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동굴 (터콰이즈/ 그린)
괴물은 내 꿈의 단골이다.
강도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올 때도 있고 해괴한 외계인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꿈속에서 괴물을 만나면 나는 무조건 줄행랑이다. 어떻게든 잡히지 않으려고 냅따 도망친다. 숨는다.
그런데 어제 꿈은 달랐다.
꿈속에서 나는 특수훈련을 받은 군인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 중이었던 것 같다. 훈련관이 우리에게 이제 시작이니 나가서 싸우라고 선포한다. 괴물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괴물의 형체, 낯선 기괴함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을 너무 열심히 본 것일까? 거기에 나오는 괴물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떤 건물로 모여들었다. 대피소로 쓰이는 건물은 리조트 같았다. 이것도 스위트홈의 그 아파트인가? 나와 함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직 괴물이 건물에 다다르기 전, 1층 끝 방에서 열 명 가량의 신생아를 발견한다. 이 아이들을 포기하자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구해보자는 사람들, 팽팽한 대립 속에서 나는 이 아이들을 구하기로 한다. 드디어 괴물 하나가 건물 앞에 당도했다. 순식간에 이방 저 방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긴 칼을 들고 괴물을 찾아 나선다.
어젯밤 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다. 꿈에 나온 괴물의 형체보다 나에게서 일어나지 않는 감정들이 더 신기했던 꿈. 그렇게 오늘이 시작되었다.
잠들기 전에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코끝에 집중했더랬다. 고엔카의 [위빠사나 명상]을 읽고 셀프로 수련을 시작했더랬다. 코로나로 위빠사나 명상 센터를 갈 수도 없으니까. 솔직히 코로나가 아니어도 대인기피증이 있는 나는 그런 곳을 찾아가기보다 책으로 배우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한다. 모든 걸 글로 배우는 인간. 아무튼 호흡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한 터였다. 어제가 연습을 시작한 지 이틀째였나 삼일째였나,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에 빠져들면서 꾼 꿈이 바로 저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서도 꿈의 잔상이 한참 남아있었다. 비몽사몽,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서성이다 문득 뿌듯함이 올라왔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봤어!
훈련받은 군인이 되어 그들과 싸웠어!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내 꿈에 찾아와 줬어!
속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게 실은 괴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괴물들이 다시 꿈에 나타난 게 뿌듯했다. 계단을 한 층 내려가면 있던 문, 언제부터인가 굳게 잠겨있던 그 문을 연 것 같았다. 마음이 굳어지면서 딱딱하게 굳은 문, 다시 그 문이 열리자 내 안에 갇혀있던 괴물들이 튀어나온 것 같아서 반가웠다.
꿈에서 괴물은 나의 그림자일 수도 있고, 나의 의식으로 올라온 적 없는 무의식의 어떤 조각일 수도 있다. 특히 그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수록 무의식 깊은 곳에 있던 것일 수 있다. 무엇이건 그 괴물이 나를 찾아온다는 건 기회다. 나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나의 의식이 그 괴물을 마주할 준비가 되기만 하면 꿈속에 찾아오는 괴물은 선물이다.
호흡에 집중을 하자 괴물이 선물이 되어 찾아온 것 같다.
맑은 호수를 본 적이 있다.
바람 하나 없는 고요한 날, 호수를 들여다보면 속이 훤히 보인다. 저 밑바닥의 자갈까지.
호흡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