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 쓰려다 망해서 에세이 된 조크
지난 주 금요일 공연하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공연했던 펍에 남아서 술 마시면서 뒤풀이를 즐겼다. 그곳은 굉장히 힙하고 칄-한 분위기였다. 손님들끼리도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 같았다. 막 서로 각자 술 마시다가 누가 갑자기 “에이-요, 한번 갈까?” 하면 테이블에서 한 명씩 일어나 스물스물 무대로 나온다. 그럼 밴드가 된다. 테이블마다 아무나 한 명씩 뽑아서 무대에 갖다 놓으면 밴드가 되는 상향 평준화가 잘된 엔터 회사 같았다. 그 작은 펍에 젬베 치는 사람도 있었다. 대충 분위기가 짐작이 가시는지.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무대에 올라가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데, 까만 비니에 까만 뿔테에 까만 바람막이에, 외출한 만화가 같았다. 근데 올라가서 혼자 막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서 ‘아, 술이 좀 되셨나 보다’ 했는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이희문 씨란다. (이희문이 누구냐면, 몰라도 되는데, 왜냐면 나도 몰랐는데, 듣고 나서도 몰랐는데, 국악 명문 집안, 국악 금수저 집안의 아들이라고 한다. 근데 밴드도 하는. 뭐 국악 혈통 집안에서 태어난 규격 외 혈통 천재 이런 것도 추구하셨나 보다. 내가 끝내 몰라하니까 혹시나 봤을까 싶어 엄마랑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도 나왔었다고 알려주는데 아, 명문가는 명문가구나 싶었다. 명문가라면 으레 가족 간의 갈등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니까. 가문의 오랜 가업을 이어받길 바라는 부모님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져 있는 자신의 미래에 숨막혀 하는 도련님 클리셰)
얼마 전에는 신민아도 왔었다고 한다. 신민아가 두 달 전에 노래 부른 무대에서 방금 우리가 공연한 거였다니…!! 신민아에 비하면 나는 그냥 관광객이잖아? 자고로 관광객이란 연예인이 들렀던 곳, 먹고 마셨던 곳, 숨 쉬었던 곳은 모두 만지고 쓸고 주울 게 있으면 주워 가고 해야 하는 법이다. (뉴진스 혜인이 앉았던 카페 자리에도 앉아 보고 왔다. 카페 이름도 트롯트 가수 아저씨 이름 그냥 두 번 말한 거 같은 이름인데 혜인이 왔던 것을 알기 전과 후가 다르게 느껴진다. 카페명은 ‘배호배호’다.)
아무튼 여기 사장님 부부 중 남편 되시는 분도 빡빡머리에 수염을 기른 제주도 스테레오 타입 남자 2번 유형이었는데(1번은 장발남) 정말 전형적이었던 게 밤에는 드러머로 활동 하신다고. 사장님을 필두로 하나 둘 우리 테이블에도 놀러 와서 같이 술을 마셨는데 얼마 후 두 번째 2번 유형 남자분도 합석을 했다. 서울에서 잡지 편집장을 하다 내려오셨다고. 엄청 힙한 잡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이유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일화가 생각나는 거였다. 아이유가 종종 말하고 다녔는데, 자기 신인 때 인터뷰한 한 기자님이 자기 면전에 “너 같은 애들 쌔고 쌨어~ 너처럼 하면 안 돼~” 그런 말을 했었다고. 진짜 갑자기 이게 떠오르길래, 설마 그럴 리 있겠어 싶어서, 진짜 재미삼아서, 혹시 아이유한테 그런 말 했던 기자분 본인인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갑자기 나를 엄청 용한 관상가 양반으로 보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그게 보이냐고, 또 뭐가 보이냐고, 자세를 고쳐 앉으시는 거다. 그래서 살짝 난감해진 분위기도 풀 겸 코미디언 답게 농담을 날렸다. “아, 그래서 제주도로 오셨구나, 아이유가 너무 잘나가서 서울에선 발 디딜 곳이 없어서~” 하하, 녀석, 재미있다는 듯 호쾌하게 웃으시는데 여기서 아, 진짜구나 알 수 있었다. 그게 아이유 중2 때였다는 말도 본인이 하시길래 “와, 김수현 같다” 해드렸다.
조금 더 얘기해 보니 이분은 이미 고산리에서 똥촉으로 엄청 유명한 분이었다. 해외 스타들 인터뷰도 다 맡았었는데 이 아저씨가 ‘얜 안 돼’ 했던 사람들이 지금 다 누가 됐냐면, 레이디 가가, 두아 리파, 십센치, 아도이, 잔나비, 그리고 아이유가 되어 있었다. 참고로 이분이 자기 스탠드업 코미디 진짜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코미디언이 대니초라고 했다. 대니초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이분 때문에 그거밖에 안 된 게 분명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얼마 전 이분한테 “넌 임마, 넌 진짜 잘해. 넌 앞으로 진짜 잘 될 거야.”라고 들었던 분은 그 말을 듣고 좌절했고, 그 다음 주에 맡았던 일에서 잘리셨다고. 나한테도 칭찬을 하시려는 것 같아서 처음 보는 분 앞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제발, 복채는 두둑히 쳐드릴 테니 생전 듣도보도 못한 악담 해주시라고. 재미있으려다 말았다, 는 평을 듣고 한시름 놓긴 했지만 여전히 찜찜하다.
그리고 파하기 30분 전쯤 한 여자분이 합석했는데 그 똥촉 아저씨 아내분이셨다. 자기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본 게 처음인데 너무너무 재밌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는 여기 있는 두 분(예나, 은별만 남아 있었다.)이 제일 재밌었다고 하시는 거다. 근데 나한텐 무슨 내용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재밌었다고, 너무 열렬히 말씀 하셔서 대충 매우 예의 바르고 배려심 있는 분이시구나 했는데 진짜로 호스트랑 남편한테는 예나가 제일 재밌었다고 말하셨다는 걸 들어버려서, 내심 부창부수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알고 보니 이분도 엄청난 분이었던 거다. 아니 사실 제일. 메이크업 아티스트인데 무려… 무려… 제니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거다…!! 제니가 미국에서 상 받을 때 같이 가서 메이크업 해준 그 실장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월클이랑 일하는 사람이 그렇게 예의 있을 리 없어. 그 자리에서 예의 차리고 어떻게 일을 해. 솔직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잖아? 그저 있는 그대로 담백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일 게 분명해. 그리고, 제니를 맡는 사람의 감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 거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 나는 그날 내용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웃긴 사람이었던 거야. 이게 그날의 진실이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