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9일 일요일

크리스탈 동굴 (터콰이즈/ 그린)

by Redsmupet

Keynote : 명상의 내적 여정의 시작, 개성화 과정.


Affirmation : 나는 내면의 목소리의 진실을 향해 나의 길에 빛을 비춘다.


심장이었어!

연결고리를 따라가다 어느새 심장 앞에 다다랐다.

몇 년 전 40대에 막 들어섰을 무렵 오른손 손가락이 아프고 부어서 병원에 갔었다.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가운데 손가락 옆에 불룩 튀어나온 것, 그건 물혹이라는 말도 함께 들었다.


퇴행성 관절염?


어이가 없었다.

내 몸이 그렇게 늙은 거야?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을 만큼 노화된 거야?


화가 났다.

왜? 손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왜 이 나이에 벌써 퇴행성 관절염이야?


서글펐다.

의사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물혹은 주사로 물을 빼내도 곧 찰 텐데 그래도 빼내겠냐고 물었다. 시큰둥한 의사의 말에 괜찮다고 할 수밖에. 소염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는 의사의 말도 그냥 흘려버렸다.


그다음은 공황발작이었다.

관절염도 모자라서 이렇게 숨 막혀서 죽는 거야?

다행히 죽지는 않는단다. 그냥 죽을 것 같이 느껴질 뿐.


모든 일을 멈췄다.

깊은 잠에 빠져 지내기 시작했다. 항상 그랬다. 잠은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었다. 이번에도 잠은 나를 살렸다. 일 년 가까이 잠 속에 빠져 있다 보니 숨 쉬는 게 편해졌다. 주기적으로 동면에 들어야 하는 사람,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증상이 좀 괜찮아지면서 새로운 걸 배우기 시작했다. 마음을 돌보는 것들, 오라소마 컬러 세러피, 아로마세러피.


몸에 변화가 일어난 걸 눈치챈 건 아로마세러피를 배우던 중이었다. 이것저것 배움 중에 만나는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쓰던 중이었다.


어! 물혹이 어디 갔지?

그러고 보니 아침에 일어날 때 그렇게 아프고 뻗뻗하던 손가락도 아무렇지도 않아!


몇 주전 왼쪽 가슴 부분을 울긋불긋한 발진이 뒤덮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까지 동반한 증상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사라졌다.


심장이었어!

심장의 혈액순환, 오른손은 그 순환이 닿는 제일 끝자락. 그땐 몰랐다. 나의 오른손에 생긴 관절염이 심장의 메시지인걸.

공황장애, 그때도 나는 그게 심장의 메시지인지 몰랐다. 눈치는 없고 감만 있었던 걸까? 멈춰야 살 것 같다는 느낌, 그건 맞았으니까. 아주 직설적으로 심장 바로 위, 바로 그 부분에 발진이 잔뜩 올라오고 나서야 '혹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심장이었을까?


그럴 만도 하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주마등,

이런 거구나!

갑자기 주먹만 한 나의 심장에 꼭꼭 눌러둔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만했네. 그럴 만도 했어.


"나가세요. 여기는 당신이 앉아있을 자리가 아니에요."

제일 먼저 뇌리를 스친 장면.

교육학 박사과정 내내 어떤 교수에게 치가 떨리도록 듣던 말. 내가 나가지 않으면 강의를 시작하지 않겠다며 나를 노려보던 그 눈빛.

나는 보건교사였고, 그에게 보건교사는 교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교사였고, 그 대학원 박사과정에 정식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 교수의 적의에 찬 눈빛 앞에서 나는 웃음으로 애원했다. 당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나의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나에게 충분히 치욕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 교수는 강의를 시작했다.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끝내 다 참아냈다. 아니 결국은 포기했다.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포기했다. 그의 말대로 보건교사는 감히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가슴에 올라온 발진은 치욕, 수치심, 열등감, 분노, 내가 나의 심장에 묻어둔 것들. 그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심장이 더 이상 담아두기 싫다고 퉤퉤 뱉어낸 것들이 피부로 올라와서 울긋불긋 가슴을 뒤덮었던 것이었다.


일주일,

일단 나오기 시작하니 일주일 만에 발진도 가려움도 사라져 버릴 걸 몇 년을 가지고 있었다. 심장이 싫다고 이런 거 자신에게 묻어두지 말라고, 너무 힘들다고 말을 하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몇 년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괜찮겠지? 이젠 좀 눈치챌 수 있겠지?

나에게 신뢰가 생긴 심장이 뱉어낸 감정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몸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오른손의 관절통도 물혹도 나를 강제로 멈추게 한 공황장애도 사라졌다. 대신 심장이 건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뭘 넣어뒀는지 가물가물한 냉동실, 몇 년이 된 것인지 모를 것들로 가득 찬 냉동실, 내 몸도 그랬다. 지금이라도 버리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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