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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수 May 05. 2023

<아파트공화국>, 건축학과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독후감

나의 인생을 바꾸었던 건축이라는 선택, 그 길의 마지막 과제를 공유해본다

각자 본인을 표현하는 단어가 하나쯤은 있듯이 나에게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건축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최소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건축은 최소 20년인 것 같다. 그만큼 건축은 학부를 졸업하는 데에만 해도 5년이 걸리며(한국에서) 그 중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석박사 과정을 선택할 만큼 길고도 고된 길인 것 같다. 휴학 1년을 합쳐 약 6년 간 한 국립대학의 건축학과 학생으로서 살면서 많은 선후배, 동기들의 피땀눈물 그리고 포기를 목격해왔으며 나 또한 몇 번의 고비를 거친 뒤 지금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건축이라는 단어 없이는 소개하는 것이 아주 조금은 어색해진 단계에 가까스로 다다른 것 같다. '애증'이라는 단어는 같은 건축학과 학생들끼리 건축을 이야기할 때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나오는 단어인데 나 또한 그 단어 없이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건축학과라는 길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랑이 있으니 증오가 생기고, 증오가 있으니 사랑이 생기는 아주 멜랑꼴리한 사이클을 반복하고 반복하다보니 나도 결국 2022년 6월 졸업전시를 무사히 끝마쳤고 사정이 생겨 1년 간 졸업을 유예를 했기에 내년인 2024년 2월 결국 졸업장을 손에 얻게 되었다. 


졸업전시 모형 헬퍼였던 멋진 후배들의 고마운 선물, '탈건 실패'! 평생 가보로 남겨두고 싶다.


아직은 살 길도, 갈 길도 백 만리이지만 난 6년이라는 기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정도로 즐겁고 열심히 살았으며 건축이라는 학문 덕분에 내 앞으로의 인생이 더더욱 기대되는 것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난 분명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브런치라는 나의 사적인 공간에 또 다른 사적인 발자국을 찍고자 이렇게 나의 마지막 과제인 책 <아파트 공화국> 독후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100% 만족하고 자랑스러워서 올린다기 보다는 그래도 뭔가 개인적인 인터넷 공간에 고현수라는 사람이 건축을 공부했었다 라는 흔적을 만들고 싶어 올리게 되었다.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 이 글을 읽으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리석고 바보같고 어리숙한 나의 과거또한 사랑해주는 미래의 내가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저: 발레리 줄레조 / 역: 길혜연 / 후마니타스 / 발행 2007.02.01


