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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un 14. 2022

나의 삶, 나의 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 온 시간들

  어느 덧 22년차 교사가 되었다. 원하던 직업 중 하나였던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직간접경험으로 알았기에 그만큼 책임감도 무거웠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창 시절 12년 개근(아니, 대학교 때에도 수업을 빼 먹은 적 없으니 20년 개근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을 할 만큼 워낙 성실함과 책임감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담임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학교 생활의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모둠별 요리대회, 학급 체육대회, 함께 라면을 먹으며 속마음 터 놓는 '선생님과 함께 라면', 버츄 카드를 활용한 집단 상담 등 매달 다양한 학급 행사를 기획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학부모들에게 매달 서너장씩 긴 편지를 써 보냈다.


  교사의 기본은 수업이라는 생각과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수업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 늘 수업 연구에 매진했다. 주말이나 방학에도 좋은 연수가 있으면 사비를 들여 쫓아다녔다. 교과 지식 전달이 아닌, 사고력과 표현력을 성장시키고, 울림이 있는 수업을 디자인하기 위해 늘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티비를 보면서도 그 내용을 프로젝트 수업과 연결지으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해 두었다.



    "교사들은 일찍 퇴근하고, 방학도 있고 얼마나 좋아."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들 말했지만, 내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시로 야근을 했고, 특성화고에 근무할 때에는 일 주일에 이삼일씩 학교 기숙사에서 자야할 만큼 수업 외에도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방학 때도 온전히 쉬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내 삶이 곧 학교 생활인 듯, 지독하게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나 자신이 스스로 뿌듯하기도 했다. 각종 연구회와 연수에 참여하고 오는 길엔 몸은 피곤했지만, '아, 살아있구나!' 쾌감 비슷한 기분마저 느꼈다.


  "심각한 워커홀릭이야, 주말이나 방학 때는 좀 쉬어.” 주변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일에도 수행평가자료, 수업 자료, 각종 업무 등 일거리를 한 가득 싸들고 와서 어깨가 굽어지도록 일했다. 책임감도 있었지만, 일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도 나름 컸다.


  경력이 어느 정도 되면서부터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기 위해 더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일도 잘한다, 수업도 잘한다.' 인정받고 싶고, 앞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인정도 받았다. 인정을 받는만큼 잘하고 싶은 욕구는 더 커졌다.


  9시 30에 끝나는 방과 후 수업에서 개별 지도를 해 주느라 늘 한 시간도 훨씬 더 넘은 뒤에야 마치는 나에게 한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돈 받는 것 만큼만 수업해요. 너무 힘 빼지 말구요." 속으로 그 동료를 경멸했다.

  대기업에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지인이 교직 생활 20여년이 넘은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속상하긴 했지만, '나는 돈 때문이 아닌,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개의치 않았었다.(지금은 일한 만큼 받는 정당한 금전적 대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만 20년이 되었을 때, 어찌어찌하여 교직 생활 처음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어떤 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청춘과 열정바쳐 살아 온 내 삶이 허망하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풍랑에 표류하는 배처럼 삶의 방향을 잃었다.


  긴 상담 과정 중에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책임감과 사명감만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선생님이 그만큼 좋아서 했던 일이에요."


  '아, 내가 이 일을 좋아했던 거였구나. 책임감 때문만이 아닌, 내가 좋아서 이렇게 했던 일이었구나.' 우습지만, 정말로 그토록 이 일을 좋아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강해서 늘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가진 에너지의 50%만 일에 쏟고, 개인의 삶을 향유하자고 다짐하며 복직했건만, 또다시 머릿속에 수업 아이디어와 처리할 일들을 늘 생각하는 나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으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20년 넘게 해 온 관성의 법칙인 건가.


  22년간 내 삶의 전부였던 나의 일에서 이제는 조금씩 무게 추를 옮기려 한다. 가르치는 일 외에도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나의 글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하고 은은한 향기가 멀리멀리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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