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큰 애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밤새도록 대성통곡을 하고도 눈물이 남았는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운다.
시작은 일랑일랑이었다.
이틀 전부터 저녁마다 두 딸에게 일랑일랑으로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첫째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일상. 한밤중에 집안에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건 이튿날 밤부터였다. 바로 어젯밤!
한밤중에 들려오는 난데없는 곡소리, 큰 애 방이었다. 놀라서 애 방으로 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코로나때문이란다.
"코로나 싫어~ 코로나 짜증 나~ 코로나 때문에..."
딸의 입에서 나오던 말이 울음에 묻혀버렸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심각한 척 딸의 설움을 받아줘야 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세어 나왔다. 있는 힘을 다해 웃음을 참으며 우는 딸 옆에서 생각나는 욕은 다 꺼내서 코로나에게 퍼부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딸의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딸이 울음을 다시 터뜨린 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집에 갇힌 신세가 된 게 너무 서러웠나 보다. 큰 애의 방에서 또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랑일랑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중심 혈관을 이완시킨다. 에센셜 오일학에서는 일랑일랑이 hypotensive혈압 저하, aphrodisiac최음, antidepressant항우울, sedative안정의 효과를 갖는다고 말한다. 모두 중심 혈관이 이완되면서 정체되고 막힌 흐름이 원활해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반응들이다. 책만 봐서는 딸아이의 울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우울이 해소된다며? 안정시켜준다며?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는 거냐고!
중심 혈관을 이완시키는 일랑일랑은 뇌로 가는 혈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준다. 뇌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좌뇌와 우뇌의 소통을 주관하는 뇌량의 압력이 낮아진다. 압력이 찰대로 찬 뇌량은 연결 통로의 기능을 상실한다. 다리 위에 적재물이 잔뜩 쌓여 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다리를 상상해보라. 이쪽에서 나온 수확물을 저쪽에서 나오는 것과 함께 가공해야 쓸만한 것이 되는데 다리가 막혀버리거나 하루에 차가 몇 대 밖에 지나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쪽에서 나는 건 이쪽대로 저쪽에서 나는 건 저쪽대로 그냥 날 것 그대로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량이 제 기능을 못할 때 좌뇌는 좌뇌대로 우뇌는 우뇌대로 고립되어 버린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좌우로 막혀버린다. 막힌 느낌,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갇혀버린 느낌에서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이럴 때 나는 조바심이 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을 낸다. 조급한 마음은 생각이 갇힌 방의 창문마저 닫아버린다. 정신력만 가지고 이 좁은 방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일랑일랑이 딸의 몸에 들어가서 한 일, 이걸 도와줬던 게 아닐까?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상황이 곧 끝날 줄 알았는데 한 학년이 다 끝나도록 지속되고 있다. 누구보다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 집에만 있는 나날들이 늘어나면서 죽을 맛일 텐데 상황이 좋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고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기대가 절망이 되고, 또다시 기대했다 역시나 절망하면서 위축된 아이의 몸은 아이에게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 낼 여유를 앗아갔으리라. 대신 전처럼 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짜증, 당장이라도 이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조바심을 만들어냈겠지. 그 짜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발라줬던 일랑일랑이 울음보를 건드렸다. 물이 가득 찬 댐이 터지듯 아이의 울음보가 터지며 아이의 몸에 팽팽하던 압력이 점점 낮아진 걸까? 한참을 울다가 드디어 웃는다. 그러다 또 운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냥 좀 울게 둬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울음보가 터진 게 다행인 것 같았다. 문제는 언제까지 울게 하면 될까, 이것이었다. 다음날까지 통곡하는 아이를 다 울 때까지 정말 둬도 될까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떡볶이를 시켜볼까?
큰 애가 제일 좋아하는 게 떡볶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통곡을 하는 아이를 불렀다. 점심을 먹으러 내려온 녀석이 떡볶이를 보자마자 훌쩍이며 "이거 사진 찍어줘"라고 말한다. 사진을 찍고 나더니 씩 웃으며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딸아이는 이틀간의 통곡 대장정을 마쳤다.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을 어찌나 살뜰히 챙기면서 먹던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떡볶이라니.
요새 언니의 짜증에 고통받던 둘째도 지 언니의 행동이 기가 막혔던지 무섭단다. 이것도 일랑일랑의 효과이길 바라며 첫째 편을 들어줬다.
"너 언니 같은 언니 세상에 없다. 어렸을 때 기억 안 나? 언니가 너를 얼마나 잘 챙겨줬는데!"
첫째가 동생에게 해 준 것들을 줄줄 읊는다. 모처럼 유쾌한 점심식사.
울리길 잘했다. 울게 내버려 두길 잘했다.
한결 가벼워진 아이의 모습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진작에 좀 발라줄걸.
참 재밌는 게 일랑일랑이 내 몸에 가져다준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일랑일랑을 바르고 나서 내 몸은 뒤집어졌다. 팔목과 가슴에 울긋불긋 꽃이 폈다. 너무 가려운데 다행히 가려움을 이길 만큼 너무 졸려서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내 몸에 폈던 꽃은 가려움과 함께 사라졌다. 참고 참았던 울음이 몸에 덩어리가 져있던 걸까? 내 몸에서는 울음 대신 그 덩어리들이 빠져나온 것 같다. 식물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은 기본적으로 정화작용을 한다. 몸에 쌓인 불필요한 것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걸 도와주는 작용. 일랑일랑은 특히 간을 정화해준다. 딸에게는 울음이면 될 것이 나에겐 간에 박혀있던 덩어리들이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해외여행 전에 A형, C형 간염 예방접종을 맞겠다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가지도, 예방접종을 맞지도 못했다. 대신 병가를 냈다. 뜻밖에도 간수치가 몇 천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단명은 원인불명의 간염이었다. 의사는 내가 당장 들어 누워도 이상하지 않다며 호들갑이었다. 신기한 건 병가를 내고 약을 일주일이나 먹었을까, 다시 검사를 했는데 간수치가 정상범위였다는 것이다. 이건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스트레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몹쓸 몸, 이런 몸이니 수많은 생각과 감정에 반응하며 내 몸에 얼마나 많은 걸 쌓아놓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계속 꾹꾹 눌러서 담아놓다 보니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진 몸의 압력, 그걸 안전하게 배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일랑일랑인지도 모르겠다. 압력솥의 증기 배출 밸브 같은 것 말이다.
증기가 얼마나 꽉 들어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구들이 몸속에 눌러둔 증기를 충분히 빼내고 안전하게 뚜껑을 열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가족 마사지샵을 연다. 덤으로 각자의 솥 안에 저마다의 맛있는 요리가 담겨있길 기대해본다.
큰 애의 울음보가 또 터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이놈의 코로나, 통곡할만하잖아.
커버 사진 : Anna Llenas, <The color monster> , templar의 한 페이지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