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눈 밑에 딱딱한 뾰루지가 두 개나 올라와 있다. 속은 또 어찌나 울렁거리는지 통통배를 타고 바다에 나온 것 마냥 멀미가 났다.
어제 내가 쓴 오일이 뭐였더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진저 오일을 쓰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 지난 주말부터는 넛맥 오일도 쓰기 시작했다. 둘 다 쓰면서 특별한 조짐은 없었다. 그러면 계속 쓰던 것 말고 어제만 쓴 오일?
시나몬 리프!
쓰던 것 말고 새로운 브랜드 오일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주문한 게 어제 도착했다. 이런 건 도착하자마자 써줘야 제맛이지. 바로 뚜껑을 열고 한 방울 떨어뜨려 몸에 발라줬다. 시나몬 껍질에서 추출하는 Cinnamon Bark 오일과 달리 잎에서 추출하는 Cinnamon Leaf 오일은 바르고 나면 치과 냄새가 몸속에서 진하게 올라온다. 아로마세러피 국제과정에서 시나몬 리프 오일을 배우던 날도 그랬다. 오일을 바르고 치과 냄새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사실 치과 냄새를 풍기는 대표적인 오일은 따로 있다. 우리에게는 '정향'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클로브 버드 오일이다. 클로브 버드 오일이 함유한 Eugenol이라는 성분이 바로 치과 냄새의 주범이다. 시나몬 오일에도 이 성분이 들어있긴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나몬 오일에서 주로 맡는 향은 시나몬 특유의 달콤 쌉싸름한 향이다.
똑같은 시나몬 오일을 바르고서 왜 나만 다른 향을 느끼는 거지?
에센셜 오일이 참 신기한 게 사람 몸에 닿으면 저마다의 채취와 섞여서 다 다른 향을 낸다. 또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몸에 길게 남는 향과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향이 다르다. 나에게 치과 냄새가 제일 먼저 올라와 오래도록 남은 건 치과 냄새를 내는 성분, Eugenol이 내 몸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Eugenol에서 치과 냄새가 나는 건 치과에서 Eugenol을 쓰기 때문이다. Eugenol의 마취 효과가 치통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이어서 오래전부터 사용하다 보니 Eugenol향이 치과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치통이 있는 것이냐고? 그건 아니다.
Eugenol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하는 일, 통증을 억제하는 것 말고 더 중요한 일이 있다. Eugenol은 몸에 들어오면 뭉친 걸 풀어준다. 혈액 응고를 억제하기도 한다. 몸에서 뭉치는 건 근육만이 아니다. 내보내지 못한 것들, 불필요하게 몸에 쌓아둔 것들은 모두 딱딱하게 뭉친다. 우리는 이걸 독소라고 부른다.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감정,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잡아 둔 생각도 불필요한 대사물질, 독소다. Eugenol이 몸에 들어와서 풀어주는 건 이런 것들이다.
뭐가 그렇게 단단하게 뭉쳐있길래 시나몬 오일에서 치과 냄새가 나는 거야?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무언가 붙잡고 놓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사람인가? 이런 의심 자체가 싫었다.
뾰루지와 멀미로 아침을 시작하면서 이게 시나몬 오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떤 오일이 도움이 될까,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를 뽑아보았다.
로즈마리, 레몬그라스, 저먼 카모마일.
몸에 무언가 제거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때 쓰면 좋은 오일들이다.
시나몬 오일이 밤새 몸속에서 작업을 한 거야?
인사이트 카드를 보며 든 생각.
시나몬 오일이 열심히 녹여낸 것, 뭉쳐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느라 애쓰다 뾰루지가 된 거야? 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발버둥 치고 있어서 멀미가 나는 거야? 장으로 나오고 있긴 했다. 오전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몇 번이나 장에서 바나나를 끄집어냈다. 몸속에 이렇게 많은 똥이 들어있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몸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뜬금없이 올라온 생각이 있었다.
'이걸로 박사 논문 쓰면 좋겠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게 6년 전인가, 7년 전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뜬금없는 생각일 수밖에. 그런데 이건 그냥 뜬금없는 생각만은 아니었다. 박사 논문을 못 쓴 것이라 해야 할지 안 쓴 것이라 해야 할지, 뭐라 말하기 난감한 그때의 상황, 그때의 사건은 나에게 상처였다. 커다란 딱지가 달라붙어 있는 상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미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미련이라는 건 없는 줄 알았는데 미련이 있었던 거다.
이런 젠장!!!!
아닌 척 안으로 숨기고 숨겨서 저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걸 시나몬 오일이 녹여버렸다.
내 똥이, 내 뾰루지가 그 잔해였던 거다.
그래! 솔직히 논문 못쓴 거 미련 많이 남아! 까짓것 인정한다. 인정해!!
기왕에 숨기지 못하고 나온 것들이니 레몬그라스 오일과 저먼 카모마일 오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시원하게 끄집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