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무에게 어울리는 꽃과 그를 닮은 잎과 그 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를
나무는 나비를 유혹할 화려한 꽃과 그늘 아래로 모여들게 할 무성한 잎과
취해 다시는 벗어나지 못하게 할 달콤한 열매가
어긋남, 하늘의 뜻을 그의 눈길이 외면할 때 하늘은 부동이다
하늘을 향하던 가지들이 하나 둘
배부른 나이테들을 기웃거리는 동안
그의 기도는 길고 빽빽하다
어설피 흉내 낸 꽃은 화려한 만큼 향기를 잃고
그늘은 듬성듬성 줄줄 새는 햇빛에 발등이 뜨겁다
얄팍한 껍질 속 텅 빈 과육은 변변한 씨방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그의 가을은 이미 깊다
씨앗을 품은 나무에게 겨울은 쉼이다 쉼 없는 겨울은 불면이다
그해 겨울, 나무의 태양은 높이 뜨지 않았다
뜨는 듯 져버리는 그 사이 어둠이 스민다
밀도를 높인 어둠은 이제 한 줄기 빛도 허락하지 않고
낮과 밤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새들은 날지 않고 냉기를 뒤집어쓴 어둠이 다리를 뻗는다
몰래 가지를 뻗어 그 끝을 더듬어 보지만
촉감만 다른 새로운 어둠의 시작이다
2.
싹둑싹둑 반짝이는 어둠에 숨어
새들의 눈을 피한 나무가 때늦은 가지치기를 한다
가슴에 움튼 하늘바라기 하나 남고
머리를 뒤덮어 눈을 가리는 무성한 가지들 뚝뚝 내려놓는다
어둠에 쪼그린 야윈 손이 푸른 저편에 낚시를 드리운다
다짐의 미끼도 바람의 바늘도 없이
한 가닥 실낱 놓지 않고 붙잡고 계심에..
감사함의 크기는 어쩌면 빛의 두께가 아닌 어둠의 깊이에 따르나 보다
그의 기도는 가난한 시절 꺼내놓지 못한 책상 속 크레파스다
반복은 그 스스로를 닳게 한다
단단한 어둠이 서서히 낡고 있다
방향을 바꾼 바람에 해진 어둠이 흩어진다
나무가 곱은 손으로 허기진 기억을 힘겹게 나이테에 새긴다
언 땅에서 풀려난 뿌리가 흙을 움켜쥔다.
연한 어둠 사이
수액 한 방울 돌지 않은 가지 끝에 웅크린
가녀린 꽃눈의 눈시울이 발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