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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Nov 09. 2022

모닝빵

 모닝빵

 

                                                                                                                                                                                                          노란 보석

 

나는 오늘 아침에도 모닝빵을 먹었다. 모닝빵을 먹을 때마다 얼마 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게 된다.

 

“어머니가 빵을 드시고 싶다는데 어떤 빵을 사다 드리면 좋을까?” 요양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빵을 드시고 싶다고 해서 베이커리에 가면서 안부도 전할 겸 수원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었다.

“오빠, 엄마는 모닝빵을 좋아하셔. 그걸 몰랐어?”

“모닝빵을 좋아하신다고?”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 나이 되도록 어머니가 어떤 빵을 좋아하시는지도 모르다니…. 그래서 아들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닝빵을 어머니도 좋아하시다니 놀랍다.

 

나는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에는 외지로 나가 살아서 어머니가 어떤 빵을 좋아하시는지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더구나 내 어린 시절인 60~70년대 시골에는 모닝빵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수원 큰딸 집, 창원 작은딸 집을 거쳐 거제 우리 집에도 오셔서 겨울을 보내시고 봄이 되면 고향 안성으로 돌아가셨었다. 길어야 한 달도 못 머물다 가셨는데 아쉽게도 직장 생활하느라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연세가 드시면서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내원할 일이 많으셨다. 수원에 있는 큰딸이 도맡아 병시중을 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머니가 모닝빵을 좋아하는 것도 알 게 되었을 거다. 아니 딸이라서 서로 살갑게 대해서 알게 되었지 싶다.

 

회사 일로 외국 출장을 가면 조식은 통상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게 된다. 대부분 간단한 뷔페식으로 제공는데 갓 구워 낸 빵 냄새가 미각을 자극하고 식욕을 돋운다. 파스 티르와 모닝빵이 주로 나오고 토스트용 빵을 구워 먹을 수 있다. 나는 모닝빵을 주로 선택했는데, 손에 들고 쪼개어 그 사이에 버터와 딸기 잼을 발라 먹는다. 거기에 뜨겁고 구수한 커피를 곁들여 먹으면 미각과 후각으로 느끼는 맛과 향만큼 행복하다. 물론 오렌지 주스나 우유 등도 함께 먹었지만, 어울리는 조합은 구수한 블랙커피다.

 

갓 익힌 따스한 모닝빵 아기 속살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빵에서 이스트 특유의 향이 올라와 코끝에 퍼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모닝빵은 달지도 않고, 앙꼬도 없으며 기름기도 많지 않아 담백하다. 그래서 어머니 내 입에도 잘 맞는 것 같다.

 

또, 이런저런 기회에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먹게 되면 수프와 모닝빵이 먼저 나온다. 나는 버터도 좋아하지만, 빵을 잘게 떼어서 갈색 발사믹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린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는 걸 즐긴다. 부드러운 수프와 모닝빵은 식욕을 돋우고 위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음에 샐러드로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 받아들이는데 부담이 없게 만든다. 식사를 시작할 때 상큼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가볍게 자극하여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흔한 레스토랑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기억이 한 번도 없으니 나 자신이 부끄럽고 후회된다. 내가 그 점을 인식했을 때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라 때가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정말 아쉽고 후회다. 살아 계실 때 잘하라고 했는데,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을 때 잘했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집에서 시오리(6KM) 떨어진 송전 중학교에 다녔다. 차비가 15원인가 했는데 그 돈이 없어 걸어 다녔다. 물론 형님도 걸어서 다녔고  꽤나 많은 친구들이 걸어서 다녔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시간 이상 걸렸다. 공부가 끝나면 교문을 나와 버스 정거장을 지나오게 되는데 그 옆에 호빵 집이 있었다. 이맘때 겨울이 되면 펫 분이 부르는 징글벨 캐럴이 길가에 울려 퍼졌다. 솥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칙칙하며 올라와 빵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버스비가 없어 걸어 다니는 처지이니 호빵을 사 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부잣집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게 부러웠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호빵을 보거나 징글벨 캐럴이 들리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모닝빵의 이스트 향과 호빵의 이스트 향이 비슷하니 모닝빵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없는 살림에 눈치가 보여 쉽게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 “엄마 나 빵 먹고 싶어. 빵 좀 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밀가루에 당원과 막걸리를 넣고 이스트를 섞어 반죽한 후 따끈한 부뚜막에서 숙성시키셨다. 성당에서 받아온 미제 분유가 있으면 그것도 함께 넣어 반죽했다. 시간이 지나면 반죽은 부풀어 오르고 그걸 솥에 넣고 쪘다. 빵에서 막걸리 냄새가 나며 구수한 맛이 있었다. 여름엔 보리등겨를 개어 만든 보리떡을 쪄 주시기도 했고, 감자를 삭혀서 만든 전분으로 감자떡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감자떡에는 해콩을 까서 넣기도 하고 녹두를 물에 불려 갈아서 속을 해서 넣기도 했다.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보리떡은 구수하긴 하지만 꺼칠꺼칠해서 식감이 별로 좋지 못했고, 감자를 삭힌다는 건 썩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시큼한 맛이 배어 있어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준다면 누가 먹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거라도 감지덕지였다.

 

요즘 우리 아침 빵을 주로 먹는다. 손주들 때문에 아침 시간이 바쁘니 간편해서 좋고 영양도 골고루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모닝빵과 토스트용 호밀 빵이 주이고 과일 잼과 버터, 올리브 오일이 있다. , 압력밥솥에서 삶아낸 계란도 있다. 사과는 거의 빠지지 않고 토마토, 포도, 복숭아, 단감 등 계절 과일에서 한두 가지 과일이 준비된다. 우유나 두유를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주로 두유를 마신다. 거기에 나는 커피 머신에서 원두를 갓 갈아서 뽑아낸 진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모닝빵 먹는 걸 즐긴다.

언제부터 인가 아침에 모닝빵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새 둥근 모닝빵이 어머니 얼굴이 되어 환하게 웃고 계신다. 이렇게 모닝빵을 먹는 아침은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다.

내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모닝빵은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무언가로부터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 맛있는 인생이 될 것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닝빵 향기와 커피 향이 행복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오늘,

어머니도 이 식탁에 함께 앉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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