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생들에게는 어떤 정신건강문제가 가장 핫할까? 정부에서는 어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학교에서 관리하는 학생 정신건강 문제 중 어떤 문제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
정답은 '자살 시도율'과 '스트레스 인지율'이다.
보건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묻기에 적절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들어서면 아이들과 정말 어울릴까 싶은 '스트레스'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기사에 익숙해졌다. '헬조선', 'N포 세대'같은 신조어가 일상화되었다. 올해 학교를 나오기 전까지 보건교사로 근무한 지 11년, 마음이 아프다며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이 부쩍 늘어난 건 대략 3~4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 대부분은 진짜 몸이 아프기보다는 아픈 마음이 몸을 통해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사이 아픈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게 된 건지 마음이 아픈 강도가 세져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간호학에는 '신체 사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편감이나 아픔을 호소하는 이를 볼 때 가장 먼저 오감을 활용해 증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보건교사로 근무하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이다. 그런데 보건실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다 보면 '정말 몸이 아픈 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아프다고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이 하루에 50명이라면 그중에 정말 아픈 곳을 확인하고 약을 주거나 병원에 보내야 하는 아이는 10명도 안되었다. 초짜 보건교사였을 때는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화를 냈다. 꾀병 부리지 말라며 매몰차게 교실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나쁜 보건교사였다.
어느 날 문득 '아프다고 하면 아픈 거지 내가 무슨 권리로 아프다는 애한테 꾀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고등학생 시절 꾀병을 꾀나 잘 부리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당연한 것이었다. 집이 너무 좋았던 나는 어떻게든 야간 자율학습을 빠지고 싶었다. 다행히 매가리가 없는 인상에 살짝 창백한 얼굴, 삐쩍 마른 몸, 꾀병을 부리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최대한 기운 없는 척을 하며 보건실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어지러워요."
대부분 성공했다. 그때는 내가 꾀병 연기를 무척이나 잘한다고 생각했다. 보건교사가 되고서야 알았다. 그때 나의 보건 선생님이 나의 발연기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는 걸. 나의 보건 선생님이 나 같은 보건 선생님이었다면 나는 아마 야간 자율학습이 다 끝날 때까지 집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남들은 다 학교에 있는데 혼자서만 집으로 향하는 쾌감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신체 사정 말고 마음 사정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이 꾹 다물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칼자국으로 엉망이 된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이 24시간으로 확장되었다.
카톡~ "선생님 저 지금 자해하고 싶어요."
카톡~ "선생님 저 임태기 두 줄이에요 ㅠㅠ"
그런데 여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있었다.
내가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아이들 마음속에 가득 찬 혼란들을 함께 봐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감정이 그 아이의 것인지 내 것인지 헷갈려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살아보겠다고 전문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찌 보면 나에게는 슈퍼비전이었다. 나의 마음을 상담하면서 나를 찾아온 아이들의 마음도 함께 상담을 받는 것 같았다.
학교에 상담실이 있긴 하다. 그리고 상담실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학교 상담 선생님은 그야말로 상담 지옥 한가운데서 근무를 한다. 마음이 아픈 건지 몸이 아픈 건지 헷갈리는 아이들이 보건실로 온다. 상담실에 가는 것이 자신을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는 것 같아 두려운 아이들이 보건실로 온다.
초짜였을 땐 그걸 몰랐다. 그래서 난 나쁜 보건교사였다. 그걸 알고 나서는 내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가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치유가 필요해졌다.
작년 보건교사 임용시험 1번 문제를 보면 보건교사가 보건실에서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시험을 치르고 보건교사가 된 이들이 나처럼 나쁜 보건교사가 되지 않기를, 나처럼 자신의 마음이 아파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엉킨다.
상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슈퍼비전이 필수라고 한다. 워낙에 아픈 마음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 마음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면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게 슈퍼비전이라는 이름의 상담이라고 한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든 교사는 기본적으로 상담가가 아닐까?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치고, 또 아이들에게서 삶을 배우는 상담가. 그러니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교사들에게도 슈퍼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건강이 강조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교사 연수가 늘었다. 그런데 말이지 난 연수 말고 슈퍼비전이 더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