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수업을 하는 투명인간

또는, 거짓 보고 전문가

by Redsmupet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만난 건 책에서였다. 옆 학교 보건 선생님이 재미있다며 읽어보라고 빌려줘서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보건교사를 다룬 소설이라서 읽기 싫었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 전에 먼저 거부감이 들었다.


'이 책에는 또 얼마나 많은 편견들이 묻어있을까?'


간호사로 근무하며 간호사에 대한 편견이 묻어난 드라마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보건교사가 되어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 보건교사 안은영은 좀 달랐다. 엉뚱한 장르와 소재여서 그랬을까? 걸리는 부분 없이 유쾌하게 읽어 내려갔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에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이거 하나 보겠다고. 한참을 재미있게 보다가 한 장면에서 가슴이 탁 막혔다. 고구마 열개를 한꺼번에 삼킨 기분이랄까.


정말 제대로다! 이런 걸 풍자라고 하나? 왜 저 장면은 웃긴데 슬플까? 왜 이렇게 아프지?



보건교사 안은영이 힘겹게 사람 크기 만한 인체 모형을 들고 낑낑대며 교실마다 돌아다닌다.

나도 저랬다.


내가 들고 다닌 모형은 다행히 상반신만 있었다. 불행히 5개 세트가 이민가방보다 더 큰 가방에 담겨 있었다.

다행히 그 가방엔 바퀴가 달려있었다. 불행하게도 학교에는 계단이 많았다.

다행히 전자 칠판이 있는 교실에는 컴퓨터도 있었다. 불행히 전자 칠판이 없는 교실이 많아 노트북도 들고 다녀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심폐소생술 수업을 재미있어했다. 불행인 건 보건교사에게는 수업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자기 수업을 빌려주는 교사들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수업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대충 하라'는 것이었다. 교육청에서 보고하라고 하니 시늉만 좀 하라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시늉만 하기 싫었다. 내 마음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과 불행이 뒤섞인 시간들이 떠올랐다. 다행이 진짜 다행인 건지, 불행은 진짜 불행인 것이었는지 헷갈리던 시간들. 그 사이에서 참 많이 흔들렸다. 지쳤다. 어쩜 드라마가 이렇게 보건교사의 현실을 웃프게 풍자했을까 싶었다. '웃프다'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어가 없었다면 저 장면을 보는 내 마음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보건교사 안은영과 나의 차이라면 나는 수업 중간에 잠깐 들어가서 심폐소생술 시범만 보이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 크게 한 학기의 절반을 빌렸다. 한 과목의 수업 시간을 빌리기도 하고 여러 과목의 수업 시간을 쪼개서 빌리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점점 과감해져서 결국은 2시간 블록 수업으로 빌리는데도 성공했다. 덕분에 교과서를 가지고 안정적으로 아이들에게 보건수업을 할 수 있었다. 보건수업은 그냥 듣기만 할 때보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효과적인 수업이어서 블록수업이 참 좋았다.


이렇게 좋은데 또 슬펐다. 아니 이건 슬픔이라기보다는 자괴감이라는 감정이 더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출석부에 과목명과 교사의 사인을 하는데 '보건'이라는 글자와 내 이름을 적을 수가 없었다. 빌린 수업이라 내가 이 시간에 이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나는 보건실에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 시간 그 수업, 그 반에 있는 건 내가 있어도 내가 아니라 내가 빌린 교과의 선생님이었다. 홍길동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마음이 내가 수업을 해 놓고서 나는 수업을 안 했다고 부정당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여기서 끝난다면 '에이 이 더러운 세상 퉷!'하고 말아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난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고, 내 의무를 외면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슬픈 거다. 자괴감이 드는 거다. 보건교사의 수업은 필요에 따라 한 것이 되었다가 안 한 것이 되었다가 또 한 것이 되기도 한다. 내가 실제로 어떤 수업을 몇 시간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무엇 때문에 보건수업에 대해 묻는 것인지 그 의도에 따라 내 수업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투명 수업이 되기도 했다. 교육청에서 법정 보건교육 시수를 준수했는지 조사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국정감사자료 준비로 국회의원이 질의 공문을 보내면 내 수업은 실제로 한 수업 시간보다 부풀어졌다. 하지만 출석부에서 내 수업은 여전히 투명 수업이었다.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도 어떤 보건교사는 안은영처럼 낑낑대며 심폐소생술 실습 인형을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보건교사는 미친년이 되기로 작정했던 나처럼 법정 시수대로 수업시간을 달라며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양호실에서 뜨개질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양호선생님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들은 보건교사가 수업을 한다는 말에 기가 찰 지도 모른다. 상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상상과 현실의 싸움은 거의 상상의 승리로 끝나는 것 같다. 현실은 패배자이자 거짓말쟁이로 전락하는 것 같다. 현실이 자신의 세상, 자신의 관점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일 때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나도 보건교사가 되기 전에는 보건교사에게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을 가르칠 의무가 있는지 몰랐다. 그게 보건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아프면 약주고, 다치면 빨간약 발라주는 게 보건교사인 줄만 알았다. 내가 보건교사가 되기 전에 알고 있던 보건교사의 모습도 기성세대들이 알고 있는 '양호교사'의 모습이었으니까 이해는 된다. 하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현실에 뿌리내린 편견이라는 놈이 실제를 경험하지 못한 혹은 실제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의 상상을 먹고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이런 이들의 상상이 이긴다면 편견에 깔린 사람들은 압사당해버릴 것 같아서 슬퍼진다. 거기에 깔려버리기 싫다고 나만 도망 나온 것 같아서 움츠러든다.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보건교사 안은영의 거침없는 욕이었다. 차마 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그녀가 대신해주니 얼마나 통쾌하던지! 안은영이 욕을 좀 더 거침없이 많이 했으면 이 드라마가 내 인생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2020 임용시험 기출문제, kice.re.kr

보건교사를 선발하는 임용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 중 하나가 '심폐소생술'이다. 심폐소생술은 보건교사가 아이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다. 이 문제를 보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보건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안은영처럼 힘겹게 복도를 전전하면서 남의 수업에 문을 두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 초라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초라함이 사라진 자리에 수업의 즐거움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이 그 자리를 채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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