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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Oct 01. 2022

늙는다는 것

꿈을 포기하는 것

늙는다는 것          



                                                       노란 보석     

  어릴 적 내 꿈은 우주 과학자가 되는 거였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간이 달에 첫발을 디딘 쾌거가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은 달을 옥토끼가 떡방아 찍던 신화에서 과학을 통해 현실 세계로 돌려놓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세상 모두가 열광하는데 당연히 나도 끼어 있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가 없는가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학생이 꿈을 꾸는 데 무슨 제약이 있겠는가.

  나는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선배 형과 ‘폰 브라운 로켓 클럽’을 창설해서 전국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참고로 ‘폰 브라운’ 박사는 아폴로 11호 ‘새턴Ⅴ 로켓’을 개발한 과학자인데 그를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거였다.

  우리는 방과 후 과학 선생님의 지도하에 실험실에서 로켓을 연구하고 제작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로켓을 제작하고 연료로 사용할 여러 가지 화약을 제조해서 시험했다. 비록 30센티도 안 되는 작은 로켓이지만,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총알같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볼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나도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활동 자체가 정말 흥미진진하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허황한 꿈이었는지 알 수 있지만, 누구도 그게 이룰 수 없는 황당한 꿈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선생님들과 주위 분들은 격려해주고 후원까지 해 주셨으니까. 하지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꿈은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룰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의 꿈은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그 크기는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 꿈들은 현실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공부에 집중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도 해주었다. 어린이들이 큰 꿈을 꾸는 걸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할 이유이다. 차츰 철이 들면서, 세상을 알게 될수록 꿈은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러면서 작아져 갔다.      

  집안 형편상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공고에 진학하는 게 우선 목표였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용에 끌려가서 일하다가 감전되어 건강이 안 좋으셨다.  아들은 상고에 진학해서 안전한 은행원이 되기를 바라셨다. 특차로 인천에 있는 한독실업고등학교에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마지못해 서울에 있는 상고에 시험 치렀으나 그건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는데, 시급 81원에 23,000원이었다. 지금까지도 그걸 기억하는  건 내 생애 첫 월급이기 때문이다. 너무 어서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적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일해서 돈을 벌었다는 게 중요했다. 회사의 가장 말단 기능직 사원으로 시작했지만, 중도에 야간 대학에 진학해서 주경야독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삶을 살았다.

  이미 큰 꿈은 접었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게 목표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도전하는 삶이라 칭하고 싶다. 나는 항상 도전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니 힘든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다. 다행히 나는 정보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적성에 맞았다. 그래서 그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과가 나회사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라고 하면 믿을 수 있는가?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지 싶다.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 롭게 일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걸 시스템으로 구현해서 현에 적용하는 일에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에서 정년퇴직 후 일본 사세보 중공업에서 일하게 된 것도 나에겐 도전이었다.     


  꿈이 있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미래에 꿈을 이루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고 한다. 우리 젊었을 때는 비록 어렵기는 했지만,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다. 그렇게 된 데는 나도 일말의 책임이 있으니 젊은이들에게 미안할 따름다.      

  문제는 은퇴하니 내가 살아갈 환경이 180도 바뀐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지인들은 절대 사업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라 했다. 한마디로 위험하니 엉뚱한 꿈 꾸지 말라는 거였다. 사실 무언가 해 보겠다고 사업을 차렸다가 퇴직금 날리고 후회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에 당연하다 생각했다. 결국은 좋아하는 사진 열심히 찍고 이렇게 글을 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내가 50대만 되었어도 이렇게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늙는다는 건 이런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허약해지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하려고 하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인생 백세 시대에 60대는 한창일 수도 있는데, 이게 현실이 되었다.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도 주눅 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늙은이가 존경받기는커녕 조금만 처세를 잘못해도 꼰대 소릴 듣기 십상인 세상이니까. 집에서도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야 평안한 존재가 되었다. 회사 다닐 때도 눈치 보며 살았는데, 은퇴해서도 이것저것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 “너희는 늙지 않을 것 같냐?”라는 말이 입안에서 근질근질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쩌다 친구들과 모여서 여행이라도 가려고 하면 조금 높다는 산이나 많이 걷는 곳은 가지 말자고 하는 친구 제법 있다. 벌써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반대로 산악회에 열심히 쫓아다녀서 100대 명산 등정 기념패를 받은 친구도 있다.

  나는 카메라 가방 무게를 가능하면 줄이지 않으려고 한다. 작년에 설악산 갈 때도 그랬다. 내 가방을 들어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직은 그걸 줄이고 싶지 않다. 그건 70대 때 줄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80대에도 좋아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늙는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꿈을 포기하는 삶을 사는 이라 정의하고 싶다.      


  젊은이가 꿈이 없어 도전하지 않는다면 늙은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겠는가.

  나이를 먹어서 무리할 건 아니지만, 욕심도 좀 내고, 많이 움직이고, 깊게 생각하는 삶을 사는 태도가 좋지 않을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작은 꿈이라도 키워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그게 좀 더 젊게 사는 방법 아닐까 한다.

  그냥 이렇게 사라지기엔 너무 아쉬워서 말이다.

  그래 내 인생 내가 열심히 사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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