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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Oct 05. 2022

코로나 확진 3일 차

2002.10.04

코로나 확진 3일 차


                                             노란 보석

어제부터 장마처럼 비가 그리 내리더니 아침엔 갠 것 같다.

평소 같으면 5시엔 일어나는데 7시가 넘었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잠을 잔 건지, 밤을 새운 건지, 도대체가 어떻게 하룻밤을 보냈는지 정신이 없다.

이제는 목에 불 방망이를 박아 넣은 것 같다.

3일 차가 제일 아프다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어서 일어나서 아침 먹고, 샤워하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마음은 급한데 몸은 다시 이불속이다.

잠시라고 생각했는데 깨어보니 8시 반이다.

오늘 아침은 어제 온 매운 콩나물국에 식은 밥이다.

땡고추를 골라내고 전자레인지에 덥혔는데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맨밥에 맹물을 부어먹었다.

그나마 김이 있어 다행이다.

삶은 계란과 두유, 바나나로 부족한 양은 채우고 약을 먹은 후 샤워를 했다.

변기를 비롯해 화장실 전체를 청소했다.

오랜 기간 외지에서 혼자 생활한 관계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

음식 솜씨는 별로라 내세울 게 못되지만....

면도까지 하고 나니 그래도 생기가 돈다.

혼자 이틀을 살았을 뿐인데 쓰레기 양이 엄청나다.

제일 많은 것이 플라스틱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먹지 못해 버린 것이 엄청 많다.

옷 가지와 생활용품 필요한 걸 얘기했더니 집 주차장에 챙겨 놓았다고 한다.

병원 갈 때 집에 가서 차를 타고 가야 하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미국에 사는 큰딸에게서 안부를 묻는 카톡이 왔다.

아들 딸 삼 남매가 모두 올해 코로나에 걸렸었다.

서로 이런저런 조언도 하고 응원도 해주니 위안이 된다.

형이 어머니 산소에 표지석 세우는 일과 탈상으로 백일 제사 올리는 걸 협의하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코로나 걸렸다 하니 한 걱정을 한다.

한 50일 전에 형이 걸렸었는데 목이 그렇게 아프다고 했었다.

안 아파본 사람은 모른다.

난 그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긴 남 손가락 부러진 것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니까.

그런데 형은 나를 대하는 말투가 다르다.

정말 걱정하는 말투다.

50일 전에 어머니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드렸다.

어머니도 요양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렸다 나으셨지만, 

결국은 후유증인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사투를 하실 때 자식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절망이었다.

결국은 모두 걸리는 것 같다.

몸이 제일 약한 아내만 잘 피하고 있는데 걱정이다.


병원에 가니 오늘은 환자가 별로 없다.

20대 청년이 확진자 소파에 앉아 있다.

그 친구를 먼저 진료하고 이어서 나를 진료했다.

목 상태, 목소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나이에 비해 나쁘지 않단다.

목이 많이 아프다 하니 저 젊은 친구도 그리 아프다는 데 어찌 안 아프겠냐고 하신다.

3일 차가 제일 아프니 이 고비만 넘기면 차츰 좋아질 거라 하시며 위로도 해 주신다.

단, 노인들은 5일째에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신다.

이번엔 목 가글액을 처방할 것이니 아플 때마다 1분간 하라고 하신다.

조제약을 이틀 분 받았으니 5일 차에 병원에 다시 가야 한다.


맵지 않은 음식으로 시켜달라 딸에게 말하니 갈비탕 2개와 생선 구이 1개로 세 끼니 밥이 왔다.

이 집 반찬은 마음에 드는데 메인인 갈비탕은 영 아니다.

생강과 마늘을 너무 많이 넣어서 수정과 향도 나고 알키 한 감이 너무 강하다.

외국산 갈비 들여다 잡내 제거하려 생강과 마늘을 많이 넣은 것 같은데 하수다.

내 입맛이 예민해서일까? 

코로나 걸리면 얼마간 미각과 후각을 잃는다는데 난 전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맛은 아니다.

우리 고유의 음식은 원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자극적으로 변했는지 많이 아쉽다.

나는 사진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갈 일이 많다.

사진 촬영 후 전통 음식집을 찾아 맛보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허름한 집이라도 담백하게 나오는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남도 음식은 단연 으뜸이라고 본다.

내가 볼 때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식도락 고수는 아니다.

겨우 반을 억지로 먹었다.

정신이 혼미하니 어쩌다 글이 맛집 탐방 얘기 쪽으로 흘러버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전화와 카톡이 왔다.

일행 중 한 분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데.... 세상 다 얻어도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는 걸 왜 모르시나요?'

라고 하며 자신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고 했다

"절대 무리하지 말자. 최우선은 자신의 건강이고, 다음은 가족들이고, 그다음이 취미 생활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게 진리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걸 지키기 어려운 걸까.


오후 늦게부터 아픈 강도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제일 아팠을 때가 10이었다면 7 정도로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매 시간이 아파서 괴롭다.

계속 가래는 나오고 간간이 나오는 기침 때는 목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기침 때는 목에서는 괴성이 터져 나온다.

거기에 바이러스가 떼로 몰려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열은 확연히 내린 것 같다.

열이 내린다는 것은 몸이 바이러스를 이기고 제압해간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리라.

희망의 내일이 기다려지나 당장 현실이 괴롭고 하루가 48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다.

가글을 하고, 화장실 달려가고, 잠시 버티고, 다시 가글 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시간을 보냈다.

나는 '팍스 로비드'라도 먹었는데, 치료제가 없던 초창기 환자들은 얼마나 아프고 공포스러웠을까?

처음 겪어보는 격렬한 아픔과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 같다.


가장 힘들다는 3일 차,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서서히 죽음의 긴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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