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나갑니다
노란 보석
그녀가 떠나갑니다
이제 냉정하게 돌아서서 가겠다 하네요
아쉽지만 나도 잡지 않으렵니다
만날 때부터 이 이별은 예정되었으니까요
만난 지 일 년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고
행복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많은 꿈을 꾸었고 희망에 들떴었지요
하지만 기대처럼 되지 못했습니다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큽니다
모든 게 그녀 탓이라 하진 않겠습니다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실감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걸 바랐던 것도 아니었는 데
그녀를 만난 후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의 초점이 흐려지는 내 어머니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사촌 형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언제나 천사 같았던 사촌 누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오랜 해외 파견을 끝내고 행복할 일만 남았던 멋남 작은 처남
둘도 없는 고교 친구는 도 닦고 해탈했나 싶었는데
그리고 친구의 부모님들
지인은 아니지만 핼러윈 희생자들까지
천국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만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나도 코로나를 열심히 피해 다녔으나 결국은 마수에 걸려 격리되었지요
이 악마는 사랑하는 자식들은 물론 어린 손자들까지 무자비하게 공격했어요
아직도 주위를 맴도는 악한 기운을 느끼며 불안 속에 삽니다
그녀와 함께 살아보니 검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면이 있습니다
다시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와 함께 살면서 아쉬웠던 일은
소득은 한 푼도 늘지 않았는데
종부세니 무슨 세니 해서 세금폭탄이 쏟아지는 겁니다
허리띠 구멍을 새로 뚫으려니 한숨만 나옵니다
그렇다고 금고도 아닌 작은 지갑에 열쇠를 채울 수도 없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 미래가 불안합니다
"늙는다는 건 포기하는 게 늘어가는 것"
어느새 나도 소극적이 되고 몸을 사리게 되니
자꾸 나이테를 세게 됩니다
그녀를 만나고부터 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공식적으로 한 줄 이상 빼주겠다는데
그럼 덜 늙게 되는 건가요
어린 손주 재롱에 근심 걱정 다 잊게 되지만
훌쩍 큰 대견한 모습을 보며
큰 만큼 늙었을 나를 되돌아봅니다
해시계는 날 흐리다고 쉬는 일이 없으니
그래도 이번 건진 결과 별다른 녹슨 곳 없이
신체는 12살이나 젊다 하니 어깨가 조금 펴집니다
있을 때 잘하라고 했으니
무리하지 말고 근육부터 키워야겠지요
한동안 일이 없어 실망도 했지만
덕분에 좋아하는 사진도 실컷 찍을 수 있었고
스치는 바람결에 꽃향기도 맡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쉽다면 아름다운 꽃은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한다는 거지요
잠시 멈췄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라고
새로운 재미를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를 만나고 행복한 일도 있었네요
오랫동안 꿈꾸던 베트남 여행도 다녀왔으니
이 또한 너그러운 그녀 덕분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일하는 게 제일 행복한 데
다행히 내 능력을 다시 펼쳐 보여줄 컨설팅 기회를 잡았지요
그녀가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 중 하나입니다
내 이름을 걸고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일만큼은 최고라는 자존감은 지키렵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붙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물론 그녀도 더 이상 머물지 않을 테지만
이제 오늘 저 해가 서쪽으로 지면 그녀도 떠나갑니다
아무리 애증이 많다 해도
마지막 이별의 인사는 해야 하겠지요
"잘 가거라 임인아~~"
내 살아 너를 다시 만날 일은 없겠다만
이것이 삶이요 인연인 것을
나는 내일 아침 새로운 연인을 만나러 덕유산으로 갑니다
거기에 토끼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산다고 해서
설마 토끼가 호랑이만큼 무서울까요
참 여러분도 호랑이와 사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물려 죽지 않고 살아 낸 여러분이 승자입니다
저기 행운이 구름처럼 몰려옵니다
집안에 넘치도록 잡으세요
토끼처럼 아름다운 연인을 만나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임인년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