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인 게 무력하게 느껴질 때

너의 세상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구나.

by Redsmupet

어느 날 1학년 아이가 보건실에 찾아왔다.


"선생님~ 저 할 말이 있는데 애들 없을 때 얘기하고 싶어요."


쉬는 시간에 보건실에 애들이 없기란 참 힘들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말하라고 할까 하다가 아이의 표정을 보고 '복통'으로 입실증을 써줬다.


입실증은 아파서 수업을 듣기 힘들 때 보건실에서 처치를 하고 1시간 쉬어야 한다고 담임선생님과 교과 선생님에게 알리는 확인증 같은 것이다. 보통은 수업을 듣지 못할 정도로 아프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아이들에게 입실증을 써주지만 종종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도 입실증을 써준다. 아직 아이의 말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표정과 몸짓에서 '비밀로 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내 입을 닫아버리겠어요'라는 단호함이 묻어날 때는 입실의 이유를 거짓으로 적기도 한다. 입실증에 '상담'이라고 적어서 보냈다가 다시는 보건실을 찾지 않은 아이들을 경험해봐서 웬만하면 입실의 이유에 '상담'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가장 만만한 건 복통이다. 생리통이라고 적어서 보내면 생리기간까지 따지며 깐깐하게 구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둘러대기엔 복통이 제일 좋다.


수업종이 치면 보건실에 바글바글하던 아이들이 쑥 빠져나간다. 보건실에서 쉬겠다고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내가 근무하던 보건실에는 또 하나의 방이 있었다. 보건실 속의 상담실. 보건실을 넓은 공간으로 옮기고 새로 꾸미면서 만든 공간이었다. 전에는 이런 공간이 없어서 비밀 상담을 원하는 아이들과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학교 안을 이리저리 헤매곤 했었는데 그날은 보건실 속의 상담실 덕분에 헤매는 시간 없이 바로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아이가 눈치를 본다. 엄한 입술만 계속 깨물어댄다.

기다려준다.


"선생님, 아빠가 자꾸 저한테 이상한 행동을 해요."


'아이~C!!!!!!!!! '


내가 볼 때 교사를 뽑는 임용 시험에 꼭 필요한 과목이 하나 더 있다. 연기!

놀라도 안 놀란 척, 분노가 치밀어도 평온한 척, 겁이 나도 용기 있는 척,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입을 닫아버리지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 있는 연기.

학생들 앞에서 나는 비교적 연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항상 평온해 보이는 나의 모습을 아이들이 코믹하게 따라 하며 나를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나를 찾아온 그 아이 앞에서 나의 연기는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가 말로 표현하는 걸 힘들어해서 펜과 종이를 주는데 손이 떨렸다. 그래도 이렇게 나의 연기 인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지!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있는 힘껏 꾹 눌렀다.


소심한 목소리만큼이나 소심한 글씨.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작은 글씨로 써 내려간 그 아이의 이야기는 아빠의 성적 학대, 엄마의 방임이었다.

작은 글씨가 아팠다.

'누구에게 들킬까 봐 글씨도 이렇게 작아진 거니?'


속에서는 눈물이 났지만 내 눈은 말짱해야 했다. 내 목소리는 평온해야 했다. 절대 떨리면 안 된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애써 내뱉은 그 아이의 말을 다시 가져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어려운 연기의 관문을 넘고 나면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에게 말을 해야 한다.


"용기 내서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아~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로 해줄 수가 없어."


보건교사로 근무하면서 내가 가장 하기 싫었던 말이다. 아이의 눈을 보며 저 말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게 이 아이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당장에 느낄 이 아이의 배신감과 혼란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너무 싫었다.

사실 믿음도 별로 없었다. 아동 학대 신고 의무에 따라 신고를 하고 나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절차가 정말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나의 경험은 나에게 의심을 심어주었다.


이 아이가 나를 찾아오기 몇 년 전, 한 아이가 가정폭력으로 보건실을 찾아왔었다. 이 아이가 대놓고 가정 폭력이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렇더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부모일 때 자기가 그 부모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더라. 바보같이. 가정폭력이라는 건 아프다고 찾아온 그 아이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상담을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었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그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다. 엄마에 대해 물으니 없단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때릴 때마다 자기 몸으로 동생들을 보호하는 아이의 몸에는 상처가 참 많았다. 아이를 겨우 겨우 설득했다. 신고해야 한다고. 아이는 선생님을 믿고 아빠를 신고했다. 아빠를 신고한 아이에게 친할머니의 욕이 쏟아졌다. 얼마 안 있어 아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아이는 선생님을 믿지 않게 되었다. 보건실에 오긴 왔다. 상처를 치료해야 하니. 여전한 폭력, 그걸 목격하는 신고 의무자인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에게 보호시설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따뜻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보호시설은 아이에게 아빠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단다.


"선생님~ 그냥 제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참는 게 제일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1년만 참으면 졸업하고 저도 성인이 되잖아요. 제가 돈 벌어서 동생들 데리고 나올 수 있을 때까지만 참으면 돼요. 그러니까 저 그냥 놔두세요."


내 가슴에 박힌 그 말을 시간이 흐른다고 빼낼 수 있을까? 신고하라고 해놓고서 무슨 뒤처리가 저렇단 말인가?

법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지 경험하면서 쌓인 불신이 그날 내 앞에서 작은 글씨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그 아이 앞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신고를 해야 했다. 이 아이를 이 상태로 두는 건 나도 이 아이에게 방임이라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니까. 아이를 설득하고 학교장에게 보고를 했다.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렸다. 학교 담당 경찰이 다음 날 아이를 면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표정이 전날과는 완전히 달랐다.


"선생님~ 제가 한 말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아이는 교실로 돌아갔다.

다시는 안 올 것 같던 아이가 며칠 뒤 다시 보건실에 왔다.


"선생님, 엄마가 아빠 얘기 밖에서 하고 다니면 저만 이상한 애 취급받고 왕따 당한대요. 저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요."


아빠에게서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엄마, 엄마가 보호하고 싶었던 건 '가족'이라는 껍데기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이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결국 마음을 닫아버렸다. 엄마가 지키고 싶어 하는 그 세계를 위해. 나는 그저 굳게 닫힌 그 아이의 마음, 그곳으로 통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 덕분에 학교 담당 경찰과 카톡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굳게 닫힌 그 아이의 문을 열지 못했다.


작년 보건교사 임용시험 문제 2번을 보고 나에게 실패를 안겨준 아이들이 떠올랐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다 겨우 잠들었다. 내 보건교사 생활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법을 만들었다고 딱 그만큼에서 뿌듯해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제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길 바라본다. 법은 저절로 현실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법이 현실이 되는 데에는 법을 만드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법이 현실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법을 만들었으니 이제 된 거잖아?'라며 한발 빼는 수단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에 있어보니 그런 법도 꽤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작년 보건교사 임용시험 2번 문제.

보건교사가 되실 분들~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이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만날 현실입니다. 당신이 만날 아이들의 아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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