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을 때 가장 지겨운 회의가 하나 있었다. 평소에 조용하던 선생님들도 이 회의에서는 언성을 높였다. 회의시간마다 시계를 쳐다보던 선생님들도 그 회의에서는 시간 감각을 상실했다. 그건 다음 해의 성과급 기준을 정하는 회의였다.
교사의 성과를 측정하는 확실한 방법,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타당한 기준이 있다면 매년 이 치사한 회의를 반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몇 해를 반복해도 그 기준을 찾을 수 없었다. 치사함만 늘어날 뿐이었다.
성과의 기준을 찾지 못하는 우리가 멍청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교사의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건 없었던 걸까?
처음에 교사에게 성과급 제도가 도입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었다.
"교사의 성과는 무엇일까?"
일반 기업의 성과는 수익이나 생산량 같은 것일 테다. 교사는 어떤 수익을 창출하고 어떤 것을 생산해내길래 그걸 점수로 매겨서 성과 등급을 나눈다는 거지? 학교에서 각자의 성과를 구분하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성과급을 도입하는 이유는 조직의 성과와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학교에 성과급을 도입할 때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학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학교의 성과는 무엇일까?"
학교의 성과, 그건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돕기 위함이라고 말하려니 어딘가 켕긴다.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초, 중,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니까'라고 말하려니 너무 퍽퍽해서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문제인 건가?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여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지금 우리에게 있긴 있는 걸까?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인간의 성장을 돕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학교의 성과는 아이들의 성장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하는 동안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루었느냐가 학교의 성과일 것이다. 교사의 성과를 점수로 매기려면 바로 이걸 점수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데 이 교사는 얼마나 기여했고, 저 교사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걸 점수로 매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사에게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면서 왜 이걸 정량화해주지는 않았을까? 가능했다면 그 기준도 주지 않았을까?
교사들끼리 찾아야 했던 성과급 기준, 우리는, 아니 나를 제외한 교과 선생님들은 그 기준을 수업 시수에서 찾았다. 수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점수를 많이 주자는 것이었다. 그다음 기준은 직급이 되었다. 부장 업무를 하는 선생님에게 점수를 더 주자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에게 가산점을 주자고 누군가 제안하니 각자가 속한 부서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기 시작했다.
남의 수업을 빌려서 보건수업을 하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저도 수업을 하는데 저처럼 유령수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점수를 주나요?'라고 물어볼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다음 해에 아무도 나에게 수업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업무는 매년 새로운 업무분장을 통해 로테이션되는데 보건교사의 업무는 아무도 해본 사람이 없었다. 나밖에는. 그 업무에 대해서 말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으면 어쩌나 지레 겁먹고 잔뜩 움츠러든 개구리.
학교에 있는 동안 성과급이라는 제도가 사라지길 빌었다. 간절한 소원 중에 하나였다. 매년 초라한 개구리가 되어 움츠러드는 내가 너무 싫었다. 해마다 가장 낮은 성과급을 받으며 내 존재가 정말 학교에 필요하긴 한 건가 회의가 들었다. 학교에 딱 한 명만 있는 존재, 이게 소수자의 설움인가 싶었다.
학교에 도입한 성과급 제도는 지금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을까? 성과급 제도에 대한 성과에 점수를 매긴다면 성과급 제도는 최고 등급인 S를 받을 수 있을까?
며칠 전 있었던 보건교사 임용시험 문제를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보건교사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어떤 문제는 '이 문제를 출제한 사람은 분명 엑스맨일 거야. 보건교사 안티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문제를 내겠어'싶은 것도 있었다.
이 문제를 보면서는 이게 교과교육론일까, 교과내용학일까 궁금해졌다. 출제자가 교육학이 별도의 과목으로 있다는 걸 잠시 잊은 걸까?
이렇게 눈 길이 멈춘 문제에서 예전의 경험, 잠시 잊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요란하던 그 회의실, 잔뜩 움츠린 채 앉아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