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입니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 같은 꽃입니다. 다른 봄 꽃이 피기 전에 홀로 고고하게 피어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일지춘색이라 하여 이른 봄 찬 기운 속에 홀로 핀 매화의 고고한 자태는 선비의 곧은 지조와 절개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사군자(四君子)인 매난국죽(梅蘭菊竹) 중 하나입니다. 이는 봄(매화), 여름(난초), 가을(국화), 겨울(대나무)을 뜻한고 합니다. 특히 수묵화로 사군자를 그리는 것은 선비들의 교양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대성리 학자이신 퇴계 이황 선생도 매화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임종하시기 전
” 매화분(盆梅)에 물을 주어라."라고 하신 말씀이 마지막 유언이라 하니 얼마나 매화를 아끼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곧기로 유명한 선생께서는 어떠한 선물도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단성(단양) 현감시절 명기 두향이 사모하며 선물을 드렸으나 받지 않으시므로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니 혹 매화는 받으실지 모른다 하여 희다 못해 푸르기까지 한 최상품 백매화를 구해 선물로 드려더니 "나무야 못 받을 것 없지." 하고 받아서 뜰에 심으시고 아끼셨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매화시 91수를 모아 "梅花詩帖 : 매화 시첩"이라는 시집도 남기셨다고 합니다.
아래 글은 도산서원에서 인터넷에 올린 선생의 시와 해설을 그대로 전재한 것입니다.
선생께서 68세(1568년) 7월에 임금의 부름을 받아 상경하시어 69세(1569년) 정월 28일에 도산의 매화를 그리워하시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憶陶山梅 도산 매화를 생각하다
湖上山堂幾樹梅 호숫가 도산서당 몇 그루 매화꽃이
逢春延停主人來 봄철을 맞이하여 주인 오길 기다리네.
去年已負黃花節 지난해 국화 시절 그대를 버렸으나
那忍佳期又負回 아름다운 그 기약 어찌 또 버릴까
丙歲如逢海上仙 병인년이 되어서는 바다 신선 만난 듯
丁年迎我似登天 정묘년은 나를 맞아 하늘에 오르는 듯
何心久被京塵染 무슨 마음 오랫동안 풍진에 물들어
不向梅君續斷絃 매화와 끊긴 인연 다시 잇지 못하는고.
* 병인년(1566. 명종 21) 1월 26일에 왕명으로 상경 중 득병으로 3월 15일에 귀향
* 정묘년(1567. 선조 원년) 6월 14일에 왕명으로 상경하여 8월 10일에 낙향하셨고,
3월 2일에 낙향 윤허의 언질을 받으시고 3월 3일에 玩賞하시던 盆梅와 이별의 아쉬움을
漢城寓舍盆梅贈答 서울 집에서 분매와 주고받다.
頓荷梅仙伴我凉 매선이 정겹게도 외로운 이 몸 벗해주니
客窓蕭灑夢魂香 객창은 쓸쓸해도 꿈속은 향기로 왔네.
東歸限未攜君去 그대와 함께 못 가는 귀향길이 한이 되나
京洛塵中好艶藏 서울의 먼지 속에서도 고운 자태 지녀주오.
盆梅答 매화가 답을 하다
聞說陶仙我輩凉 듣자 하니 도선도 우리 마냥 외롭다니
待公歸去發天香 임께서 오시기를 기다려 좋은 향기 피우리니
願公相對相思處 바라오니 임이여 마주 앉아 즐길 때
玉雪淸眞共善藏 옥설과 같이 맑고 참됨을 함께 고이 간직해 주오.
* 東歸 : 竹嶺을 넘는 길, 西歸 ; 鳥嶺을 넘는 길
* 陶仙 : 도산에 있는 신선, 즉 도산에 있는 매화
라고, 주고받으시고 3월 5일에 서울을 떠나 3월 17일에 도산에 도착하시어 도산의 매화와
季春至陶山 山梅贈答 늦봄에 도산에 이르러 매화와 주고받다
寵榮聲利豈君宜 부귀와 명리는 어찌 그대와 어울리랴
白首趨塵隔歲思 풍진 좇은 지난 삶에 백발이 다 되었네
此日幸蒙天許退 지금은 다행히도 낙향 윤허받았으니
況來當我發春時 하물며 오심이 내가 활짝 꽃 필 때였던가.
