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버스가 되다

힐링 카풀팀 변천사, 세 번째 이야기

by 은향

지난 해에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우리 부서의 A 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폐차를 하게 되었다. A 샘 집에서 학교까지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려면 버스를 한 번 환승해야 하고, 통근시간이 족히 2시간은 걸린다. 그마저도 배차 간격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카풀팀 여객 대표님들께 A 샘이 새 차를 살 때까지 출퇴근을 함께 해도 괜찮은지 제안했는데, 흔쾌히 '오브 코올스~!'로 답해주셨다. 이제 우리 카풀차는 30대 후반의 A 샘까지 합류하여 속이 꽉 찬 햄버거같이 아주 풍성해졌다. 시작은 A 샘이 차를 살 때까지 였지만, 우리 카풀팀의 매력에 빠진 A 샘은 올해 다른 학교로 가기 전까지 1년 간 우리와 함께 했다.



뒤늦게 합류한 A 샘은 영양 샘과 달리 라디오 채널 변경부터, 개인용 담요 준비까지 우리 카풀팀의 룰(?)에 대해 낯선 반응을 보였다.


A 샘: 앗! 아침마다 영어를 들으세요?

나: 7시 20분부터 20분간은 들어요. 샘도 해외 여행 많이 다니니까 들어두면 딱 좋아요. 일주일에 한 번은 여행지에서 유용한 회화를 알려주거든요.

A 샘: 아, 네...

보건 샘: 왜요, A 샘 영어 듣기 불편하신가요?

A 샘: 아니, 불편하다기보다는 아침에 영어 회화 듣고 출근하는 게 살짝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거예요.

영양 샘: 근데, 이거 틀어만 놓고 안 듣는 날이 더 많아요. 호호... 이거 그냥 BGM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나: 우리가 할 말이 많아서 이십 분을 못 참을 때가 더 많으니 부담 갖지는 말아요.

A 샘: 네에, 알겠습니다.

영양 샘: 우리 조금 있다가는 클래식 음악 듣는데, 클래식 음악은 괜찮으세요?

A 샘: 클래식이요? 전 클래식 들으면 잠 오는데요...

나: 그것도 이십분만 참아요. 8시부터는 개그맨 김영철이 진행하는 채널로 바꿔서 김영철의 하이텐션에 잠이 확 깰테니까요.

보건 샘: 듣다보면 다 적응될테니 염려 말아요.

A 샘: 저도 출근하면서 김영철이 진행하는 라디오는 가끔씩 들었어서 괜찮아요.


A 샘과 함께 하면서 우리 카풀팀은 아침 저녁으로 늘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다. 가족 이야기, 반 아이들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 A 샘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주도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라디오 볼륨은 줄어들었고, 라디오 소리는 우리 대화의 BGM이 되어 주었을 뿐이었다.


"뭐, 우리가 영어 교사도 아니고 뭐 맨날 영어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죠. 영어는 각자 집에 가서 집중해서 공부하는 걸로~"



A 샘과의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는 우리 카풀차에 늘 웃음을 주었다. 작년에 보건 샘과 퇴근하다가 뒷차가 박는 바람에 몇 달 허리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이상하게 그 이후로는 허리가 자주 아팠다. 나이탓이거나 자세가 바르지 못한 이유도 어느 정도 있을테지만, 암튼 허리가 아파서 서 있기도 앉기도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나: 오늘 비 오려나 봐요. 또 허리가 아파요.

A 샘: 할머니도 아니고, 벌써부터 그러시면 어째요.

나: 지난 사고 이후로 허리가 계속 아파요. 희한하게 허리 아픈 날이면 비가 오더라구요.

영양 샘: 한의원 치료 받으셨는데도 계속 그러신가 봐요. 보건 샘도 그러세요?

보건 샘: 나야 뭐, 이제 늙어서 허리 아픈거야 당연히 그려려니 하죠.

A 샘: 도수 치료를 받아보세요. 저도 3월 교통사고 후로 지금도 일 주일에 한 번씩 계속 받고 있는데 아주 좋아요.

나: 요즘 도수 치료 많이들 하던데, 그게 물리치료랑 많이 달라요?

A 샘: 물리치료는 기계로 하잖아요. 도수 치료는 사람이 손으로 뼈를 하나하나 다 만지면서 관절을 맞추고 그러거든요. 어떤 때는 우두두둑, 소리가 나기도 해요. 그래서 엄청 시원하구요.

영양 샘: 안 아파요?

A 샘: 아픈 것보다는 처음엔 좀 민망했죠. 여기가 신도시이고 젊은 여자 손님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도수 치료사들이 얼굴보고 뽑았나 싶을 만큼 다 잘생긴 젊은 남자들이에요. 치료하다보면 허벅지나 허리, 엉덩이 뭐 그런 데를 만지게 되니까 처음엔 가만히 있기도 민망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나: 헉... 도수 치료가 그렇게 몸을 막 터치하는 거였군요...

A 샘: 흐흥, 남친도 안 만져 본 내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젊은 남자가 주무르는게 처음엔 불편했는데, 이제는 즐기기로 했어요.

영양 샘: 하하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뭐 그런 건가요.

A 샘: 어디까지 치료받는 거니깐요. 호호홍. 그리고, 어찌나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지 치료 받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아주 힐링이 된다니까요.

보건 샘: 그 웃음이 어째...

나: 내가 다닌 한의원에는 대부분 아줌마 간호사고 환자들도 다 예순 넘은 어르신들이던데, 젊은 사람들은 한의원 안 가고 도수 치료 받나 보네요.

A 샘: 제가 다니는 데서 같이 한 번 도수 치료 받아 보실래요?

나: 아, 아니요. 나는 아직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깔 자신이 없네요.

보건 샘: 왜요, 그냥 한 번 가 봐요. 샘도 도수치료 받으면서 힐링 좀 해봐요.



우리 차에는 사람 4명만큼이나 싣고 다니는 짐도 꽤 많다. 학교에서 일을 처리하기엔 늘 시간이 부족하기에 수업자료와 처리할 문서, 노트북 등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퇴근한다. 그러다보니 늘 트렁크까지 두둑해진다. 어떤 때는 엑셀을 밟아도 차가 재빠르게 잘 안 나가고 굼뜨게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날 출근해서 주차를 한 후 우리 차에서 한 사람이 내리고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계속 내리는 것을 보고, 충청도 출신의 친한 동갑내기 남자 선생님을 마주쳤다.


충청도 샘: 아니, 그 차는 뭐여? 버스여~?

나: 응. 버스여~ 여기 다 여객 대표님들이야.

영양 샘: 저는 **여객 대표이고, 옆에는 **여객 대표님이세요. 호호홍...

충청도 샘: 내가 20년 넘게 학교 출근하면서 이런 만원 버스는 또 첨 봤네.


만원 버스처럼 꽉 차고 복잡해도 좋다. 차 안에 짐을 둘 수 없어 트렁크를 매번 열었다 닫았다 해도 상관없다. 이렇게 즐겁게 아침 저녁으로 함께 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웃을 수 있는 만원 버스라면 얼마든지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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