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화요일

영혼 소생시키기 Spiritual Rescue (로열블루/ 딥 마젠타)

by Redsmu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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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note : 삶의 창조적 과정에서 영적인 자아와 자신의 역할에 관한 명료한 느낌


Affirmation : 나는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삶은 나를 사랑한다.


어제 꿈에서 나는 또 시험을 봤다.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자주 꾸는 꿈 중 하나, 매번 시험에 늦는 꿈.

어떤 날은 시험시간이 다 지나도록 교실에 도착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종이 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시험지만 보고 만다. 어떤 날은 허겁지겁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한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꿈에서 한 번도 시험 문제를 제대로 푼 적이 없다.


어제 꿈에서 나는 또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린다. 저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온다. 413번 버스.

버스를 타려는데 그냥 휙 지나쳐버린다.


"저게 뭐지?"

버스가 그냥 지나가버린 게 천만다행이다.

버스 옆면, 거기에 적힌 행선지는 저승이었다. 다른 행선지도 있었던 것 같다. 현재, 미래라는 행선지. 하지만 내 눈에 확 들어온 건 '저승'이라는 행선지였다.

저승에 다녀올 수는 있다. 그건 괜찮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서 영영 갇혀버리는 건 싫다. 페르세포네처럼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면 그건 괜찮겠다. 저승으로 하강하기 전 소녀였던 페르세포네, 저승은 그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신화 속 많은 영웅들은 저승에 한 번쯤 다녀오지 않던가? 저승은 영웅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저승'이라는 행선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내 안의 영웅을 아직 깨우지 못한 탓일까? 저승의 문턱을 넘어갔다 다시 삶으로 넘어올 수 있는 힘과 지혜, 아직 나는 그것을 찾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정류장에 서지 않고 가버린 그 버스는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해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싶은 마음, 그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멀리서 또 다른 버스가 다가온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그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한다. 둘이 냉큼 버스에 올랐다. 외진 길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버스 기사가 하는 말, 저 산을 하나 넘어가면 학교란다. 이게 지름길이니 늦지 않을 거란다. 기가 막혔다. 지금 산을 넘어가라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친구와 나는 산을 넘어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다. 역시 지각이다. 다행히 시간이 좀 남은 상태여서 시험 문제를 무사히 다 풀 수 있었다. 완벽했다. 내 평생 꿈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시험을 본 적이 있던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2교시 시험부터는 교실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 교실에 가니 담임선생님이 보인다.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배교사다. 그냥 푸근하기만 했던 선생님. 선생님에게 다가가 지각해서 죄송하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 교사에게 내 칭찬을 한다. 얘가 이렇게 사랑스럽다며. 그리고 2교시 시험이 시작된다. 듣기 평가였는데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앞부분을 놓쳐버렸다. 문제를 찬찬히 보니 문장만 보고서도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다. 차분히 문제를 풀다 잠에서 깼다.


시험을 보는 꿈이 반복되는 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란다. 특히나 시험에 매번 실패하는 꿈이 반복된다면 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건 성공에 대한 강박이다. 무언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집착이 되어 내 삶을 조여올 때 올라오는 감정이다. 거기에 조급함까지 더해지면 두려움은 내 목을 조르는 손이 된다. 시험에 늦지 않으려고 안달복달할 때 초조하고 조급 해지는 마음, 한 문제도 풀 지 못하고 시험지만 바라볼 때의 절망감, 꿈에서 느끼는 이런 감정은 사실 많은 순간 내 삶에 대해 느끼는 나의 감정이다. 그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감정. 무딘 걸까? 꿈에서 알려주기 전까지 나는 눈치채지 못한다. 꿈을 꾸고 나면 잠깐 주의를 기울이다가도 이내 잊어버린다. 나의 몸을 어떤 감정들로 채우고 있는지,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내가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얼만큼인지 모른 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냥 눈만 껌뻑이며 산다. 그러다 가끔 호되게 앓는다.


꿈이 좀 달라졌다.

무사히 시험을 본다. 결과에 만족한다. 실수로 놓친 것도 여유를 갖고 찬찬히 살펴본다.

"놓쳤어도 다시 보니 풀 수 있겠어. 여기 있는 단서만으로 충분해!"


얼마 전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조급함을 목격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왜 무얼 해야 하지?
겁이 나.
뭐가?
진짜! 뭐가 겁이 나는 거지? 흘러가는 시간, 맞아! 흘러가는 시간이 겁이나.
왜? 왜 흘러가는 시간이 겁이 나? 시간은 언제나 흘러가는 걸.
존재의 의미가 사라져 버릴까 봐, 흘러가는 시간이 내 존재를 조금씩 조금씩 지워버리는 것 같아서 겁이나.
존재의 의미? 그게 뭔데?
내가 사는 이유.
사는데 이유가 있는 거야?
살면서 그래도 뭔가 하나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사는 이유 아니야?
뭐가 되면 뭐가 좋은데? 뭐가 되어 무엇을 얻고 싶은 거야?
인정.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누구에게?
나에게. 내가 나를 인정하고 싶어.
정말? 그게 다야?
아니. 조건이 있지. 내가 나를 인정하려면 먼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줘야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그렇니? 타인의 인정이 꼭 필요한 거야?
응. 그런데 가만히 보니 타인의 인정도 세분하고 있네, 내가. 누구의 인정, 얼마 만큼의 인정, 이렇게. 기가 막힌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내가 나를 못 믿는 거네!


그날부터 게을러졌다. 내가 나에게 한 짓에 허탈했거든.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지내보라고. 조급함이 그동안 내 몸을 얼마나 옥죄고 있었던지 몸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어디까지 풀어지나 보는 중이다.

이런 상태에서 꾼 꿈, 그 속에서 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험 지옥에서 나가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내가 진짜 나를 믿기 시작하면 조급함은 사라진다. 조급함이 사라지면 시험은 수월해진다.


시험을 다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혹시 그 버스를 또 만나는 거 아니야? 저승이라는 행선지를 오가는 버스. 왠지 이번엔 내가 서 있는 정류장에 그 버스가 멈출 것 같다. 그러면 한번 타 봐야겠다. 그 버스를.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도 살아서 돌아왔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혹시 알아? 저승에서 보물 상자 하나를 가지고 돌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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