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나름대로의 직업병을 갖고 있겠지만, 국어 교사의 직업병은 맞춤법이 틀린 것을 고치지 않고 그냥 두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국어 교사라고 맞춤법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않다. 한글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는 예외가 많기에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헷갈릴 때가 참 많다. 맞춤법이 헷갈릴 때마다 인터넷 사전을 검색하거나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올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확인하곤 한다.
다른 사람이 맞춤법을 틀렸을 때, 이를 수정하도록 꼭 말해주고 싶은데 남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 같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대략난감 할 때가 가끔 있다.
같은 학교에서 부장을 하면서 친하게 되어 몇 년째 사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모임이 있다. 일하면서 만난 사이임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장님들한테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서로 친밀한 관계이다. 우리는 모임의 이름도 짓고,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에는 모임 이름을 영문으로 새긴 수제 가방을 주문 제작해서 갖고 다니고 있다.
그 중에 과학과 S언니가 가끔씩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낼 때 맞춤법을 잘못 쓰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볼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그 단어는 바로 '얘기'. '이야기'의 준말이다. 그런데, S언니는 '얘기'라고 쓰지 않고, '예기'라고 쓴다. 처음에는 카톡에 급하게 쓰다보니 S언니가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얼마 뒤에도 또 '예기'라고 쓴 것을 발견했다. 직접적으로 틀렸다고 지적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으니까, S언니가 자연스럽게 맞춤법을 잘못 썼다는 것을 알게끔, 내가 일부러 카톡의 맥락에 맞게 '얘기'라는 단어를 넣은 문장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이 언니! 눈치가 전혀 없다. 몇마디 톡이 오간 뒤에 또다시 "예기'라고 썼다. 어휴, 정말!!!
그 때부터모기 물린 곳을 긁어대는 것처럼 가렵고 근질거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 이 언니가 실수가 아니네. 어떻게 고쳐주지? 뭐라고 말하지? 개인톡을 보낼까?' 나는 틈틈이 기회를 노렸다. S언니와 친하긴 하지만, 직설적인 성격의 이과 언니에게 맞춤법 틀렸다고 지적했다가 어떤 싸늘한 반응이 돌아올지 몰라 망설여졌다.
'카톡은 아무래도 문자라서 감정이 왜곡되게 전달될 수 있으니 얼굴보고 만났을 때 농담처럼 가볍게 말해야지.'라고 굳은 마음을 품고 모임에 나간 적도 있으나, 괜히 섣부른 지적질이 모임의 분위기를 망쳐 버릴까봐 결국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꾸역꾸역 다시 집어 삼키고 돌아오기도 했다.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아직도 나는 S언니에게 '이야기'를 줄인 말은 '예기'가 아니라 '얘기'라고 써야 해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 말을 못한 것이 못내 갑갑하다. 어쩌면 S언니가 내 말을 듣고 나서 '아, 그래?'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데, 내가 지나치게 소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오랜만에 오페라를 보러 어느 공연장에 갔다. 인터미션 때 화장실 문에서 이런 문장을 확인하고 또다시 나의 직업병이 발동했다.
- 변기에 휴지 넣지 마세요. 막힘니다.
'막힘니다'라니... 명사형으로 문장을 끝낸다면 '막힘'이라고 쓰는 것이 맞지만, 상대높임법에서 격식체 아주 높임의 평서형 종결형은 'ㅂ니다'로 끝맺어야 한다.
화장실 문에 쓰인 틀린 문장을 고칠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내 가방 안에는 볼펜이 있었고, 나는 이내 볼펜을 꺼내 그 문장을 맞춤법에 맞게 고쳐놓고 나왔다. 우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