 솔직하게 말해서 아파트는 나에게 관심 밖의 존재였다. 그 이유에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성장배경 이 있다. 나는 대학생활 5년과 10대 때의 외국 생활 2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동일한 ‘빌라’, 즉 다 세대 주택에서만 살았던 평범한 시민이었고 그 빌라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아파트’라는 존재를 동경도 멸시도 해본 적이 없다. 추가로 명시하고 싶은 나의 배경에, 나라는 사람은 ‘빈부격차’라는 것을 20살 이 후에 알게 됐다는 점이 있다. 내 고향은 제주도,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보통 돈이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오는 곳이지 비교적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지역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들보다 공무 원의 만족도가 특히 높은 지역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고 우연인지 아닌지 나의 부모님 또한 10년 이상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100일이 안돼서 전세로 들어온 빌라에서 약 10년간 살면서 모은 돈으로 동일한 빌라의 다른 동으로 이사(이걸 이사라고 봐도 되는지 모르 겠지만)를 한 것이 나의 주거 역사의 전부라고 봐도 된다. 평수는 24평으로 4인 가족이 살기에 지금은 조금 좁다고 느낄 수 있는 평수이지만 신기하게도 난 단 한 번도 살면서 우리집이 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또 앞에서 명시했 듯이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절에만 해도 공립학교에 는 특별히 잘 살거나 특별히 못 사는 집안의 친구가 눈에 보이기 쉽지 않았었다. 다들 엄청 풍족 하진 않지만 나름의 방식대로, 본인의 형편에 맞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어린 학 생에 눈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생각보다 그리 보편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교에 진학하기위해 부산에 온 이후였다. 소위 말하는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가 눈이 보일 정도 로 그 차이가 커 보였고 그렇게 보였던 원인의 근본은 역시 건축이었다. 사람들은 건축으로서 본 인의 부를 보여주려고 하고 더 나아가 그 부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또한 그 부의 모습을 지키고자 힘들게 돈을 벌고 끌어 모으며 어떻게든 ‘한국 중산층’의 모습의 대표적인 모습인 ‘아파트 주민’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 어쩌면 이 당연한 현실을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제주의 작은 빌라촌에서 20여년을 살다 보니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현실에서 매우 동 떨어진 채로 살고 있으며 굉장히 어리숙한 학생으로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 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이 책은 나처럼 사회인이 되기 직전인 대학교 고학년 학생과 결혼을 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읽기에 특히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지고 놀라며 현실을 배우는 방법도 경험론자의 시각으로서 훌륭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나대신, 학자의 냉철 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본 아파트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 둔다면 사회와 지인이 말하는 아파트의 얼굴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이고 깊게 아파트를 이해함으로써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하고 필요 한 주거 형태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많은 사람들에게 추 천하고 싶은 책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는 이 책을 크게 3가지 갈래로 나눠서 이해를 했고 읽었기에 이 독후감도 그 3개의 질문으로 나눠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읽고 이해한 바로 이 책은 아파트에 대해 3 가지의 아주 큰 질문을 학술적으로 분석해서 답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왜 아파트인 가?”, 두번째 질문은 “어떻게 아파트인가?”, 마지막 그리고 세번째로 “과연 아파트인가?”이다. 첫번째 질문인 “왜 아파트인가?”에 대해서는 일단 이 책의 작가가 프랑스 지리학자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인인 작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아파트’는 국민복지를 위해 지어지는 ‘국민주택’ 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지배적이라고 한다. 신혼부부나 이민자 가족 혹은 경제적 형편이 넉넉치 않은 저소득층 시민들이 선택하는 주거 형태이며 살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할 때까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한국을 방문하고 본 그 압도적인 수의 아파트와 그 아파트가 한국인들에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먼저 첫 장에서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파헤친다.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아파트의 역사 부분부터가 꽤 충격적인데, 현재 부의 상징 이 된 아파트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미지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하는 점이 첫번째 충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70년 4월 8일 서울시 마포구 와우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붕괴되면서 3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고 시설 또한 지금의 모습과 매우 달라서 아파트이지만 푸세식 화장실, 좌식 부엌(아궁이) 그리고 연탄 난방 시스템 등 애초에 일반 단독 주택보다 편한 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으 로 보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국가는 당시만해도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한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지방에 흩어져 있었던 사람들 을 서울로 이주시키기 위한 정책을 활발히 펼쳤고 이는 서울에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로, 자연스 럽게 시민들의 주거문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아파트를 선택한다. 1964년 마포아파트 단지의 완공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 당시 정부가 아파트를 어떻게 생 각하는지 가 명확히 보인다. ‘아파트는 국가 현대화의 도구이자 모든 봉건제도의 잔재, 농촌의 낙 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나는 한국의 근대사에서 보이는, 상당히 익숙한 양상이 보였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부터 알아보고 해결하기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가장 눈에 보이는 눈엣가시부터 먼저 ‘해치 워버리려는’ 그런 시나리오 말이다. 