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간일지도 몰라.
그가 꼬마였을 때 그의 놀이터가 염전 바다였듯이
사춘기 딸들이 꼬마였을 때 아이들의 놀이터도 염전 바다였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었다.
여느 동해 바다처럼 염전 바다도 참 맑았다.
놀이터가 없는 동네,
학교도 차를 타야 갈 수 있었던 동네,
염전 바다에서 동네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했다.
그가 어렸을 때 놀던 대로 아이들도 그렇게 바다에서 놀았다.
아이들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모험의 출발점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마음에는 각자의 모험이 싹트고 있었다.
그도 바다를 보며 그의 모험을 상상했었다.
상상이 행위가 된 모험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널빤지에 올라탄 채 염전 바다로 나간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바다가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다. 자기 키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들어간 걸 알고서 무서워진 그가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에 있던 동생은 형이 장난을 친다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옆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했다면 나도 그를 만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나는 그를 만났고, 염전 바다를 지날 때마다 그의 무용담을 듣게 되었다.
각자의 모험에 나선 아이들은 지금 사춘기의 어디쯤에 와 있다.
아이들의 모험을 응원하던 바다는 뜻하지 않은 모험 앞에 서 있다.
아이들을 응원하던 바다는 응원해주는 이 없이 혼자 거기에 있다.
염전 바다는 이제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혹여 아이가 신기한 마음에 다가가려 하면 붙잡아야 하는 위험한 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전기를 얻기 위해 아이들의 놀이터를 내주었다. 아이들의 시간을 팔았다.
우리에게 정말 전기가 이만큼이나 모자라는 걸까? 아이들의 시간을 팔아서 사야 할 만큼 전기가 부족한 걸까?
아이의 작은 손이 파던 모래를 이제는 굴삭기의 거친 손이 파헤친다.
모래사장, 쓸려나가는 모래를 붙잡아보겠다고 들어선 울퉁불퉁한 옹벽,
모래는 기억할까? 그곳에서 뒹굴던 아이들의 부드러운 살결을.
어느 바다로 갈까?
우리는 다른 바다로 가면 된다.
하지만 바다는 어쩌지? 그곳에 붙박여있는 바다는 어쩌지?
사진 : 그 (홍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