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Jun 26. 2023

4세대 나이스로 전환이 꼭 필요했던 걸까.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매번 현장의 교사들만 힘들지.

  6월은 중고등학교에서 중요한 일이 몰려있는 달이다. 7월 학기말을 앞두고 특히 평가 관련한 업무가 교사들을 예민하게 할 만큼 정신없이 몰아치는 때이다. 수행평가 실시 및 점수  입력, 학생 확인, 2차 지필평가 출제 및 검토 등 평가에 민감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잡음이 들리지 않기 위해 교사들은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바쁘지만, 수행평가 채점은 재검에 삼검, 필요한 경우 교차 검토까지 한다. 지필평가 역시 문항의 오류가 없기 위해 공식적인 문항검토 시간 외에도 교과 협의를 서너 번은 족히 더 한다. 두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에는 양쪽 문항 출제와 검토, 협의 등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4세대 나이스로 전환을 한다고 하여 6/15(목) 18시부터 6/21(수) 8시까지 기존의 나이스가 중단되었다. 수행평가 점수 입력 및 출력, 지필평가 문항정보표 입력 및 출력 등의 업무를 비롯한 복무 상신 등 대부분의 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다. 6/21(수)은 4세대 나이스 개통일이었지만, 접속 자체가 안 되었다. 나이스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니 학교 현장은 그야말로 멘붕. 한 달 뒤면 방학인데 굳이 정신없이 바쁜 이 시점에서 기존 나이스를 중단하면서까지 4세대 나이스로의 전환이 필요할 만큼 시급했을까 의문이 든다.


  4세대 나이스로의 전환은 3년 전부터 2824억 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진행한 사업이라는데, 그 막대한 예산을 들여놓고 도대체 어떤 점이 지능형으로 개선되고 편리해졌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불편한 점만 느껴진다. 우선, 나이스 접속 자체가 안 되거나 접속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기안을 상신하는데, 상신 버튼을 몇 차례나 눌러도 되지 않다가 겨우겨우 기안을 올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페이스가 한 화면에 내용이 보이지 않아 화면 축소를 해서 작은 글씨를 힘들게 보거나 스크롤을 매번 불편하게 이동하면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시험지 분철 및 포장을 하러 평가관리실로 갔더니 시험지 포장을 하면서 4세대 나이스로 인한 불편함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담임들은 아이들 출결 사항을 입력하는데 저장 버튼이 사라져서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처음에는 지능형 나이스라서 자동 저장 되는 건가 싶었는데, 웬걸요. 출결 마감을 해야만 저장이 되더라고요. 만약에 3교시에 한 학생이 조퇴를 해서 출결 입력을 한다면, 그때그때 반드시 마감까지 눌러야 저장이 돼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5교시에 조퇴를 하면, 기존의 마감을 풀고 다시 입력하고 다시 마감을 해야만 하더라고요."

  "지능형 나이스가 아니라 완전 퇴보형 나이스로 바꿔놨네요."

  "그러니까요. 28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고작 이 따위로 해 놨나..."


  한쪽에서는 분철하는 선생님들 옆에서 업무를 보던 학력평가부장님이 평가부 계원 선생님에게 문항정보표 관련하여 업무 처리에 대해 논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샘, 문항정보표 출력이 아무래도 한 동안 힘들 것 같아요. 오늘 교장 선생님 결재해야 하니까 문항정보표 수정 제출 못한 교과목은 별도 양식을 제공해서 문항정보표를 다시 작성해 달라고 안내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나이스에 이미 문항정보표 작성해 놓았는데, 다시 다른 양식에 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네요..."

  "어쩔 수 있나요.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때에 4세대 나이스로 바꾸느라 벌어진 일인데요. 뭐..."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문항정보표를 출력하는데 본인이 담당하는 과목의 문항정보표가 아닌 다른 학교의 문항정보표가 출력되는 얼토당토 한 일까지 발생했다. 문항정보표에는 지필 평가 문항의 정답과 배점이 담겨 있는데, 다른 학교의 문항정보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시험 문제 유출과 다름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사태로 인해 교육부에서 부랴부랴 문항정보표 출력을 막아 놓았다. 지필평가를 앞두고 문항정보표를 출력하여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문항정보표가 조회만 되고 출력이 되지 않으니 학교에서는 별도의 문항정보표 양식에 다시 작성을 해야 하는 아주 귀찮고 번거로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관해 교육부에서 급하게 학교에 공문을 보내왔다. 문항정보표 유출 가능성에 대한 조치로 답지(번호) 및 문항 순서 변경 등 적절한 조치 이후 평가를 시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다 출제해 놓은 시험 문제와 답지의 순서를 바꾸고, 재인쇄하고 다시 시험지를 포장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무엇보다 급하게 문제와 답지 순서를 바뀌는 와중에 실수하여 문항 오류가 생기면 그 책임은 또 어쩐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 달 뒤면 방학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학교 현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에는 이 모든 문제를 떠안고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고 불편하고,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은 가만히 두어도 업무과중인 교사들이다. 


   일명 '지능형' 4세대 교육행정정보서비스라 명명한 것이 무색하게 전혀 '지능적'이지 않고, 각 학교에 업무마비와 쓸데없는 업무 과중, 그리고 업무 혼란의 사태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게 도대체 난데없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교육부는 현장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진행된 성급한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문제를 학교와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2824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였으면 사용자의 편리성을 고려하여 제대로나 만들 것이지... 대체 어떤 점을 개선하려고 4세대 나이스로 전환을 추진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제발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분들이 현장을 고려하여 일을 추진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에 치여 살던 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