主答 주인이 답하다
非緣和鼎得君宜 和鼎이 탐이 나서 그대 사랑함 아니라
酷愛淸芬自詠思 맑은 향기 좋다 보니 사모하여 절로 읊네
今我已能來赴約 나 이제 기약대로 그대 앞에 왔으니
不應嫌我負明時 꽃 핀 시절 놓칠망정 허물은 말아주오
* 和鼎 : 옛날에 매실을 쪄서 조미료로 사용하는 것
라고 반가움을 나누시고, 4월 2일에 서울에 남겨 둔 매분에 대한 그리움을
次韻奇明彦 追和盆梅詩 見寄 기명언이 화답해 온 분매 시를 차운하여 보내다
任他饕虐雪兼風 그대를 모진 눈바람 속에 맡겨두고
窓裏淸孤不接鋒 나는 창가에서 淸孤히 탈 없이 지났다네.
歸臥故山思不歇 고향산천 돌아와도 그대 걱정 그치지 않으니
仙眞可惜在塵中 仙眞한 그 모습이 티끌 속에 있음이 애처롭네.
* 奇明彦 : 奇大升(1527~1572, 號 高峯)
라고 읊으시고, 70세(1570년) 3월 27일에 손자 안도와 함께 찾아온 서울의 분매를 맞이하여
都下梅盆好事金而精付安道孫兒船載寄來喜題一絶云
서울에 있는 분매를 호사자 김이정이 손자 안도에게 부탁하여 배에 싣고 보내오니
기뻐서 이를 시제로 삼아한 절을 읊다.
脫却紅塵一萬重 먼지를 뒤로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來從物外伴癯翁 속세밖에 찾아와 여윈 늙은이와 짝을 하네.
不緣好事君思我 안달하는 그대가 이 몸 생각 없었다면
那見年年冰雪容 빙설 같은 그 얼굴 해마다 어찌 볼까.
* 金而精 : 金就礪(1526~?, 號 潛齋)
* 安道 : 李安道(1541~1583, 號 蒙齋, 퇴계 맏손자)
라고 다시 만나는 기쁨으로 읊으신 것이다.
문인들은 그림으로 매화를 표현하였으나 나는 그림 재주가 없으니 마음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찍어서 여러분과 함께 감상하고자 합니다.
특히 이번 주제는 "설중매(雪中梅)"입니다. 매화가 피고 흰 눈이 내렸으니 흰 눈과 매화가 어울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설이 갖는 깨끗함과 차가움에 매화가 갖는 지조, 고매함, 아름다움 등이 한데 어울려 더 깊은 맛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매화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라 하나 실제 이러한 장면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그것을 맛깔나게 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 좋게? 도 아름다운 장면을 다수 찍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설레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행여나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찍고 확인하고 또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이런 환상적인 장면을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눈이 매화 위에 내려 살포시 덮었는데 그것이 일부는 녹아서 얼어붙었습니다. 푸른 줄기에 하얀 꽃과 노란 꽃 술이 조화롭습니다. 꽃 세 송이의 균형 잡힌 배치도 사진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꽃 한 송이가 하얀 고깔을 쓰고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아웃포커스 되어 배경을 아름답게 합니다.
매화 두 송이가 시리도록 흰 눈 속에 덮였습니다.
살포시 노란 꽃술이 모여 있고 꽃봉오리 셋이 활짝 터트릴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꼭 먼저 간다고 일찍 도착하는 것도 아니지요. 성급하면 망칠 확률도 높아집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지혜로운 삶이라 하겠지요.
위에 있는 사진의 꽃과 같은 것을 좀 더 넓게 포커싱 해서 꽃 세 송이가 어울리게 촬영했습니다.
어떤 사진이 더 아름답나요?
이렇게 조금만 각도를 달리하면 또 다른 사진이 됩니다.
매화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함께 표현하면 더 좋은 사진이 됩니다. 가냘픈 꽃잎 다섯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입니다. 꽃술을 보면 힘들어 지친 것 같지 않나요? 그래도 버텨내야 하겠지요.
어디까지가 꽃이고 어디까지가 얼음이고 눈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기이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날씨가 그냥 봄을 맞기에는 심심했는가 봅니다. 꽃에게는 시련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제 시작인데 포기할 수도 없잖아요!