왜 하필 아파트를 선택했는지는 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책을 다 읽고 예측하건데 아마 아파트가 그들의 눈으로 봤을 때 가장 빠르고 ‘가성비’ 좋게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또한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한국이 이만큼 발전 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한 나라와 도시(서울)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로서 아 파트만큼 최적의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북한이 틈만 나면 평양의 100층이 넘는 호텔과 빌딩 그리고 거대한 동상들을 뉴스로 방송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작가는 그 과거에 펼쳤던 주택 정책들을 분석하면서 한국은 “어떻게 아파트인가?”라는 두번째 큰 질문에 답변을 한다. 그리고 아파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땅 덩어리 좁은 곳에서 아파트 말고 대안이 있나?’라는 한국인의 오래된 생각이 사실은 오랫동안 국가와 대기업과 그 외 수많은 대상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답변일 수도 있겠다 는 새로운 생각이 태어났다. 주택정책의 방향이 대규모 주택 건설로 자리 잡은 것은 1972년에 재정되었다고 한다. 이 법은 사실상 아파트 단지의 빠르고 많은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급조된 법으로 1970년대 건설된 주택의 70퍼센트는 2,000세대 이상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 집중되었고 1980년고 1990년 사이 신규 주택 건설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90퍼센트로 증가했 다. 그리고 이 정책은 우리가 사실 아파트 탄생과 성장의 원인으로 보는 ‘인구 밀집화’를 초래했다는 기가 막힌 내용이 나온다. 단순히 많이, 빨리 아파트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주택과 고층 건물 건설에 특혜를 주고 대규모 주택 건설 절차를 용이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유인책과 지원을 통해 사람들을 아파트에 살도록 유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시킨 중요한 요인인 ‘서울시 남동부의 도시 개발 사업’으로 인해 중요 대기업과 명문 8학군을 강남으로 이전시키면서 ‘대기업에 다니는 부모님과 명문 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사는 아 파트 로서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아파트는 국가 현대화 도구의 대표적인 예시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택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 때문에 옛날부터 한국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즉 ‘비공식적 금융권’을 통해 돈을 빌리고 갚으며 아파트를 구매해 왔다. 지금도 결혼을 하면 시댁과 친정에서 집을 마련해주는 데에 도움을 주고 안 주고가 결혼에 있어 서 아주 큰 사건인 것으로 보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또 재개발에 있어서도 원래 살고 있었던 하층민이 밀려나가고 상류층이 들어오는, 애초의 주민들이 그 희생자 가 되는 주거환경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아파트에서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었을 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사회인이 아닌 학생의 입장 에서 이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 각했지 이를 주택, 특히 아파트와 연관 지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놀랐었다. 마지막 질문인 “과연 아파트인가?”에서는 높은 인구밀도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오직 아파트 밖 에 방법이 없는 가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이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또 다른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서울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과 아파트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서울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5층 이하의 다 세대 주택과 그 외 아파트가 아닌 주거 시설이 많은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아파트의 위치는 결코 그 지역의 인구수, 인구 밀집도와 직결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결 국 한국의 아파트는 정부에 의해, 대기업에 의해 처음부터 그 위치와 계획 그리고 설계를 맡기고 사람들이 따라가서 살게 된 것이라는 주장을 책은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파트들은 30년을 못 버티고 노후화되면서 언젠가 또 다른 멋지고 넓고 비싼 아파트로 대체되면서 몇 몇 원주민들 은 또 그 지역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내가 20년 넘게 살아온 사랑하는 나의 빌라가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생각나 씁쓸했었다. 물론 아버지는 그 빌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으실 만큼 애정이 크셔서 나의 본가는 계속 그 땅 위에 계속 존재할 것 같다. 하지만 ‘아파트 공화국’을 읽고 난 뒤 바라보는 빌라 재개발은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원래 살던 사람들을 내보내며 지은 최신 아파트도 결국 30~40년을 못 버티고 또 다른 아파트가 지어지겠지. 유럽은 100년 넘은 건물 들에도 거뜬히 사람들이 계속 살던데. 우리나라는 계속 아파트 하나만 바라보며 계속 ‘어쩔 수 없 는 선택이다’라는 변명을 해가며 다음 세대들에게도 아파트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들 수 밖에 없을까? 건축학과 학생으로서도, 일반 시민으로서도 참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참 다양 한 생각의 변환을 하게 만들었던 뜻 깊은 책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미관과 사람들의 주거 환경 개선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던 건축가가 된다면 난 어떤 주거 환경을 만드는 건축가가 되어야 할 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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