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 대천사(무지개빛 블루/ 딥 마젠타)
뒤죽박죽 요란한 꿈에서 깨어난 아침, 전혀 다른 색으로 변해버린 오라소마 바틀이 눈에 들어왔다.
103번, 하니엘 대천사 바틀은 원래 무지갯빛 블루 아래 검은색처럼 보이는 딥 마젠타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청록색이라니!
밤새 이 공간이 연금술이라도 부린 걸까?
갑자기 머리가 윙윙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석을 하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 것이다.
알고 싶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고 싶어!
오라소마의 컬러 배열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 그럼에도 너무나 친숙한 이 색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 나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융의 레드북 한 구절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나 자신 너머에 놓여 있는 것들에 대한 교활한 해석의 고리로부터 잘라낸다.
그리고 나의 칼은 더 깊이 파고들면서,
나 자신에게 부여했던 의미들로부터도 나를 단절시킨다.
- 칼 융의 레드북, p.286
교활한 해석의 고리,
나는 지금 그 고리를 덥석 물려고 했다. 낚일 뻔한 것이다. 이렇게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것이겠지?
강렬한 유혹, 교활한 해석의 고리를 덥석 물고 싶은 충동이 여전히 남아있다.
오전에 레드북 수업을 들으며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받아들인다'는 것과 '해석한다'는 것의 차이가 헷갈렸다. 4개의 단어가 뒤엉켜버렸다.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지 답답했다. 한참을 헤매다 수업의 끝에 다다라서 든 생각,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용기,
본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솔직함,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해석을 덧붙이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깡다구
이것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게 내 안에 있는 것이든 내 밖에 있는 것이든.
보았지만 받아들이기 싫은 것도 있다, 특히 내 안에서 목격한 것일 때는.
본 그대로 말고 좀 꾸며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좀 근사해 보일까 봐.
그런데 내가 목격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 당신도 목격하는 모든 것들이라면 굳이 애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저 솔직해질 용기일 뿐. 솔직하게 보아줄 때 그것도 나에게 과장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테니. 본다고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닐 테니.
그냥 보기로!
어쩌면 청록색으로 변한 딥 마젠타도 그리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림자를 만나는 여정, 그 마음이 딥 마젠타라면 그 여정은 터콰이즈다.
청록색, 딥 터콰이즈가 있다면 딱 이 색일 것 같은 청록색을 보면 깊은 심연에서 수심이 조금 낮은 데로 올라올 때 만나게 될 바다색이 저럴 것 같다. 아니면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기 직전 아직은 햇빛이 닿는 바다의 빛깔이 저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