이것이 매화인가요? 얼음꽃이 아닌가요? 눈꽃이라고요? 다 맞는다고 합시다. 이런 것 가지고 무엇이 옳다 다퉈봐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요즘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살벌하게 싸우는 것 보면 어떤 때는 가엾은 느낌도 듭니다.
그냥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추우면 떨면서 사는 거지요.
곧 따뜻한 봄이 오지 않겠습니까!
차갑고 흰 눈 속에 있어 더 포근한 느낌도 듭니다.
명색이 매화인데 굳세게 우아하게 버텨내야 하겠지요.
기이하지 않습니까! 자연은 이렇게 오묘합니다. 눈이 녹아 얼어붙은 얼음이 꽃잎을 유리처럼 감쌌네요.
단단한 보호막을 친 것 같은데 이 꽃에도 언제 벌이 한 번 날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설중매 맞죠? 기이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주 볼 수 없는 진기한 것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값어치가 있지요.
눈 속에서도 꽃술의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밑에 있는 꽃은 다 피지도 못하고 눈에 덮였네요. 차라리 좀 더 기다렸다가 필 걸! 이제와 후회하면 무엇합니까! 그런대로 한 세상 사는 거지요. 밑에 있는 봉오리는 운이 좋은 건가요?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요.
시련이지만 혼자가 아니니 위안이 됩니다. 얘들아 춥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곧 햇볕이 날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이날 오후에는 해가 나서 저 눈들이 금세 녹아버렸답니다.
형제일까요? 애인일까요? 정답게 옆에서 손잡고 함께 눈을 맞았습니다. 어떻게든 꽃잎이 소중한 꽃술만큼은 지켜냈습니다. 과연 초여름에 큼직한 매실 열매를 딸 수 있을까요?
위의 꽃을 좀 더 넓게 보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전혀 다른 사진이 되었지요. 이렇게 보는 눈을 달리하면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꽃의 배치와 꽃봉오리의 위치, 그리고 흰 눈의 균형이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꽃 범벅 눈 범벅이 되었네요. 그래서 큰 또 하나의 설중매가 만들어졌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여기 또 아름다운 설중매가 있습니다. 무슨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그냥 보고 느끼며 즐기는 겁니다.
사진으로 이렇게 남겨 두었으니 가끔 꺼내 볼 수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허허 그냥 웃지요! 눈도 녹아내리고 있군요. 꽃잎이 투명하기까지 합니다. 힘들게 버텨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꽃봉오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건 무어라 해야 할까요? 노란 구슬이 칠 형제처럼 옹기종기 모였네요.
물방울도 얼어붙어 작은 구슬이 되었습니다.
봄이 왔는가 하여 집 지으러 나왔던 거미도 놀라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이것들도 이렇게 모아서 보니 하나의 꽃이 되었습니다. 아니라고요? 나는 그렇게 보인다고 우겨보렵니다. 그렇다고 시비는 걸지 마세요. 각자 느끼는 대로 보이고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이것을 한데 모아 찍었습니다.
조금 더 넓게 여유 있게 잡아 찍었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아마 그 주위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겠지요.
그래도 정말 아름다운 설중매입니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 몇 개 더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의 욕심이 이렇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남으면 나누면서 만족하며 사는 거지요!
행복이 뭐 어디 따로 있나요? 작은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작은 즐거움이야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넘쳐나지 않나요?
없다고요?
왜 없겠습니까. 욕심을 버리면 행복이 보입니다.
나는 이 사진을 찍을 때도 이 사진을 정리할 때도 또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당신도 여기 있는 사진을 보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산수유꽃도 눈을 맞았습니다. 이것 또한 색다른 풍경이지요. 설중 산수유꽃이라 부르렵니다.
눈이 꽃샘을 하는 날입니다.
이건 또 어떤가요? 나도 처음인데 저 꽃도 처음이랍니다. 처음은 남다른 의미를 갖지요. 처음처럼 이란 말이 있지요. 머릿속에 소주병을 그리는 사람은 또 뭡니까?
초심을 잃지 않으면 성공한다고 합니다.
처음처럼 입니다!
이 사진들은 모두가 접사용 링 플래시를 사용하고 접사렌즈를 써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요즘은 일반 디지털카메라도 접사 기능이 좋고 플래시가 내장된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걸 잘 이용하면 좋은 꽃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절대 장비 탓하지 말고 열심히 찍으면 좋은 사진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아름다운 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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