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배우기만 하고 써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오일, 페티그레인.
이 오일을 처음 배우던 날 생각했다.
나는 아니야!
아니 나인가?
나 같아!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입력만 하고 출력을 못하는 먹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말 입력한 만큼 출력이 잘 되고 있나 찔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출력하는 게 입력한 걸 그냥 복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아찔해졌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에센셜 오일이 페티그레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다른 오일을 선택했다.
페티그레인 오일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배움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때였다. 바로 얼마 전이었다. 재미있던 일들이 어쩜 그렇게 하루아침에 지루해지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평소에도 조증과 우울을 왔다갔다하긴 했지만 이렇게 극적이지는 않았다. 강의를 들으나 책을 읽나 하나같이 다 똑같아 보였다.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야. 새로운 게 하나도 없어. 지겨워!'
마침 온라인 강의를 듣는 날이었다. 그날도 새로울 게 없는 지겨움 속에 나를 쑤셔 넣기가 싫었다. 그래도 꾹 참고 강의를 들을까, 핑계를 대고 빠질까 고민하다 페티그레인 오일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off
오일로 마사지를 하자 아주 잠깐 머리의 전원이 나갔다. 전구가 잠시 깜빡이다 불이 켜지듯이 뭔가 '깜빡' 꺼졌다 다시 켜졌다. 어딘가 꼬여서 멈춰버린 기기를 원상태로 돌리려다 안될 때 리셋을 하듯이 페티그레인 오일이 내 머리를 리셋시킨 걸까?
조금 있으려니 숟가락으로 수프를 젓듯이 머리를 천천히 젓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머리 아래로 내려가 가슴에서 나의 숨을 '호로록' 풀어냈다. 지루한 것, 듣기 싫은 걸 들을 때 답답해지던 가슴이 후련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후련하다'라는 단어를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있던가 싶었다. 후련함은 명치까지 전달되었다. 페티그레인 오일이 소화를 돕는다더니 옥죄는 것 없이 몸을 풀어 소화를 시켜주는 것이었나 보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은 먹은 음식이 제 형체를 잃지 않고 똥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엄청 푸짐한 안주에 술을 잔뜩 먹고 난 다음 날, 그 수많은 날들 중 많은 날 나의 똥이 그랬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먹은 술과 안주를 내 몸은 소화시키지 못하고 내보낸다. 미처 똥으로 바뀌지 못한 것들, 몸속으로 들어갈 때와 같은 형태로 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전 날 내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보여준다.
머리로 들어간 지식이 소화되어 나오는 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남의 말을 내 것인 양 옮기는 것, 타인의 글을 베끼는 것, 베끼는 줄도 모르고 내 것인 양 착각하고 쓰는 것도 이런 것 같다. 술에 취할수록 온 세상 술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듯 지식에 취할수록, 새로운 배움에 빠져들수록 내 머리의 소화력을 맹신하게 되는 것 같다. 한동안은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소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동안은 배움이 재미있을 것이다.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면 황금똥을 싸듯 배운 걸 잘 소화시키면 반짝이는 창조물들을 밖으로 배출할 것이다. 그러다 소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미처 소화되지 못한 걸 설사로 쏟아내거나 변비로 꽉 붙잡고 있게 된다. 내 안에서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하는 조급함이 베끼기로 나타나는 것, 내가 소화시켜서 만들어낸 새로움을 내가 믿지 못해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것 모두 이런 게 아닐까? 그러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생각만 가득 해지는 건 소화불량에 걸린 몸이 가스만 잔뜩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
페티그레인 오일로 마사지를 하고 나서 들은 수업은 재미있었다. 페티그레인 오일이 나를 살짝 헬렐레한 상태로 만들어주었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보다 그 상태가 오히려 수업에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머리에 전원이 잠시 나간 듯한 반응이 좀 무서워 아로마 국제과정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배움이라는 건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전두엽만 잘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태초의 감정을 지닌 변연계, 우리 뇌 속의 원시인이 그 배움을 즐길 때에야 배움의 소화효소가 원활하게 분비된다고 한다. 변연계는 우리의 본능, 원시적 감정에 깊이 관여한다. 원시인이었던 조상이 생존에 위협을 느꼈을 만한 상황, 우리에게는 없는 상황일지라도 비슷한 조건에 노출되면 변연계는 곧바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우리의 감정을 도배한다. 변연계가 편안한 상태여야 배운 걸 잘 소화시킬 수 있다. 정말 배움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면 변연계를 자극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배움이 수단이 될 때 변연계가 자극을 받는 건지도 모른다. 수단이라는 건 보통 나의 성취나 생존과 관련된다.
수단이었나 보다. 나에게 지루해진 나의 배움이.
그걸 수단이 아닌 놀이로 다시 세팅하려고 페티그레인이 내 머리를 리셋시킨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잠시 꺼졌다 켜진 나의 머리가 헬렐레해져 그 수업을 즐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잖아?
당분간은 페티그레인 오일을 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