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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Oct 04. 2022

코로나 확진 2일 차

2022.10.03

코로나 확진 2일 차


                                 노란 보석

밤이 이렇게 긴 걸 처음 알았다

자다 몇 번을 화장실로 가서 변기를 잡고 잘 나오지도 않는 가래를 뱉어냈다

열이 올라 너무 춥다.

사시나무 떨듯 떤다 했는 딱 그렇다

보일러 조정기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

병원 처방약을 먹고 좀 나아질까 기대했는데 별무소용인 것 같다.

견디다 못해 아침에 먹으라는 약을 새벽에 입에 털어 넣었다.

병으로 죽나 약으로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약이라도 써봐야 안 되겠나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은 곤두서고, 눈은 퀭한 것이 저게 나인가 싶다.

4차 접종까지 했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침을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으니 어제 딸이 보내준 설렁탕을 먹는데 이게 뭔 맛인가 싶다.

코로나 걸리면 후각부터 잃는다는데 평소엔 안 나던 소 냄새가 나서 너무도 역겹다.

죽을 수 없으니 억지로 반을 먹었다.

바나나 한 개와 두유 한 팩을 마시니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팍스 로비드'와 조제약을 털어 넣었는데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열은 점점 오르고 목구멍은 부지깽이에 불을 붙여 지진 듯 아프다

물도 넘기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다

책상 앞 노트북에 앉았지만 5분을 버티기 어려워 침대에 쓰러졌다

비몽사몽 간에 열은 오르고 목이 아프니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무파마 라면을 끓였다

목에 자극이 와서 넘기기 어렵지만 그래도 입맛에 맞는다

맵고 짜면 자극이 클까 봐 물을 조금 더 부었는데 국물 맛이 별로다

역시 라면은 레시피대로 끓일 일이다

식은땀을 많이 흘렸으니 샤워를 해야지 하면서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나는데....


베트남 여행 단톡방에 상황을 전하고 안부를 물었다

여행사 대표한테서 안부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들은 카톡으로 응원의 문자를 보내왔다

나 말고 또 한 사람이 걸렸다고 한다

여럿이 걸리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대표는 나와 같은 방을 썼는데도 괜찮고 옆에서 상당 시간을 함께한 작가님도 무탈하다니 다행이다

벌써 다른 사람들은 베트남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는데 나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욕심 낼 일도 아니고 순리를 따를 일이다.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어 딸에게 얘기했더니 2인분을 푸짐하게 배달시켰다

약간 과장해서 말해서 이 집은 콩나물보다 땡고추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다

땡고추 값이 내렸나? 콩나물국 시원한 맛을 땡고추로 낸다는 건 분명 하수다

맵게 하지 말라고 주문했는데 그랬다는 건 나에게 원한이 있을 수 없으니 

레시피가 엉망이거나 종업원이 새로 온 것 같다

땡고추를 골라내고 먹는데 국물이 매우니 아픈 목에 고춧물 붙는 격이다

밥을 먹어야 약을 먹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었지만 도대체가 개선되는 기미가 없다

열은 조금 낮아졌지만 목은 더 아프고 기침과 가래는 더 심해졌다

10분마다 화장실로 달려간 것 같다.

3일까지가 고비라고 하니 내일까지 참으면 될까 싶다

그러다가도 이러다 잘 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곤 했다

그래도 4차 접종까지 했고, '팍스 로비드' 처방까지 받았으니 큰 문제야 있겠나 생각도 들었다


살면서 가장 길었던 하루 아니었나 싶다.

때론 시간이 약인 경우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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