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답다

by 한희정

8년 만에 한국으로 가 4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 우리는 떠날 수 있다고, 떠나도 된다고 다짐한 환갑여행도 떠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두 친구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대학시절 전공과 학교가 달랐지만, 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시간의 구속 없이 언제든 만나 수다를 떨었고 방학 때면 여행으로도 같은 추억을 쌓은 친구들이다. 우리들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순수했고, 해맑았고,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장시간 여행을 하면서 우리들의 변함없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이 모습 저 모습으로 살아온 시간은 달랐을지언정 과하리 만큼 배려심이 크다. 함께하는 내내 누구 하나 쓰잘 때 없는 고집이 없다. 한 친구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그래, 그러자."이다. 다툼이 없다. 시기도 없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 줄 뿐이다. 그저 정말 오랜만에 함께하는 그 시간을 즐겼을 뿐이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짠했다. 답답했다. 왜 아직도, 환갑이란 나이가 되어서도, 이런 모습으로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A는 시부모를 비롯하여 가족들만 챙기며 살았다. 친구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 가까운 딸과 남편조차도 3년간의 방사선 치료기간 중 한 번도 와보질 않았다고 한다. 평생 챙겨주기만 했던 것이다. 가족들 모두 친구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리라. 강철 로봇 엄마라고, 강철 로봇 아내라고, 강철 로봇 며느리라고!

어쨌든 그때부터 친구는 운동도 시작하고 자기 몸에 좋은 음식을 공부하면서 본인을 챙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B는 가족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본인의 자기 계발과 사회생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지하철을 1시간 이상을 타고 가서 침을 맞고 올 정도로 건강한 93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정작 혼자가 된 후, 암 선고를 받은 아빠가 함께 살자고 해도 시어머니 때문에 함께 살 수 없었던 친구다. 공부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난 덕분에, 성질 급한 덕분에, 흔히 남자들이 하는 전구 가는 집안일조차 다 한단다. 넘어져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도 휠체어를 타고도 밥을 했단다. 점심을 함께 하는 도중 5시가 되자 친구는 서두르는 눈치였다. (아마도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위한 저녁을 지으러 가는 듯!)

친구는 말한다. 전시회도 꾸준히 열고, 책도 쓰는 등 본인의 예술활동에 계속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본인에게 처한 상황 덕분이라고! 결혼 전 "나로 하여금 채워질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하소서"라는 기도 덕분이라고!


C도 변함없는 성실함의 대명사다. 들어오는 수입은 늘 많지만 출가한 아들 딸 뒷바라지에다가 손주까지 봐주며 산다. 마치 날마다 힘들게 일하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산 나의 엄마를 보는 듯했다. 혼자가 된 쓸쓸한 엄마를 챙기기는커녕 영원히 옆에 있을 줄 아는 듯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D는 학창 시절 우리들의 대장이었다. 여장부다. 늘 우리들을 이끌어 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나 리더역할을 톡톡히 하는 친구다. 그런데 친구 남편은 결혼 후로 지금까지도 일이 없다. 정말 끝없이 꾸준하다. 돈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어떻게 지금까지도 버틸 수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는 여행 중에도 식사 때가 되면 전화를 한다. "어디 가서 무엇을 먹으라고. 그곳에 가면 그것을 먹어야 한다고!"


내가 지금 제일 부러워하는 친구 E! 예전엔 그 친구가 잘 살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 당시 속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흔한 과외도 못 받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었다. 내 주위에는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들로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그 친구는 가장 본인의 삶을 사랑하며 챙겼다는 것들. 친구야! 삶을 여유롭게 즐기며 살고 있는 너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불과 만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자고 일어나 보니 톡방에 안 읽은 톡이 주루룩이다. 톡방에 톡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일 수도 나쁜 소식일 수도 있다. 어떤 소식이건 일상이 분주해 날마다 나누지는 못해도 그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된다. 마치 언제라도 뭉칠 수 있는 우리들의 시간이, 삶이 대기 중인 것처럼.


안타깝게도 한 친구가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사람이 산다는 게 참 단순하다. '쯔쯔가무시'에 걸려 죽다가 살아났다"라고.


듣도보지도 못한 '쯔쯔가무시'가 도대체 뭔데 열흘씩이나 병원에 친구가 있어야 했는지 찾아보았다. 일본의 풍토병으로 "오리엔티아 쯔쯔가무시(Orientia tsutsugamushi)에 감염된 털진드기의 유충이 사람을 물면 그 미생물이 혈액과 림프(액)를 통해 전신에 퍼져 발열과 혈관염을 유발한다"라고 쓰여있다. 퇴원해서도 후유증으로 허리가 회복이 되지 않아 집에서 옆에 계신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요양 중이란다. (갑자기 개똥도 쓸 데가 있다는 속담이 스친다. 하하! 친구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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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나의 친구들은 이모저모로 다들 나름 잘 산다. 우리가 부모님들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받아왔듯이, 높은 자녀교육열과 넘치는 자녀사랑으로, 마치 받은 빚을 갚기라도 하듯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친구들은 배운 데로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실,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철이 들지 않은 미국에 사는 거지다. 얼마 전에 자기 길을 찾아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서른 살 큰 아이도 있다. 지난주부터 게임과의 완전 결별을 선언하고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아들도 있다. 덕분에 인터넷 속도가 느려져 가끔 불편해졌다. 게임에 필요한 고속도 인터넷이 더 이상 필요 없어져 아들이 저가 플랜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돈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지라 딱 필요한 만큼만 버는, 일하다가도 교회로부터 부르심을 받으면 곧바로 달려가버리는 남편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지금 그 어디에도 얽매이는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크나 큰 감사 맞지? 하하.




처한 상황은 달라도 우리들은 변함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뭉칠 것이다. 늘 건강하자고 의기투합하면서 5년 후의 유럽여행을 준비한다. 비록 날마다가 좋지는 않아도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생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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