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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수 Sep 04. 2023

사랑하는 친구에게 쓴 편지

자존감은 후천적인 것 같아

18살 때부터 봐 온 친구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18살, 고2때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고3 수능 전 마지막 달인 10월 한 달 간 짝꿍을 하며 급속도로 친해진 친구였다. 

지독한 비염,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내향성과 너무나도 닮은 그 친구의 내향성, 그리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닮았던 우리는 26살이 된 지금까지도 소중히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사이이다.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듯이 우리는 각자 힘든 시절을 버텨왔고 서로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뭐랄까, 그 친구가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다는 '촉'같은 게 생겨버렸다. 

그 촉이 생기는 날에는 조심스럽게 "요즘 마음은 어때?"라며 조금은 가볍게 메시지를 보낸다.

역시 내 촉이 맞았는지 그 친구는 힘겹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정말 힘든 사람은 본인이 힘들다고 고백하고, 그 힘든 일을 설명하는 것조차 힘들어해서 아예 아무렇지 않은 척 티를 안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날 그 친구는 나에게 솔직하게 본인의 마음을 털어 놓았고 나는 고마운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말을 다듬고 다듬어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다보니 그 편지가 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마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아서, 힘들고 마음이 흔들릴 때 나도 꺼내 읽어보려고, 그리고 내 브런치 글을 읽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어 편지의 일부분을 공유하고자 한다.




(취업, 장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친구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무서운 건 나도 아주 공감해. 나도 요즘 최업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절벽에 서 있어서 그런지 포폴 시작하는 것 조차 솔직히 말해서 무섭고 막막해.. 1년 만에 건축을 하는 거고 나는 건축에 별로 마음이 없다가 4학년이 되서야 억지로라도 마음을 붙여볼라고 억지로 공모전 해보고 억지로라도 열심히 해봤어. 솔직히 말하면 난 5년동안 건축에 대한 자격지심 덩어리였어. 나 빼고 다들 너무 잘하는 것처럼 보였고 교수님 만나는 크리틱 시간이 너무너무 싫어서 몸이 안 좋다고 뻥친적도 있었어ㅋㅋㅋㅋ 근데 내가 건축 4~5학년이랑 이번 크로스핏하면서 더 확실해진 생각이 있는데 ㅇㅇ야, 하는 양이랑 그 퀄리티는 비례하는 것 같아. 퀄리티가 좋아서 그 하는 양/열심히 하는 양이 많은 게 아니라(물로 그런 사람도 많지만) 반대인 경우도 정말 많더라. 퀄리티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많이 하다보면 신기하게 그 퀄리티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더라? 신기하지?


 이게 게으른 완벽주의인 사람들(그게 바로 나)이 흔히 빠지기 쉬운 지옥의 고리인데.. 퀄리티가 좋지 않을 걸 뻔히 아니까 시작하지도 않으면서 그 결과가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고 그러다보면 퀄리티가 좋지 않아도 계속 끊임 없이 도전한 사람들에 비해 뒤쳐지게 되고, 아까운 시간만 그냥 지나가게 되는거야. 아무리 돈이 많고 대단한 사람들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서도 바꾸고 싶은게 20-30대의 시간이라는데, 이 황금같은 시간을, 대단한 결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아무것이라도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미래의 나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해도 나도 건축 취업하는 과정에서는 끊임 없는 자격지심과 두려움에 시달려, 하지만 그냥 하는 거야. 가만히 있는 게 더더 괴롭다는 걸 알거든.

우리 엄마가 했던 말 중에 좋아하는 말이 “너의 자존감은 너가 만드는 거야”라는 말이 있어. 나는 자존감이라는 게 그냥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고, 어쩔 땐 선천전인거라 생각했다? 왜, 예쁘고 날씬하게, 똑똑하게 태어나야 자존감이 높은 건 줄 알았어.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존감은 철저히 후천적인 거라 생각해. 대단한 업적을 원하고 바래서 그 것만을 위해 달리는 것과 같은 간단한 게 아니라, 그 업적에 관계 없이, 쉴 순 있지만 멈추지 않고 성실하고 담백하게 내 할일에 충실한 사람의 자존감이 정말 단단하고 진실된 자존감이라고 생각해. 그 자존감은 누가 인정해줘서 생긴 자존감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인정해주는, 정말 얻기 어려운 자존감이거든.


ㅇㅇ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이야기 안 해, 내 일도 바쁜데? 근데 너는 내가 오래 봐왔고 그만큼 너에게 정말 많은 애정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너에게 받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난 진심으로 ㅇㅇ가 편안해지고 세상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되길 바래. 나 또한 너의 친구로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살 거고. 

내가 앞으로 계속 ㅇㅇ를 지켜보고 응원할 거니까, 그 사실이라도 계속 기억해줘! 절대 혼자 끙끙대면서 힘들어하지 말고 알겠지?


 우리나라는 '대단함'이란 개념이 너무 상향표준화 돼 있어. 충분히 칭찬 받아 마땅한 것들을 한국에서는 칭찬을 받을 일이 없어. 난 내가 똑똑하다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고 한국에서는 똑똑하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일본 오고 나선 꽤 듣는 걸 느끼고 놀랐어,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 인데 환경이 바뀌니까 이렇게 느끼는 게 다르다니!

그만큼 사람이란 정말 복잡한 존재야, 내가 생각했을 때 그저 그런 능력을 가져도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면 생각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내가 봤을 때 대단한 사람이 어떤 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도 해

이 뜻은 곧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밖에 없어. 그러니 우리 조금씩 조금씩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보자! 내가 도와줄테니까! 난 ㅇㅇ을 믿으니까.

마음속에 있었던 힘들었던 이야기 말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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