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 쌀은 이제 없다.

기억의 공간도 사라졌다

by Redsmupet
마을 입구


어느 해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어린 시절 마을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면서 이곳을 또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떠날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 다시 돌아와 보니 그들은 여전히 이웃에 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누군가는 농부로, 누군가는 어부로, 누군가는 광부로 살아온 동네가 사라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동네는 여전히 동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네가 사라지고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리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에이~ 설마~~ 저기에 화력발전소가 있는데 또 들어선다고?"


소식은 사실이 되었다. 소식보다 더 어마어마한 사실에 사람들은 수군댔다.

"우리 동네 앞에 있는 남동 화력발전소보다 더 큰 발전소라며?"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크다는데?"


충주호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호수가 원래 마을이었다는 얘기에 묘한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이 저 물속에 묻혀있구나."

기억을 화력발전소에 묻어버리게 될 사람들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동네가 화력발전소가 된다는 말을 듣고 어땠는지.

"실감이 안 났지. 보상받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향에 대한 추억은 어떻게 되는 건가, 사실 고향이 사라진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땐 가늠할 수가 없었어."


그와 함께 동네가 사라지고 발전소 공사가 한창인 곳을 가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두 눈이 흔들렸다. 그에게 물었다.

"지금 다시 와서 보니 어때?"

"도둑맞은 기분이야. 내 어린 시절이 사라진 것 같아. 이런 걸 허탈감이라고 해야 하나? 누가 내 추억을 막 헤집어놓은 것 같아. 여기 더 이상 못 있겠어. 그만 가자."


공사 전 _눈 쌓인 마을 전경
공사 중_ 마을이었던 곳의 전경


발전소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자리는 논이었다.

우리는 저 논에서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먹었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마트에서 쌀을 사 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우리 동네 쌀은 없었다.


어느 가을날 그는 수확 중인 농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땐 몰랐다고 한다. 이게 안인의 마지막 수확이라는 것을.


우연치고는 참 재미있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던 시절, 나는 농활 대신 환활을 갔었다. 환활은 '환경현장활동'의 줄임말이다.

내가 간 곳은 영흥도였다. 그곳은 그때 화력발전소 건설을 앞두고 있었다. 화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연합, 우리는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러 영흥도로 농활 대신 환활을 갔었다. 농성 천막에 다가서자 할머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섬마을 선생님'

뻘에서 동죽과 바지락을 캐며 살아온 날들이 노래 속에 묻어있었다. 할머니들이 거기에 모인건 그저 뻘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지금도 '섬마을 선생님'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영흥도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내 기억 속에 화력발전소는 영흥도 화력발전소 하나였는데 하나 더 늘어버렸다.

할머니들의 뻘에 그의 고향이 하나 더 더해졌다.

빚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무겁다.



사진 : 홍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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