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한국

잠실 동생네 집에서 1

by 한희정

떠나기 며칠 전, 한국의 날씨가 궁금해서 기상예보를 체크했는데 도착할 때쯤 폭우가 온다고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예상되었던 폭우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얼른 비를 대비해 준비한 후드 달린 방수재킷으로 갈아입고 공항버스 터미널로 가 잠실롯데월드까지 직행하는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30분쯤 후 승차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창밖으로 바라보는 비는 8년 만에 방문하는 나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늘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이 잠실에 사는 막내네 집이다. 한국에 오면 의례히 들러야 할 안경점, 휴대폰대리점, 은행, 미용실 등을 동생의 소개로 고민 없이 쉽게 빨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온 동생과 제부와 함께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어서 오세요. 이모."라고 인사하는 굵직한 제부의 목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조카였다. 목소리에도 놀랐지만, 훌쩍 자라 버린 조카의 모습에 더더욱 놀랐다. 제부의 키가 50대 한국남자의 평균키라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바닥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반겨준 것이 있었다. 아주 조그 많고 가냘파 보이기까지 한 하얀 강아지였다. 이름이 '행복'이라고 했다. 처음에 이름을 '행국'으로 잘못 알아들어 '행국아'라고 불렀다가 동생의 핀잔을 세게 받았다. "언니, 내가 설마 행국이라고 이름을 지었겠어?"라고. 순간 나는 속으로 말한다. "너도 발음에 문제가 많군. 입을 좀 더 벌려야 함!"


행복이는 소형 강아지 말티즈였다. 행복이는 내가 누구인지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녔다. 하루 온종일 나의 동선을 따라 다리가 부러질까 봐 걱정될 정도로 팔딱팔딱 뛰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막상 오라고 하면 오지는 않고, 갈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면서,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행복이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탐색전을 끝내고 마음을 열었다. 자다가 뭔가 묵직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 눈을 떴다. 놀아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오지도 않던 행복이가 내 등 뒤에 딱 붙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코를 골며 방귀를 뀌며 무슨 꿈을 꾸는지 가지각색 이상한 다양한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나의 팔과 다리를 베개 삼아 자리를 잡으며 잠자리도 옮겼다. 새벽에 살짝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나와보니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자다가도 내가 옆에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을 하며 다시 잠들곤 했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20시간도 자는 아이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동생이 와서 행복이를 불러도 동생의 눈을 피하면서 못 들은 척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생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고, 아무나 다 따라갈 것 같다고 말한다. 산책을 나가면 예뻐해 주는 사람, 관심 가져주는 사람만 만나면 만져달라고 난리란다. 동생은 갑작스러운 행복이의 행동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도 사실은 몹시 궁금했다. 불과 이틀 만에 급변한 행복이의 마음과 행동이.


동생은 나에게 받아주지 말라고 했다. 오늘 하루는 예뻐해주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고, 관심 없는 척하라고 했다. 내심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곧 떠날 사람이라 동생의 지시대로 응했다. 나를 따라올 때마다 강하게 ‘오지 마’라고 경고를 주며 살짝 밀었다. 몹시 서운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해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불쌍해 보였다(행복아,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단다). 눈치를 계속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나의 진짜 마음을 떠보는 행복이를 보면 안쓰럽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강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밤이 되자 결국 나를 포기하고 동생부부 방으로 들어가 침대로 올려달라고 신경질을 내며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나와서 말했다. 나의 기침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가 포기하고 다시 드러누웠다고. 어젯밤 귀찮도록 찰싹 달라붙어 있어 잠자리를 불편하게까지 한 놈이 ‘오지 마’란 경고 몇 번에 갑자기 돌변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노? 연구대상이다. 쬐막만한 강아지 한 마리에게 당했다. 하하.

동생이 내린 결론은 자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 더, 그러니까 '나'를 확보하기 위해, 자기를 좋아하는 내가 갈까 봐 보초를 서며 내게 딱 달라붙어있던 것이란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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