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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Nov 12. 2022

시제 모임

시제 모임




                                                                                                     노란 보석

결실의 계절 가을이 끝나가는 11월이다. 우리는 한 해 농사일이 끝나면 추수한 곡식으로 떡과 술을 빚고 각종 고기와 과일을 준비하여 조상께 시제를 지낸다. 다 알다시피 시제란 제사에서 제외된, 고조할아버지의 윗대를 기리는 행사다. 조상의 공덕을 기리고 가문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이다.


어제는 시제라 아들과 함께 목천에 있는 선산에 다녀왔다. 우리 집안은 전에는 음력으로 시월 둘째 주를 계산하여 날짜를 잡았으나 이제는 11월 첫째나 둘째 토요일 중 택일하여 치른다.


이제까지 아들은 시제는 시간 날 때만 가끔 참석했었다. 바쁘기도 한 데다 굳이 참석하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번 11월 5일 토요일이 시제인데 바쁘지 않으면 참석하는 게 좋겠다라고 넌지시 말했더니 “아버지 저도 참석할 게요라고 흔쾌히 대답해서 아침 일찍 함께 차를 타고 출발했다. 아들은 3일 동안 울산, 여수, 통영에 출장을 다녀와서 몹시 피곤하다고 했다. 피곤하면 갈 동안만이라도 눈을 좀 붙여라.하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일찍 출발했지만 차는 강변북로부터 밀리기 시작하면서 내비게이션도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국도 우회도로로 안내했다. 의자를 뒤로 넘기고 눕다시피 한 아들은 안대까지 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저리 피곤한 걸 괜히 데려가나 생각이 들면서도 말없이 나서 준 아들이 대견하다. 내비게이션은 생각지도 않게 고향집 앞 길을 통해서 길을 안내했다. 저 멀리 우리 동네가 보이고 우리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우리 집이 아니라 형님 집이다. 언제나 어머니가 계시며 반갑게 맞아 주시던 정다운 집. 


어머니께서 8월 말에 하느님께 가실 때 뒷동산에 계시던 아버님을 이장하여 선산에 합장하여 모셨기에 오늘 시제길은 남다른 감정이 있었다.

선산에 도착하니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총무를 맡고 있는 사촌 동생이 먼저 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들과 함께 제기를 닦고 차례 준비를 도왔다. 잠시 후 천안, 인천, 안양, 안성 등지에서 가족들이 모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인천에 계시는 다섯째 작은 어머니께서도 노구를 이끌고 오셨다.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이곳 목천까지 오셔서 깜짝 놀랐다. 아버님 형제분들은 5형제인데 모두 작고하시고 작은 어머니 한 분만 남으셨다. 내가 고등학교 3년을 작은 어머니 댁에서 다녔기에 각별한 분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시골에서 어찌할까 난감할 때 불러 주셔서 고등학교를 인천에서 다닐 수 있었다.


시제를 지내기 전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지방은 집안의 장자인 사촌 큰 형님이 써서 오셨는데, 지방을 쓸 때 누가 주제자가 되는가를 정해서 몇 대조 조상인가를 쓰게 된다. 통례에 따라 아버님 대를 주제자로 해서 써 왔다. 그런데 아버지대 어른들께서 한 분도 참석을 안 하신 것이었다. 예를 들어 9대조를 10대 조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이런 산중에서 갑자기 어찌한 단 말인가. 몇 분 안 계시는 어른들인데 아들들을 보내시고 참석을 안 하신 것이었다. 난감한 상황에서 막내 아저씨 한 분이 늦게 오셔서 간단히 해결되었다.


1년 사이 참석자 층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제 우리 대가 주축을 이루고 전에는 몇 명 없었던 아들대의 젊은이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보다 세 살 위의 사촌 형님도 돌아가셨다. 1년 사이 매년 시제상을 차리시던 그 형수님도 건강이 안 좋아 참석을 못하셨고, 아저씨 한 분도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을 못하셨다. 거기 와서 알았지만 마포 형님도 어제 암 수술을 받으셨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사실 시제나 한식이 아니면 집안사람이 모두 모이기는 어렵다. 이럴 때 서로 안부도 묻고 젊은 애들은 얼굴도 익히고 통성명도 하게 된다. 같은 또래의 나이라도 항렬이 달라서 아저씨와 조카 사이가 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런 기회에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창원 황 씨 병사공파 21 세손, 가선대부 동중추 부사 xx할아버지의 9 세손, 부 황창성, 모 유순자의 2남 황규옥. 족보상 나는 이렇게 정의된다


8월 말에 어머니를 하느님 품에 보내 드렸다. 어제 가보니 형님이 표지석을 만들어 세우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함자, 그리고 본명을 전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우리 4남매 이름과 배우자들의 이름을 맨 윗줄에, 그 밑에 아들 딸들의 이름과 배우자들의 이름, 그 밑에 손주들의 이름과 배우자들의 이름을 새겼다. 양 옆에 생년월일과 별세하신 날을 새겼으니 우리 집 가계보다. 수고하셨다며 여동생들과 내가 준비한 봉투를 내놓으니 고맙다며 그럼 이 돈은 어머니 탈상 때 식사 비용으로 쓰자고 말씀하셨다.


12월 4일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100일이라 탈상 모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린 것도 아니니 탈상이라 하기도 뭐하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기리면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자식들이 화목하게 잘 지낸다는 걸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어쩌면 보여드린다는 것도 의미 없는지 모르지만, 형제들끼리 화목하게 지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니까. 


어제 시제에서 가장 심각하게 논의한 것은 자손들이 너무 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손주대에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기게 된 집이 많다는 거였다. 종중에서 결혼과 출산 장려금을 주고 학비도 지원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인구 절벽 현상이 우리 집안에도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작년부터는 시제 음식도 모두 전문 업체에 주문해서 부담을 줄이고 상 차리고 정리하는 일도 남자들이 나서서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여자분들은 교통비를 별도로 챙겨드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가족이 자발적으로 참석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조카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는 시제나 한식에 너희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전처럼 시간 나면 오고 바쁘면 안 오는 자리가 아니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해야 하는 자리다."라고 하며 세대교체가 되었음을 주지시켰다.


돌아오는 길은 더 밀렸다. 시제 갔다 오는 차량과 마지막 가을 단풍놀이를 다녀오는 차량이 한데 몰려서 아수라장이었다. 목천에서 서울 가는데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나는 음복주를 한잔 한 관계로 아들이 운전하기로 했다. 길은 예상보다 더 밀려서 신경이 곤두서고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모처럼 나온 길이 이렇게 힘든데 다음에 오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자그마치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시제라는 행사가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또 먼 윗대 조상을 기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인데. 이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전통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형식은 간편하게 바꾸더라도 가족이 함께 모인다는 의미는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튼튼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도 없다. 

하물며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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