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5월인데, 올해 학교에 유난히 경조사가 많았다. 모친상, 부친상, 장모상 등 장례식이 3번, 결혼식이 2번. 상조회에서 조의금이나 축의금을 전하지만, 개인적 친분에 따라서 별도의 부조금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결혼식 같은 경사가 아니고 장례식 같은 궂은 일을 치르고 오신 선생님도 돌아와서는 답례 인사와 함께 답례품을 돌리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지난 주에는 3학년 부장님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에 다녀 온 분들 말이 8남매의 외아들과 결혼한 외며느리더라고 전했다. 다들 첫 반응은 이랬다.
"허억! 시누이만 7명이요? 엄청 힘드셨겠네요~"
"시집살이 장난 아니었겠네요. 생각만해도..."
오늘, 3학년 부장님이 돌아와서 답례품으로 멜론과 함께 아래와 같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 교육가족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에 잠겨있던 저에게 여러분이 건네주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셔서 조문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 어머님은 늘 나눔을 좋아하시고 정이 넘치던 분이셨습니다.
40년간 방앗간을 하시면 8남매를 훌륭히 키워내셨어요.
남들은 외며느리라 힘들지 않냐고 했지만
어머니의 끝도 없는 자식 사랑 덕분에 늘 예쁨 받고 지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가 많이 그리울거에요.
멜론은 우리 시댁 천안시 수신면의 특산물입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머니가 꼭 챙겨서 보내주시던 과일이에요.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드시면 당도가 높고 참 맛있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내가 받은 가장 뭉클하고 감동적인 답례문이었다.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오롯이 전해졌다. 답례인사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조문에 대한 감사와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담긴 따뜻하고 촉촉한 글이었다. 수학 선생님이 무슨 글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쓰시나 싶었다. 무언가 품격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다음 주에 있을 전교생 대상의 행사를 앞두고 업무 담당자로서 메신저를 보내야 했다. 3학년 부장님처럼 감동적이고 뭉클한 내용으로 작성할 수는 없어도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공손한 태도로 보내려 했다. 업무 메신저로 전체 선생님들한테 안내를 할 때마다 참 조심스럽다. 다른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절친 DK가 이렇게 말했다.
"부서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고, 기분 좀 안 좋을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바쁜 담임들한테 명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부서에서는 업무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데, 메시지를 어떻게 보내면 괜찮아요?"
"부탁의 느낌이 들어가고,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아이들한테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지를 말해주면 좋겠더라구요."
DK의 말 때문인지, 올해 전입 온 학교라서 아직 선생님들과 친분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주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창체 시간에 진행되는 "작가활동 및 백일장 대회"를 앞두고 메신저로 안내사항을 작성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보낼 메신저 내용에는 학급에 안내하고 전달해 줄 담임 선생님, 교실에 임장 지도할 부담임 선생님, 수상작을 선정하는 국어 선생님 등... 각 선생님별로 전달해야 할 것이 달랐다. 전할 내용이 많아도 장황하지 않게 써야 하고, 해당 선생님별로 각자 해야 할 일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안내해야 했다. 중요한 내용은 붉은 색과 밑줄로 강조하고, 다운 받을 첨부 파일을 역할별로 구분까지해서 최대한 공손하고 부드럽게 메시지를 작성했다.
고심해서 쓴 내용을 검토까지 하고 보냈는데, 보내고 나니 그제야 수정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