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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22. 2022

일에 치여 살던 시간들

 바쁜 학교에서, 첫 번째 이야기

  학교는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간다. 하루 7교시까지의 수업 중 평균적으로 서너 시간의 수업을 해야 하고, 점심 시간에 급식 지도와 순회 지도까지 있는 날이면 그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다. 수시로 날아오는 메신저의 업무 협조 내용과 공문서 처리, 담당 업무 처리, 수업 준비 등 많은 일들을 해야하는데 하루 두세 시간의 공강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에 비싼 과자를 아껴먹듯이 소중하게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몇 년 전에 소규모의 특성화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하루하루가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빴다. 학교 일은 규모와 상관없이 똑같이 돌아가기에 소규모 학교일수록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는 몇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줄이기 위해 행정실무사를 배치하였지만, 현장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시행되는 면도 있고, 실무사의 업무태도나 자질에 따라 맡는 업무량이 미약하여 정책의 효과를 체감할 수 없을만큼 교사들이 해야 할 업무는 변함없이 많았다. 소규모 학교일수록 업무과중이 심한데 오히려 규모가 큰 학교일수록 더 많은 실무사가 배치되는 현장과 괴리된 정책 시행도 그렇고, 일부 실무사의 경우 업무 분장 때마다 날을 세워가며 자신에게 가는 업무를 막아내는데 몰두하여 실제적인 업무경감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었다. 그 학교에서는 늘 바빠서 학교에서 뛰어다녀야만 했는데, 지나가다가 실무사가 할 일 없이 노닥거리거나  인터넷 쇼핑하는 것을 자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 적도 많았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의 행정실무사들은 일도 깔끔하게 잘하고, 일처리도 빠르며, 책임감도 강한 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당시에 큰 학교에서 대여섯 명이 담당할 업무를 혼자 도맡아 처리하며, 수업도 두 개 학년을 걸쳐 들어가느라 수업 준비를 할 게 많았다. 거기에 담임까지 맡아서 기본적인 담임 업무만으로도 포화 상태였다. 어쩜 아이들은 그런 담임의 사정은 봐 주지도 않고, 수시로 이러저러한 사고를 잘도 치는지... 아이들은 상담 일지 쓰는 업무까지 추가해 주었다. 밤늦게까지 학부모 상담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날들이었다. 그러하기에 하루에 두 세 시간 주어진 공강 시간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부터 순서대로 집중해서 아주 야무지게 써야만 했다. 그때는 걸어가면서도 다음 처리할 일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곤 했다.


  그때 같이 근무한 교감 선생님은 50대 초반의 남자로 처음으로 교감 발령을 받아 오신 분이었다. 성품이 악랄하거나 나쁜 분은 아니었지만, 그분의 단점은 말이 너무 많다는 것. 어쩌다가 교감 선생님과 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되면 1시간은 기본이고, 혹여 두 시간 연장 공강이면 그 두 시간을 모두 날려버리곤 했다. 아주 깔끔쟁이인 아내에 대한 이야기,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반은 차지했었다. 더 큰 문제는 했던 얘기를 수차례 반복하곤 해서 교감 선생님과의 대화가 전혀 신선하지도 않고, 재미나 유익함도 없을 때가 많았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관심조차 없는 교감 선생님의 가족과 관련한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당장 보낼 공문이 몇 개인데...


  같은 교무실에 있으면서 교감 선생님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잘 반응해주는 나에게 심심할 때마다 수시로 말을 걸어왔다. 교감 선생님이야 수업도 없고, 결재할 일 말고 딱히 업무도 없으니 상관없었겠지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쓰고 있던 나에게는 교감 선생님의 쓸데없는 말로 인한 업무 방해 대화에 점점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급기야 정말 바쁜 어느 날에는 나도 모르게 교감 선생님의 쉼없이 움직이는 툭 튀어나온 입을 향해 힘껏 뺨을 후려치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시원하게 뺨을 갈기고 "제발 닥치라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단지 짧은 순간의 상상에서 맛본 짜릿함이었을 뿐,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교감 선생님을 피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당시에 사서 업무까지 담당하느라 관리했던 도서관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올라가서 공강 시간이 되어도 교무실에 내려가지 않고, 도서관에 콕 박혀서 내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었다.


  지나고보니 일하느라, 수업 준비하느라 썼던 그 많은 시간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밥먹고 소화시킬 겸 운동장 한 바퀴 돌 시간조차 아까워서 바로 올라가서 일만 한 것이  잘한 것이었을까. 산책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도 풀고, 학교 안에 있는 계절마다 자태를 뽐내는 예쁜 꽃과 나무에도 눈길을 주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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