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담배 냄새

모른 척 할까, 참견할까?

by Redsmupet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은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들이 담배 냄새에 얼마나 민감한지 잘 모른다. 자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던 시절 자신의 후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직 '애'인 걸까?

보건실에 있다 보면 들어오는 순간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가끔 말고 자주.

순간 고민한다.


'모른 척할까, 참견할까?'


고백하건대 모른 척하고 넘어간 적이 많았다.

아이에게 담배를 피웠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순간 그 아이를 선도에 넘기고 학칙으로 심판해야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학생이 흡연을 하는 게 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무슨 보건교사가 그러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보건교사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 아이가 흡연자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담배가 그 아이의 건강에 끼칠 해로움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나쁘다는 담배를 굳이 피우기로 결정한 것인지, 그 이유가 중요했다. 담배를 피우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는 아이에게 담배가 얼마나 나쁜지 백날 떠들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담임선생님들이 있었다. 마침 그런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아이가 나한테 딱 걸렸다. 딱 걸린 그 친구가 다른 친구까지 물고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과 작당을 했다.

"우리 이거 비밀로 해요."


아이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너희 담임선생님과 나만 알기로 했으니 내 말을 한번 들어보지 않겠냐고. 그 날부터 3명의 아이와 매일 아침, 저녁 보건실에서 만났다. 카톡을 트고 수시로 카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보건교육을 하긴 했다. 흡연 예방 교육 말고 감정 교육.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걸 함께 연습했다. 아이들에게 감정 일기장과 감정에 대한 단어 목록을 나눠줬다. 하교하는 아이들에게 미션을 줬다.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일단 나에게 카톡 하기. '지금요!'라는 단어 하나여도 좋다고 말했다. 거기에 담배가 피우고 싶은 그 순간의 감정이 무엇인지 감정 단어 하나만 더 추가해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냥 담배를 피우고 싶어 질 때마다 알려달라고 했다.

"카톡" "카톡" "카톡"

밤늦게 까지 이어진 카톡 소리는 아이들이 잠들면서 잠잠해졌다.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기로 결정하는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카톡 소리가 알려줬다. 다양한 단어로 표현한 아이들의 감정 속에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불안이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기, 그 한가운데 서있는 아이들에게 불안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불안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감정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감정의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법을 배운 아이들에게 담배는 불안을 달래는 간편한 선택지였다.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걸 연습하면서 아이들은 담배를 끊었다. 겁쟁이라고 놀리며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꼬시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무용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게 익숙해지기까지 한 학기가 걸렸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직도 금연 중인 거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자신감 있는 얼굴로 "이제 담배 안 피워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고마워 감사 일기장을 선물로 주었다.

이제는 여기에 매일매일 감사한 일들을 적어보렴. 내 일기장에는 오늘 너희 이름을 적을 거야.


많은 아이들에게서 담배 냄새를 맡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을 맺은 건 아쉽게도 몇 번 안된다. 비밀로 해준다는 보건교사의 말을 믿기엔 아이들에게 학칙의 벽이 너무 높았다. 나도 마음 맞는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오붓하게 만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담할 시간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 아이들이 있는 한 보건실은 항상 도떼기시장이었으니까.


학생들을 만나면서 '어른들이 만든 이론이나 규칙이 정말 맞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우리가 배우는 수많은 이론들이 정말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닌 실제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과 정말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 문제를 보며 내가 만난 십 대 흡연자들이 생각났다.

담배가 나빠도 기꺼이 담배를 선택하던 아이들. 내가 찾은 금연 방법을 나도 이론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러면 좀 아이들의 흡연을 일탈이 아니라 단서로 보게 될까? 그들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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