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건 향수만이 아니었다.

by Redsmupet

그가 기억을 더듬는다.

그의 기억이 다다른 곳은 6~7년 전 이장님 댁이었다. 당시 마을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삼겹살에 소주,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이장님이 절친한 친구분에게 말씀하셨단다.


"우리는 여기 끝까지 남자. 떠나지 말자."


태어난 곳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안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그의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장면 하나를 가지고 이장님 댁을 찾았다. 이장님은 원래 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로 조성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십여 가구가 그곳으로 집단 이주를 했다고 한다.


KakaoTalk_20201129_164819359.jpg 안인 사람들이 집단 이주한 마을

궁금했다. 왜 하필 집단 이주를 한 곳이 화력발전소 바로 옆일까? 마을은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피할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마을은 사라져도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집단 이주를 하면 마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


안인은 오래된 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전출도 전입도 드문 동네가 안인이었다. 도시로 나간 자식을 둔 집이 하나둘 늘어갔을 뿐 오래된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된 집, 오래된 동네, 오래된 관계 속에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었다. 농사를 지으며 텃밭을 갈며 사는 이들의 삶은 웬만해서는 동네를 벗어날 일이 없었다. 굳이 동네를 벗어날 필요도 없었다.


안인철거후-3.jpg 철거되기 전 안인리 마을 풍경
안인집4.JPG 추억이 되어버린 마을의 일상 풍경
KakaoTalk_20201129_170832096.jpg 안인리 사람들 대부분은 농부였다.
KakaoTalk_20201129_170852101.jpg "농사지을 땅도 사라졌는데 여기 남아서 뭘 해."


예상치 못했던 일로 난생처음 이사를 가게 된 마을 사람들, 그들이 생각해낸 곳이 마을 성황당을 벗어나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았다.


'이분은 마을을 떠나지 못하시겠구나, 오래된 집이 사라져도 오래된 관계만 그대로 옮겨올 수 있다면 마을을 떠난 게 아니라고 믿고 계시는구나.'


성황당.jpg 대동(안인)리 성황당, 뒤로 보이는 길이 새로 조성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자네 집 뒤편이 우리 집이었잖아? 우리 집은 도로가 되어버렸어. 허허허"

이장님의 웃음 속에 묻어나는 허망함, 오래된 집만 사라진 게 아니었던 거다. 마을을 옮기고 마을 사람들이 새 집으로 이주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가져오지 못했다. 오래된 관계.


한 마을을 옮기는 일은 아름답지 않았다. 저마다의 생각이 충돌을 일으켰다. 거기서 불거진 갈등 앞에서 오래된 관계는 덧없이 무너졌다.

"예전에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수가 됐잖아. 한 마을로 옮겨오고도 아는 채도 안 해. 이제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는 사기꾼이 되고, 누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못된 놈이 되고 어떤 이는 억울한 사람이 되었다. 한 마을이 사라지는 일, 마을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건 향수만이 아니었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지켜주던 성황당은 이제 화력발전소 공사현장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 있다.




사진 : 그 (홍윤성)

인터뷰 : 천성철(대동 1리 이장, 현재 이주한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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