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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y 15. 2023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

  폰티스 대학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다채로운 학교 공간이었다. 최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폰티스 대학 내 여러 공간을 둘러보며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꼈다. 공간의 이모저모를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이 목소리자부심이 묻어났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공간, 3D 프린팅과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메이커스페이스 공간, 랩시설을 비롯하여 강의실, 작업실, 회의실 등 개인이나 그룹별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잘 꾸며진 여러 공간들을 둘러보니 폰티스 대학교에서 공간 조성에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간마다 색감이 달랐고, 분위기가 새로웠다. 특히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 탁 트인 개방감이 좋았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게 공간도 곳곳에 잘 꾸며져 있었다.

  "저기 보이는 의자와 테이블 세트가 하나에 얼마인지 아세요?"

  최 교수님은 휴게 공간의 아주 두꺼운 원목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 세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한 이백 만원? 아니, 삼백만 원이요?"

  "저 테이블과 의자 세트 하나에 팔백만 원이에요. 대단하죠? 우리 학교에서 공간 조성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지 알겠죠? 휴게 공간 의자 세트 하나에 이만큼 많은 예산을 투자하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우와, 의자 세트 하나에 팔백만 원씩이나!! 그렇다면 이 휴게 공간 하나를 꾸미는 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든 것일까. 공간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에서 공간의 가치와 중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디자인이 독특하고도 예쁜 조명과 의자, 테이블 등 공간을 꾸며 놓은 요소요소마다 오롯이 담겨 있는 가치가 전달되었다. 폰티스 대학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하루 종일 이 안에서 생활해도 전혀 불편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폰티스 대학의 다양한 공간들, 아쉽게도 팔백만원짜리 의자 세트 사진을 못 찍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학교 공간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다. 네모난 교실에 칠판, 책상과 의자, 사물함이 획일적으로 놓여 있다. 복도의 공용 공간에도 테이블이나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을 뿐,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거의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축가 유현주 교수는 세바시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학교 건축이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어요. 80년대나 지금이나 학교 건축은 변한 게 없어요. 그리고,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나 학교 공간은 모두 다 똑같아요. 학교 건축물이 어느 곳과 같은지 아세요? 교도소와 구조가 똑같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양계장의 닭과 다를 게 없어요. 이런 획일화된 학교 공간에서 12년 동안 공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획일화된 사회는 다양성이 없고, 가치를 정량화하죠. 집값, 연봉, 성적 등으로요. 그러니 나만의 가치는 상실되고,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윈스턴 처칠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라고요. 공간이 사람을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폰티스대학처럼 공간 조성에 보다 면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최근 몇 년 동안 학교공간 재구조화 사업을 하는 학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뚜렷한 특색을 갖추지 못한 채 예술공감터와 같은 일부 공간을 만들어 놓는 수준에 불과했다. 유현준 교수는 학교 건축물을 새롭게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교육청 관계자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교수님이 설계하는 학교 건물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게 공립학교에서 어느 한 학교만 특별하게 공간을 잘 갖추어 놓으면 그것도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요. 그런 건 사립학교에서나 가능해요."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데 예산이나 제도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이런 획일적인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 더 어렵고 고단한 과정일 것이다. 

  

  공간이 주는 영향력은 단지 눈에 보이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며, 그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본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미국의 혁신 기업은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생겼다고 한다. 유현준 교수는 그 이유를 공간과 연결 지어 말했다. 미국 서부는 지진 때문에 낮은 건물이 많고, 그런 건물에서 자란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하여 친구도 많고, 창의력도 더 높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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