게서 안부 문자가 왔다.
"엄마, 할머니는 좀 괜찮아졌어요? 엄마도 잘 지내고 있어요?"
하와이로 휴가 중인 둘째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한머니 괜차나요?."
아이들의 문자를 읽으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안부를 물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또 일하는 중간중간 들러 나를 챙기고 엄마에게 이 말 저 말 걸어주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 만약에 시기를 놓쳐서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 엄마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마지막이 아니어서, 아직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의 보폭에 맞춰 느리게 걸어야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엄마가 좋아하는 사우나도 아직은 함께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함께 여행하며 사진도 찍으며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어 감사하다. 지금 나의 마음은 창 밖으로 보이는 넓디넓은 파란색 하늘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새하얀 구름처럼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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