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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Oct 03. 2022

코로나 확진 1일 차

2022.10. 02

코로나 확진 1일 차


                             노란 보석

새벽 5시에 착륙해서 짐을 찾으니 예정대로 5시 30분이다.

8일간 베트남 사진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다.

아들에게 전화하니 곧 도착한단다. 

출국 때는 작은 딸이 차를 태워 줬는데 입국 때는 아들이 나왔다. 

가방도 크고 카메라 가방이 무거운데 다행한 일이다.

'내가 몸이 좀 안 좋으니 너 마스크부터 해라"

차를 타자 

"아버지 창문을 조금씩 열게요?"

그러지 않아도 혹여 아들에게 옮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러면 되었다 싶다.

앞창에서 바람이 들어와서 뒷 창으로 빠지니 문제없다 싶었다

아내가 몸이 안 좋은 관계로 PCR 검사를 하자고 했다.

새벽에 PCR 검사하는 곳이 있겠나 싶긴 한데, 전화로 몇 차례 작은 딸과 연락하더니 검단에 24시간 검사하는 병원이 있단다.

검사를 하니 결과는 6시간 안에 전화로 알려준다고 한다.

해외 입국자라 검사비는 받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기가 뭐해서 홍대입구 근처 호텔을 검색해도 방이 없단다. 

딸과 아들이 여기저기 검색해서 신촌에 있는 작은 호텔을 찾아냈다.

일단 여기서 결과 나오는 걸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설렁탕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해장국이 왔다. 

그런데 너무 맵다. 

입맛도 없는데 매워서 그냥 남겼다.

그 사이 검단 병원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PCR 검사 결과 코로나 양성이란다.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차츰 열이 나고 목 아픈 것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호텔방 침대에서 한참을 쓰러져 있었다.

딸에게 해장국이 매워서 못 먹었다고 하니 설렁탕을 시켰는데 잘 못 배달된 것 같다고 전화해 보겠단다.

설렁탕이 다시 왔다. 

그러나 입맛이 쓰고 목이 껄끄러워 반도 먹지 못했다.


딸이 이곳저곳을 수소문해서 일요일에도 대면진료가 가능한 신촌에 있는 병원을 찾아냈다.

그리고 동네 집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해 주었다.

게스트하우스로 쓰다가 코로나 사태로 고객이 없자 코로나 환자 격리 시설로 세 놓는 곳이다.

병원에 가니 환자가 엄청 많다.

대부분이 PCR 검사를 하러 온 것 같은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확진자이니 별도로 떨어진 소파에서 대기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의사 선생님과 별도 방에서 대면 진료를 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하셨다. 

내 욕심이겠지만, 확진자는 먼저 진료하면 병 옮길 기회도 줄고 약도 빨리 쓸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일반 진료가 끝나도록 기다리니 좀 지쳤다.

60세가 넘었으니 '팍스 로비드' 처방을 해야 하는데 본인 동의가 필요하단다. 

아직 검증이 덜 되어서 부작용이 우려된단다.

젊은이 대상으로만 임상 실험을 해서 노인들 부작용은 검증이 덜 되었단다.

임상은 젊은이로 하고 처방은 노인에게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급하게 출시해야 했는지 알만하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 위 혹은 신장이 안 좋은지 등을 물었다.

다음엔 복용하는 약을 모두 적으란다.

다행히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도 63% 개선 효과가 있다 하니 안 쓸 이유가 없다.

"까짓 거 안 좋으면 끊으면 되지...."

위장에 부담을 준다고도 했다.

아들이 "아버지 '팍스 로비드' 처방받으면 졸리기도 하고 메스껍고 힘든데 참고 다 드셔야 해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팍스 로비드'는 5일분 처방으로 아침저녁으로 구분해서 복용하는데 성분이 각기 다른 100~150 mmg 정제 3개다.

별도 2일 처방으로 해열제, 기침 가래 해소제, 항생제 등을 처방받았다.

2일 후에 결과를 보고 처방을 조정하겠단다.


그동안 마포구 보건소에서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두 통 걸려왔다.

인터넷에 등록하라는 것과 격리 장소를 물었다.

지금이야 경각심이 줄었지만, 초기에 확진 판정이 나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집 주차장에서 옷과 노트북, 기타 필요한 걸 차에 넣어 논 걸 받았다.

입주해 보니 방은 작아도 일주일 간 생활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 싶다.

필요한 건 먹을 것 말고는 다 갖춰져 있어서 다행이다.

딸에게 즐겨먹던 식당의 소머리 곰탕을 시켜달라 했더니 2인분이 왔다.

몸이 안 좋아서인지 입맛이 없어 반도 간신히 먹었다.

그리고 약을 서둘러 먹었다.

으슬으슬 춥고 목이 아파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침대에 쓰러져 끙끙 알았다.

근 10년간 독감 한 번 걸린 적이 없는데 힘이 든다.

그 사이 작은 딸이 물, 음료수, 과일, 햇반, 김, 컵라면 등을 배달시켰다.


힘들고 번잡한 하루였는데, 그래도 아이들이 챙겨주니 버텨냈다 싶다.

그래서 자식이 있어야 하는가 보다.


아프면 대신 아파 줄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함께 아파할 수는 있다.

그게 가족이니까!

                     


*그동안 코로나가 워낙 광범위하게 지나가서 별 관심을 못 받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경험이니 글로 남기기로 했다. 그동안 환경과 제도가 바뀌어 새로운 면도 있어 일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사항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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